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이야기

in #kr-poetry6 years ago

나는 장롱 속에서 깜박 잠이 들곤 했다.
장에서는 항상 학이 날아갔다.
가마를 타고 죽은 할머니가 죽산에서 시집오고 있었다.
물 위의 집을 스치듯 ―
뻗는 학의 다리가 밤새워 데려다 주곤 했다.
신방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오동나무 장롱처럼, 할머니는
― 잎들이 자개붙이에 비로소 처음의 물소리로 빛을 흔들었고,
차곡차곡 할아버지의 손길을 개어 넣고 있었다.
나는 바닥 없는 잠 속을 날아다녔다.
그리운 죽은 할머니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고추가 간지러워 천천히 깨어날 때,
마지막으로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장롱에서 ―
학의 길고 긴 다리가 물 위의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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