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트럭 운전수였다.
아버지가 처음부터 트럭을 운전하신 건 아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에는 남의 아버지처럼 승용차를 운전하셨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이리저리 놀러 다녔는데, 집에 오는 길이면 나는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시늉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이사를 가고,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의 차는 트럭이 되어있었다. 언제 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어디서 배운 것인지 아버지가 트럭 운전수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아버지의 트럭은 유난히 소리가 커서, 동네에서 아이들과 놀다가도 퇴근하시는 아버지의 트럭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온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나는 어디 가려운 곳이라도 있는 애처럼 쭈뼛쭈뼛 아버지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아버지의 작업복에서는 항상 쇳가루와 땀냄새가 섞여 후끈하면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뀔 무렵,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뜬금없이 자기네 집 차 자랑이 시작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소나타. 우리 아버지는 엘렌트라. 우리 아버지는~ 어쩌고 하는데 그 중에 서준형이라는 놈이(아직 이름도 기억한다. 돼지같은 놈이었다.) "너네 아버지는?" 이라고 묻는데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큰 차" 라고 대답했다. "지프차? 그레이스?" 자꾸 캐묻는 놈에게 "화물차" 라고 기어들어가듯 대답했는데 녀석은 숨이 넘어갈 듯 웃어제꼈다. 친구들 앞에서 "얘네 아빠 트럭 운전수래!" 하며 웃어대는데 그 자식 면상에 한 대 쥐어박지 못한 것이 지금도 한이 된다. 그래도 뭐 그 날 이후로 쟤 싸가지 없으니까 같이 놀지 말자며 왕따를 시켜서 조금은 기분이 풀렸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어쩐지 더 주눅이 들었다. 아버지가 트럭을 몬다는 사실이 너무 미웠다. 차라리 차가 없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사업에 실패해서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사는 모습이, 그럭저럭 사는 트럭 운전수의 가족보다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가끔 등교길에 태워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나 싫었다. 정말 너무너무 싫어서 시간을 끌거나, 혹은 마지못해 타고 가는 날에는 집에 놓고 온 것이 있다며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서 아버지가 가는 것을 보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더 심했다. 내가 입학한 곳은 남녀공학이었고, 나는 트럭을 타고 교문 앞에서 내리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입학식이나 졸업식날, 아버지가 오신다고 하면 으레 걱정부터 앞섰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디딘 지도 이제 몇 년이 되었다. 남부러운 직장을 거쳐 이제는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남의 돈 빌어먹고 살기 힘든 건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다. 예전이라고 달랐을까. 항상, 힘들었을 것이다. 나때나 아버지때나.
이제는 인정이… 된다. 아버지도 인정할 수 있고, 철 없던 나도 인정할 수 있다. 아버지는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 아니, 사실 아버지 인생은 고생만 많고 감생은 거의 없었다. 성공하고 싶은 이유는, 그런 거다. 자이언티처럼, 나 이만큼 성공했고, 우리 아버지가 참 자랑스러워. 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성공하지 않고도 충분히 쿨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동네 어른들로부터 ‘아이구 아들 참 잘 키웠어’ 라는 칭찬을, 선물하고 싶다.
필요이상으로 진지해졌을까봐 급하게 찾아 낸 분위기 전환용 짤방
마음따뜻한 효자시네요
아버지가 든든하시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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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명절때마다 '너는 전화기가 부서졌느냐'는 덕담으로 시작하여 연락좀 하며 살자는 훈계로 끝난답니다. 팔로우 감사합니다. 종종 뵙겠습니다. :)
디테일은 다르지만 저도 비슷한 기억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가족 중 누군가를 창피하게 여긴 경험이 한 둘 쯤은 있지 않을까 싶네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배려하기엔 어린애들은 너무 순수하죠. 위에 서준형이라는 친구처럼요 ^^;
작가님 덧글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없네요. 서준형이라는 친구도 인정... 했습니다 이제. 감사합니다. :)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주고 저도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너네 집 몇 평이야, 너네 집에 이런 거 있어?, 너네 아빠 몇 살이야, 에게게 우리 아빠보다 어리잖아...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 받았던 것 같네요... 저는 엄마랑 동생들이랑 걷는데 뭐가 그렇게 싫었던 건지 창피하다며 떨어져서 걸었던 기억이 나서 가슴이 아프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