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스티밋에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예전에 다른곳에 끄적거려놓은 글을 긁어온거라 읽기 불편하실 수도 있겠네요.문득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는 하루라 올려봅니다. 오늘 퇴근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술자리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따 술먹고 더 센치해지는건 아닌지 걱정이네요.하하.
kr스티미언 분들 모두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난 아버지가 꽤 일찍 돌아가셨다.
24살때였네.
굉장한 헤비스모커셨던 아버지는 내가 고 1때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하셨고 퇴원하자마자 에쎄 한대를 물어 피시고는 쿠얼럭쿠얼럭 거리시더니 이제 막 불을 붙인 장초를 냅다 버리셨다. 그걸 보고 난 절대 담배는 손대지 말아야지 하고 실제로 담배는 안피고 있다. 물론 아버지는 그후로도 담배를 끊지 않으셨다.
그 수술 이후로 아버지는 항상 심장약을 드셨고 독한 약 탓인지 신장까지 안좋아져서 내가 대학을 들어간 이후에는 신장약도 추가로 드시기 시작했다. 고3 수능 3일 전날 부동산업을 하시던 아버지 사업이 잘못되어서 드라마에서나 보던 빨간 딱지가 집에 붙었지만 어렸을때부터 그런 롤러코스터는 충분히 경험을 해본지라 작게는 며칠 뒤 수능에, 크게는 내 인생 전반에 큰 변수나 걱정거리가 되진 않았던거 같다.
'뭐 이래도 아버지가 잘 해결하실거야.'
항상 이런 믿음이 잔뜩 깔려있었고 실제로 아버지는 늘 그래오셨으니까.
그런데 하나하나 드시는 약이 늘어가며 약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건강이 내 걱정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한 듯.
어쩌면 매우 방정맞고 냉정하게 보일수도 있겠다. 이미 당시에 훗날 내가 아버지 나이쯤 되기도 전에 아마 아버지는 내곁에 없을거야..이런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2004년이었을거다. 좋은 기회가 생겨 뉴질랜드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때쯤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상당히 좋지 않았다. 내안의 걱정을 당신께 짜증으로만 표현했으니까.
출국장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와 동생과 인사를 나누고 아버지와 짧게 포옹을 했다.
공항터미널에서 여유있게 버스를 타고 가겠다는 걸 굳이굳이 데려다 주겠다면서 삼성동에서 시간을 버리고 러시아워에 걸려서 시간에 쫓기듯 공항에 도착해서 상당히 짜증이 나있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싸가지없는 표정과 억양으로
"아 아버진 제발 건강 좀 챙겨요. 행여나 중간에 나 돌아오는 일 만들지 마시고.."
평소같으면 이자식 말투가 왜이리 싸가지가 없어졌냐며 일갈을 하셨을 아버지가 그순간만큼은 너무나 멋쩍어하시며 그래그래 알았으니 가서 많이 배우고 잘 지내라고만 하셨다.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왜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땐 더 부드럽게 더 진심을 담아서 말하는 법을 몰랐나보다.
그리고 그게 온전한 정신의 아버지와 내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어버렸다.
어느날 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서 아버지 스스로 구급차를 불러 다니시던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병원에서는 조금만 늦어도 큰일 날 뻔 했다며 바로 뇌경색 수술을 들어갔다고 한다. 수술도 매우 잘되었고 모두들 회복에도 큰 문제가 없을거라 했지만 이미 수년전부터 심장과 신장에 무리가 가있던 탓인지 그후 아버지는 회복하지 못하셨고 꽤 오랜시간 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나도 요사이 밤근무다 뭐다 꽤 무리를 했다.
체력도 예전같지 않아서 이제 힘드네...하던차에 며칠부터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더라.
문득 겁이 났다.
돈도 좋고 포커도 좋지만 건강이 최고다.
원래 이렇게 길게 쓸 글이 아니었는데 투닥투닥 쓰다보니 이렇게 와버렸다.
도입부도 저게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이 글이 시작된거지???--;;;;;
기왕 쓴 뻘글이니 그냥 올리자. 그리고 이쯤에서 마무리하자.
마지막 대화는 항상 아쉬움만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인 줄 모르기에...
조만간 에쎄 한갑이랑 빅맥세트 하나 사들고 아버지 사진 앞에서 떠들고 와야겠네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잘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
언젠가 마주할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는 조금 덜 아쉽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좋은 주말 보내시길^^
또다시 찾아온 불금!! 힘내세요!!곧 주말이에요!
불금을 제대로 보내고 출근중입니다.
주말없는 교대근무자의 삶...ㅜㅜ
좋은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