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잠시 기지개를 켰다. 벌써 열한 시였다. 마지막으로 낮에 받은 파워 포인트 장표만 수정하면 집에 갈 수 있는데 도저히 시작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불이 꺼져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가끔은 이렇게 야밤에 빈 회의실에서 어둠을 벗 삼아 머리를 식히는 걸 좋아한다. 창문 너머 뉴욕의 마천루들이 은하수처럼 은은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오늘도 이 도시는 잠들지 않는구나.
'한 때는 여기가 내 꿈이었는데.'
소파에 앉아 남아있는 일을 잠시 잊고 망상에 빠져본다. 나는 과연 이 콘크리트 정글에서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눈을 감고 이제는 10년도 더 된 기억들을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이 이야기가 시작된 그 해 여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해 여름 나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친구에게 추천받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와튼스쿨]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속에 나온 와튼 경영대학교 학생들은 3학년 여름방학을 포기한 채 자신의 꿈을 위해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밤을 새 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죽어가며 일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불나방과 같은 그들의 삶이 왠지 멋있게만 느껴졌다.
책을 내려놓을 때쯤에는 내 심장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월스트리트. 이 단어가 유난히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어떻게 하면 저곳으로 갈 수 있을까? 나도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저 신비한 세계로 뛰어들고 싶었다.
재빨리 노트북을 열고 월스트리트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그러다 이내 버스를 타고 교보문고 경영서적 코너로 달려가 월스트리트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을 무작정 손에 집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영화 [빅 숏]의 원작 작가로 유명한 마이클 루이스의 [라이어스 포커]나 이제는 고전이 돼버린 [월스트리트 게임의 법칙]과 [문 앞의 야만인들]과 같은 걸작들도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될지 몰라 제일 두꺼운 책부터 골랐다. 투자은행. 뱅커. 골드만삭스. 모건 가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일화가 있었고, 성공과 부, 그리고 처절한 실패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머리로는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뉴욕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월스트리트에 들어가게 된다면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글로 적어보리라 다짐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나는 뉴욕에 올 수 있었고 소위 말하는 월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거짓말처럼 예전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 책상에 앉으니 자신감이 떨어졌다. 내가 뭘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다고.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하나씩 떠오르다가도 '이런 시답지 않은걸 굳이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곳에 올려야 되나'라는 생각에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내 인생과 생각들이 공개하기에 너무 시시하다는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글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글쓴이는 블로그가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을 올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비행기 파일럿을 예로 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긴 문 뒤에 있는 그 작은 공간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만약 한 조종사가 그 안에서 오가는 일, 이야기, 그리고 생각들을 정리해 어딘가에 올린다면 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겠지만 남들에게는 새로운 발견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었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뉴욕에서의 이 삶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생활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평범하기 때문에.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기회를 엿보던 중 스팀잇을 만나게 되었고 이제 드디어 이야기를 풀 때가 됐다고 생각하기에 연재를 시작한다.
[월가를 들어가며]는 뉴욕의 투자은행에 취직하기까지의 내 이야기를 각색한 수필이다.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구체적인 회사나 프로젝트의 이름은 밝히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나는 단지 이 글들을 통해 업계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또 이를 통해 내가 예전에 그랬듯 앞으로의 진로를 택하는 데 있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의 소소한 일상이 다른 이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은 사소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사소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사소한 기쁨이 된다면 난 그걸로 좋은 거 같다.
정말 기대되는 연재가 될 것같습니다^^
스팀잇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기대됩니다!
어릴 적 '하버드의 공부벌레들' 이란 드라마처럼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일지 모르나 외부인에게는 신기한 세계죠! ^^
저도 그 드라마 기억나네요 ㅎㅎ 재미있게 봤는데 하버드에 간 사람들 말로는 드라마 보고 낚였다고 표현하더라고요
저도 어릴 적에 보면서 하버드 꿈을 꿨었죠~ ㅎㅎ
낚인 기분을 느끼고 싶네요^^;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네요
김작가님 일기대회에 글 하나만 올리고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안녕하세요? IBD 에서 일하신건가요?
네. 예전에 잠깐 일을 했습니다.
너무 흥미롭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쓰신 스팀잇에 관한 상, 하편의 글을 읽고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는데 소설을 연재하신다니 기대되네요. 좋은 경험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섭님께서는 Angel Investor로 활동하고 계시는 모양이네요. 추후에 기회가 되면 그쪽업계 이야기도 많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두근두근, 가슴이 뛰어요.
검은돌님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리스팀 해주시는 새로운 분들의 글 늘 잘 보고 있어요
최근 글 읽고는 몰아서 봅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글을 왜 그동안 피드에서 보질 못했던 걸까요.
아직 메인 이야기는 시작하지도 않았으니 안전벨트 메시고 천천히 정주행 하시면 되겠습니다 ^^ 반갑습니다.
기대되는 이야기네요!!ㅎㅎㅎ 정독을 시작합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