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낡아서 재건축 얘기가 나오지만 20여년 전 이 동화나라 빌라는 삐까번쩍 새건물 이었다.
장군이를 업고 오갈데 없던 처지의 명자가 마치 운명과도 같은 이끌림으로 이 빌라 안으로 들어섰던 날, 그 날도 오늘처럼 새차게 비가 내렸다.
그리고 쓰러져 있던 집주인 강씨를 발견하고 그의 목숨을 구해 주면서 그 인연을 계기로 명자가 옥탑 밑 창고 방에서 기거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명자는 이 건물의 관리인인 것이다.
건물 한 동의 관리가 뭐 그리 어렵겠냐?! 하겠지만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에 각 층 4가구와 옥탑방까지,
총 17가구의 수도세와 공동 구역 전기세, 청소비 등을 거두는 일만도 만만치 않다. 명자가 요금을 받으러 가면 나름의 이유로 요금 납부를 미루기 일수고 때로는 만나기조차 힘들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각 세대별 인원수, 출퇴근 시간, 친척 방문 횟수, 직업까지 꿰차고 있어야만 제때에 돈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런 노련함과 억척이 지금의 명자를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빌라동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그 관심이 도를 넘어 참견과 간섭으로 이어
질때도 있지만 여지껏 이 빌라동 사람들 중에 명자를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간섭이 싫은 이들은 이 곳을 떠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명자는 이 빌라의 실세였다.
지금도 새벽녘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어 옥이로부터 월세를 받아내 명자의 얼굴엔 승리의 미소가 가득하다.
세상물정 모르는 저런 풋내기가 감히 날 이길 수 있겠어 하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데, 순간 명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다. 아주 짧은 순간 명자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명자는 내려오던 계단의 중간쯤에서 숨을 죽이고 집 안쪽을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 도둑일 것이다.
'어떻게 하지'
난감하다. 몇달 전 장군이가 군대간 이후로 명자는 혼자 지내고 있다. 이럴땐 재주라곤 아랫도리 후리는 재주뿐이던장군이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미친년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네'
명자의 시야 속에 계단 지난번 이사간 광식이가 놓고 간 야구 방망이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