가상화폐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의 정체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 2016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암호학자 크레이그 라이트가 본인이 나카모토 사토시라고 주장했으나,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면 가상화폐 시가총액 2위 이더리움의 창시자는 누굴까? 2017년 1월 1일 8달러에서 시작해 정확히 1년 동안 843달러(90만2430원)로 폭등한 이더리움을 만든 이는 20대 청년 비탈릭 부테린(24)이다. 그는 20살이던 2014년 이더리움을 창안했다.
사업가 출신의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안소니 디오리오는 캐나다 경제매체 파이낸셜포스트(FP)와의 인터뷰에서 부테린을 처음 만난 날을 회상하며 "부테린은 말이 없었고, 문자 그대로 흔들리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디오리오는 미트업닷컴(취미나 관심이 비슷한 사람끼리 거주 지역에 따라 소규모 오프라인 미팅을 조직하도록 도와주는 사이트)에 비트코인 모임을 하자는 글을 올렸고, 2012년 11월 어느 토요일 오후 캐나다 토론토의 한 펍에서 부테린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부테린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 컴퓨터공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디오리오의 첫인상과 달리 부테린은 수줍음이 많은 평범한 십대가 아니었다. 부테린은 디오리오와 모임을 하기 전부터 비트코인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1년 전이던 2011년 9월 루마니아 출신 친구들과 비트코인 관련 잡지 '비트코인 매거진'을 만들었다.
4살때 엑셀 작업하던 천재 소년, 20세에 '이더리움' 창안
부테린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콜롬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부테린이 6번째 생일(부테린은 1994년 1월 13일 태어났다)을 맞기 바로 직전인 1999년 모스크바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이사했다.
부테린은 4살 때 구형 PC로 엑셀 작업을 했고, 7살에는 '토끼 백과사전'이라는 복잡한 문서를 만들고 10살 때부터 직접 코딩해 온라인 게임을 만들 정도로 프로그래밍에 소질을 보였다. 이후 부테린은 17살 때 그의 아버지 드미트리 부테린의 영향으로 비트코인을 접했다.
비트코인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부테린은 2013년 워털루대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드미트리 부테린은 FP에 "아들에게 학교를 계속 다니면 애플・구글처럼 훌륭하고 안정된 직장에 갈 수 있고 아마도 연간 10만달러(1억705만원)를 벌 수 있지만, 학교를 그만두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도전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부테린은 대학교를 중퇴하고 이스라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을 여행하며 비트코인 매거진에 글을 쓰고 다양한 암호해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부테린은 한때 이스라엘에서 '컬러드코인즈'라는 비트코인 관련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부테린은 같은 해 11월 이더리움 설계도인 백서를 발간하고 몇 주 후 창립팀을 구성한다. 2012년 부테린을 만났던 사업가 안소니 디오리오와 미국 수학자 찰스 호스킨슨(비트코인 CEO), 비트코인 매거진을 공동 창간한 미하이 앨러시, 아미르 쉐트리 등이 창립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창립 멤버가 오프라인에서 모두 모인 것은 2014년 1월이다. 이들은 미국 마이애미에 이층 침대가 가득한 집을 빌려 이더리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영국 프로그래머 가빈 우드, 골드만삭스 출신 조셉 루빈, 제프 위크 등이 개발자로 합류한다.
'이더리움 프로젝트' 크라우드 펀딩으로 42일만에 196억원 모아
부테린은 비트코인과 달리 지불・결제 등 금융 부문 외에도 사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달리 말해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 계약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분산 컴퓨팅 플랫폼이며, 이 시스템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이더(Ether·이더리움에서 쓰이는 암호화폐)다. 즉, 이더리움은 화폐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이더리움 주소는 '0x6c2ecd6388c550e8d99ada34a1cd55bedd052ad9'과 같은 문자열로 존재하지만 이를 은행 계좌, 전자메일 주소, 주민등록번호처럼 활용할 수 있다.
이들이 이더라는 통화 발행을 시작한 것은 합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기존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에 의문을 품고 2012년에 부동산을 매각한 자금으로 비트코인을 구입한 안소니 디오리오를 비롯한 이더리움 공동 창업가는 부를 이뤘다. 2013년 들어 비트코인은 당시로써는 역대 최고액인 1비트코인당 1200달러(128만4600원)를 기록했고, 2013년 11월 한때 1127달러(120만6450원)였던 비트코인은 그해 12월 800달러(85만6400원)까지 떨어졌지만, 100달러(10만7050원)에 불과했던 그해 8월과 비교해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하지만 이더리움 프로젝트는 2014년 7월까지 6개월동안 투자를 유치하지 못했고 안소니 디오리오와 조셉 루빈이 사비로 운영 자금을 충당했다. 변호사 비용, 등록세, 기타 경비 때문에 부채는 나날이 늘어갔지만, 부테린은 이더리움 프로젝트를 비영리 재단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다른 국가에 비해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스위스에 법인을 등록하는 것이었다. 부테린이 2018년 1월 현재 '크립토밸리(가상화폐 업체들이 모여있는 마을)'라고 불리는 스위스 추크에 살고 있는 이유다.
이더리움 프로젝트는 2014년 7월 스위스에 '이더리움 재단'을 세우고 이더리움 시스템 개발을 위해 이더를 비트코인과 맞바꾸는 방식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42일간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결과 이더리움 프로젝트는 당시 가격으로 1840만달러(196억9720만원) 어치인 3만1000개의 비트코인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2017년 2월 기준 이더리움 재단은 1100만개의 이더를 보유하고 있다.
저커버그 누르고 'IT 노벨상' 거머쥔 청년, 2016년 40세 이하 40대 부자
부테린은 2014년 6월 '실리콘밸리 거물' 피터 틸이 운영하는 장학금 '피터 틸 펠로우십'으로부터 10만달러(1억705만원)를 받았다.
또, 같은해 11월에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를 꺽고 '신기술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월드 테크놀로지 어워드'의 IT 소프트웨어 부문을 수상했다. 이 상은 포브스, 타임 등이 공동 주관한다. 이외에도 2016년 포춘에서 선정한 40세 이하 40대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부테린이 소유한 이더의 양은 정확하게 알려지 않았다. 그는 2016년 4월 이더 가격이 10달러(1만705원)에 거래됐을 때 자신이 보유한 이더의 25%를 현금화했다. 당시 부테린은 "다양한 암호화폐를 보유하기 위해 이더 일부를 매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암호화폐 전문 매체 커런시저널에 따르면 부테린은 2017년 12월 28일 기준 37만5003개의 이더를 보유 중이다. 일각에서는 부테린이 12월 31일 기준 2200만달러(235억5100만원)에 해당하는 3만개의 이더를 룩셈부르크 기반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스탬프를 통해 매각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하지만 부테린은 최근 가상화폐에 대한 무분별한 투기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2017년 12월 27일 트위터에 "가상화폐 이용자가 고급 승용차 구입 등에만 관심이 있으며, 부적절한 농담을 주고받는다"며 "현재 가상화폐 커뮤니티 문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일 가상화폐 이용자가 계속해서 헛소리만 내뱉는다면 나는 가상화폐 시장에서 떠나버릴 것이다"며 "가상화폐 커뮤니티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동나눔]무조건-수동보팅 10회차 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살때부터.. 지금 저희 큰딸이 4살인데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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