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맹수의 시간이다. 사자, 호랑이를 필두로 표범, 늑대, 곰 등 많은 강력한 맹수들이 야행성이며, 그 맹수들은 인간의 조상들부터 인간의 목숨까지도 위협했다. 그래서 인간은 밤을 죽음과 연결 짓는다. 누군가의 표현이 후대로 내려져 오는게 아니라 생물적인 단계에서부터 새겨진 본성이기에, 문명에서 살아간 기간이 짧은 어린 아이들은 아직 어둠을 두려워하곤 한다. 맹수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비이성적인 공포를 설명하기 위해 마녀를, 귀신을, 괴물을 만들어냈다. 어둠과 함께 찾아오는 공포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 모닥불은 인간을 지켰으며 머리맡의 스탠드는 아이를 지킨다.
어둠은 밤이며 그래서 죽음을 상징한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며 그래서 탄생을 상징한다. 겨울에는 밤이 길고 그래서 죽음을 상징하는 계절이다. 봄은 겨울의 끝이며 그래서 탄생을 상징한다. 생명이 탄생하는 계절이기에 봄이 생명을 상징하는게 아니라, 어둠을 몰아내는 계절이기에 봄은 태초부터 탄생을 상징했으며, 그래서 생명은 봄에 탄생하는 것이다. 생명의 순환이 존재하기 전부터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었으며 봄은 겨울의 끝이며 생명의 계절이었다.
아름다운 야경이라는 것도 밤의 공포를 몰아내는 도시의 불빛이 아름다운 것이지, 어둠이 아름다운게 아니다. 어둠을 상징하는 검정색을 띈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그것을 비출 빛이 있을 때 뿐이다.
이처럼 모든 것은 명확했다. 성경에서 창조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 "빛이 있으라."인 것도 빛이 탄생을 상징하기 때문이며, 해돋이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전해주는 것도 여명이 공포를 끝내고 빛을 몰아오고, 빛은 시작이며 탄생이며 생명이며 온갖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몰은 처절한 순간이다. 빛이 시들어가고 어둠이 찾아온다. 어둠은 죽음이며 공포며 끝이며 온갖 나쁜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황혼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시체를 평화롭게 잠든 모습과 혼동한다면 시체에서도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듯, 일몰도 일출과 혼동한다면 피어오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나는 일몰과 일출을 구분하는 연습을 했다. 연습 끝에 완벽하게 일몰과 일출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일몰은 아름다웠다. 완벽한 구분이 가능하니 새로운 사실이 보였다. 일몰은 일출만큼 아름다운게 아니라, 일출보다 더 아름다웠다.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끝을 앞두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를 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여전히 황혼이 여명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에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를 품는건 이해할 수 있지만, 공포의 시간이 끝나고 탄생이 시작되는 순간보다도 더 큰 감동을 느껴지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포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에 절망한다면 밤을 견디지 못한다. 공포의 시간을 견뎌낼 용기를 얻기 위해서는 황혼이 절망적인 순간이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황혼이 아름다울까? 그렇다면 황혼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란 세뇌와 같은 것이다. 진정 황혼이 아름다운게 아니라 그 순간을 아름답다고 느껴야만 하기에 아름답다 느낄 뿐이다. 내가 매일 느끼는 감동이 세뇌에 의한 것이라는건 너무나도 슬펐기에 나는 황혼이 아름다운 이유를 찾는걸 그만두었다. 명쾌하게 알고 싶어 탐구를 시작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하던건 사랑을 신경전달물질과 전기신호로 해석한 후 세상에 진정 낭만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한참 후에서야 우연히 알게 된 진실은 언제나 그렇듯 예상을 벗어났고, 단순했다. 황혼은 여명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세뇌에 의해 여명보다 아름답지 않은 황혼을 여명보다 아름답다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바라보는 서쪽 풍경이 동쪽 풍경보다 아름다웠을 뿐이다.
이왕이면 더 아름다운 곳을 바라보며 시간에 잠기는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네요..
잘 보고 갑니다.
그러고보면 일출과 일몰 사이에 밝기 차이가 있다고 봤었는데 어느쪽이 밝은지는 기억이 안나는군요....
사그라드는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질때도 있고, 힘차게 타오르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구요. 그 풍경을 보는 내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듯 합니다 :)
라그나로크...
사진을 찍다보면, 일출 일몰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찍은 곳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면,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다가 그것이 일출이었는지 일몰이었는지 헷갈리죠.
물론 아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늘이 밝아져가는 것과 어두워져 가는 것의 차이를 알수 있게 되긴 합니다만, 어느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할 수 없습니다.
정말로 풍경이 아름다워서라던가 아니면 그날 그시간에 내 마음이 더 아름다워서 라는게 이유라면 이유겠지요. ^^
대문사진 안 쓰셔서 깜짝 놀랐어요 ㅎㅎㅎ 이런 사진도 좋군요. 저도 오늘 밤마실 포스팅했는데, 이런이런! 저에게 밤은 죽음의 의미보다는 파티의 의미였더군요 ㅠㅠ
본문에도 써두었지만 문명은 밤을 쫓아냈습니다.
인간문명의 진화과정에서 밤을 죽음과 연관시키는 것도, 그럴만한 문화적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원시시대에는 밤에 맹수의 습격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문명시대에는 요괴와 마녀등이 밤에 활동하는 것으로 표현을 하기도 했다는 것은 밤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공통점이 있는 거네요.
제 인생의 황혼은 좀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
갑자기 순천만에서 해지는걸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던게 생각이 나네요. ^-^
무엇이 아름다우냐, 하면 답은, 그때그때 달라요!ㅎ
정말 묘하군요 저도 한번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황혼과 여명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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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이랑 일출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는 방법이 갑자기 궁금하네요. 저도 사진만 보면 헷갈릴때가 많아서요. 어느쪽이 아름다운지는,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다른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밤은 귀신이 나올까봐 무섭습니다.
해질녘이면 왠지 모를 슬픔이 엄습해 옵니다.
아름다운 석양을 보게 되어도 언제나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 들었구요.
일출의 시간에는 뭔가 벅차오르는 에너지를 느껴왔구요.
아무래도 저는 여지껏 일몰이 일출보다 아름답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나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보팅 맞팔 신청하고 갑니다!
사람이 황혼에 지나온 어느 시간을 돌아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이유는 아닐까요? 아침 그 벅차고 새로운 시작보다 지나온 하루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게 더 쉬운 일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저에게 여명은... 여명만이 갖은 설렘이 있는 거 같아요. 그것이 시작의 설렘인지 잘 알 수는 없으나 가슴 벅찬 설레임과 신비로움이 가득했던 거 같아요. 황혼은... 여명과는 다르게 편안함, 쉼, 안도감이 마음을 더 안락하게 했던 거 같아요. 지친 하루를 행복히 잘 마쳤다는 안도감에 황혼을 보면 어느 별에서 석양을 보고 있을 어린왕자가 생각나서 석양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