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삶과 업적] 아이작 뉴턴

in #kr-science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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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hosungun입니다.
요즘 공부에 조금 더 집중하느라 글을 써서 올리기가 힘드네요.. 거기다 최근에 뭘 잘못 먹어 배탈까지 나버렸네요. 심지어 오늘은 개강..!! 힘드네요..ㅎㅎ
그래도 개강을 맞이해 오늘은 써 올려야겠다고 다짐하고 포스팅을 시작합니다.!



오늘부터는 조금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과학자의 삶에 대해 쓰고 그 과학자가 연구한 학문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그 시작을 누구로 하면 좋을까 생각해보다 가장 유명한 뉴턴부터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오늘은 뉴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뉴턴은 물리학에 있어서는 정말 중요한 과학자입니다.
1600년대를 살아간 뉴턴이 발견한 이론들과 계산들은 지금에 와서도 거시세계를 설명할 수 있고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도 우리가 사는 세계의 속도로 근사하면 모두 뉴턴의 역학으로 설명이 됩니다.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긴 뉴턴의 생애를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642년 12월 24일 한 아기가 태어납니다.
이 아기는 태어났을 때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을 받을 정도로 매우 약하게 태어납니다.
이 아이가 바로 아이작 뉴턴입니다.

뉴턴의 아버지는 뉴턴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죽었고 어머니는 뉴턴이 3살이 되던쯤에 재혼을 하며 외할머니의 집에서 크게 됩니다.
이러하듯 뉴턴은 어릴 적의 삶이 평탄하지 못합니다.
기독교 신자였던 뉴턴의 고백록을 보면 새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협하고 집을 불태우고자 마음먹은적이 있다고 하니 뉴턴의 삶이 어떠했을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겠네요.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도 뉴턴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문맹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학교를 보냅니다.
이 학교는 기본적인 언어와 문학에 대한 소양을 키우는게 주된 교육이었지만 수학 수업도 조금은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뉴턴에게는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뉴턴은 학교를 다니면서 호기심을 가득가지고 여러 실험들을 하며 다양한 책을 읽어갑니다.
이때부터 천재성을 나타낸것이죠.
물론, 학교성적은 처음에는 안 좋았지만 뉴턴이 공부하고자 마음을 먹고 난 뒤로는 바로 우등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뉴턴을 본 교장은 뉴턴의 천재성이 아까웠고 대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뉴턴의 어머니는 뉴턴이 농부가 되기를 원했고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교장은 끈질기게 설득을 하였고 어머니는 자신의 오빠와 상의 끝에 대학을 보내는 것에 찬성합니다.

이때 결국 찬성하지 않고 뉴턴도 그저 농부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의 과학이 이렇게 발전했을까요?
이런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다행이도 대학교로의 진학을 허락받은 뉴턴은 캐임브리지대학으로 가게됩니다.
뉴턴의 집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웠지만 농부가 되길 바랬던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은 주지 않았는지 뉴턴은 근로학생을 하며 대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뉴턴은 여러 과학자들의 저서를 읽으면서 과학과 수학을 공부합니다.
이때 특히 뉴턴은 수학에 대해 깊이 연구를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천문학에 관심이 많던 뉴턴은 삼각법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하다 유클리드 기하학 그리고 어려운 여러 수학책을 찾아보며 수학을 독학을 하게 됩니다.
이는 뉴턴의 여러 업적을 이루도록 만들어주는 바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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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던 와중에 1665년에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그래서 뉴턴은 자신의 고향으로 피신을 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2년 동안 고향에 머물던 시기를 기적의 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정말 많이 죽어나갔지만… 뉴턴의 많은 업적이 이때 나옵니다.
뉴턴 자신도 이 2년동안 새로운 생각들로 가득차고 어느때보다 수학과 철학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이 기간동안 뉴턴은 변화율(미분)이라는 논문을 작성했으며 그 유명한 만유인력법칙에 대한 생각을 이때 하게 됩니다.
이때의 뉴턴의 나이는 24살 정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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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언급하자면 미분학에 관한 논문은 라이프니츠와 거의 동시대에 독립적으로 연구를 했으며 아이디어 자체는 시기상 뉴턴이 먼저 떠올리고 발표는 라이프니츠가 먼저 하게 됩니다.
그런데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이 당시 서신 교환을 하며 의견교환을 했었는데 뉴턴은 이때 라이프니츠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주장하며 라이프니츠는 그 당시에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사용하는 미분법은 라이프니츠의 미분법입니다. 원론적으로는 뉴턴과 차이가 없지만 사용하는 도구들이 라이프니츠의 미분법이 더 편하기 때문이죠.


흑사병이 진정되고 뉴턴은 대학으로 돌아와 석사 학위 시험을 치루고 석사학위를 받으며 평생 학교에서 연구할 수 있는 자격을 받게 됩니다.

이후 뉴턴의 스승이었던 배로 교수가 왕의 사제가 되어 교수직을 떠나고 그 뒤를 이어 뉴턴은 캐임브리지 대학의 수학 교수로 임명됩니다.
이때의 뉴턴의 나이가 27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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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된 이후 뉴턴은 기적의 해에 연구하던 프리즘을 이용한 실험들을 다시 시작하면서 광학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고 이때 뉴턴은 반사 망원경을 제작하게 됩니다.
이 반사 망원경으로 뉴턴은 유명해지게 되고 이 망원경을 바탕으로 뉴턴이 당시 연구하던 빛과 색깔에 관한 이론을 실험을 통해 더욱 확고하게 지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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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로버트 후크의 초상화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뉴턴의 빛과 색깔에 관한 이론의 발표를 시작으로 더욱 유명해지며 뉴턴의 이론에 반박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뉴턴을 시기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됩니다.
대표적 인물이 로버트후크인데 이 인물은 중간에 화해를 한 번 한 것 외에는 뉴턴과 평생 사이가 좋지 않은 앙숙입니다.
왜냐하면 뉴턴이 새로운 이론을 발표할 때마다 공격적인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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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여러 반박들로 뉴턴은 화가 나서 약 2년 동안 침묵을 하며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난 뒤 하나의 가설을 발표합니다.
이 가설은 빛의 특성을 설명하는 가설이라는 논문이었는데 지금은 사장된 이론인 에테르라는 매개 물질에 관한 가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론은 빛의 특성과 우주 공간의 중력을 설명해주는 아주 매력적인 가설이었습니다.

에테르는 마이켈-몰슨의 증명실험으로부터 틀렸음이 확인 되며 이후 아인슈타인에 의해 현재의 이론이 받아들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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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테르에 관한 가설을 제시하고 약 10년 뒤에 천문학자인 에드먼드 핼리가 뉴턴을 찾아옵니다.

여기서 에드먼드 핼리는 핼리 혜성할때의 핼리와 같습니다. 뉴턴이 발표한 principia를 바탕으로 당시 자신이 관찰했던 혜성의 주기를 계산했고 계산결과 75년이라는 주기에 따라 그 후에 사람들은 이를 관측했고 이를 핼리 혜성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핼리는 태양이 행성에 미치는 인력이 행성이 태양에서 떨어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면 행성의 운동 궤도가 어떻게 나타나질지 물어보았고 뉴턴은 타원일 것이라고 답을 합니다.
이에 핼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과거 뉴턴은 이에 대해 자신이 해놓은 계산을 문서더미에서 찾지만 찾지 못하고 나중에 계산해서 보내주기로 합니다.
이후 전에 풀었던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 뉴턴은 타원이 되는 운동을 계산했고 회전하는 물체의 운동에 대하여라는 이름으로 핼리에게 논문을 보내줍니다.
이 논문은 나중에 핼리가 맡아 책으로 출판을 하게 되며 이 책이 그 유명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rincipia)입니다.
이 책에서 뉴턴 법칙이 나오며 동역학의 근대 동역학을 완성하게 됩니다.

자 여기까지 뉴턴이 한 연구는
미분학의 발명
만유인력법칙 발견
반사 망원경제작
무지개빛이 투명한 빛으로부터 나옴을 분석하고 빛의 특성연구
빛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에테르라는 가설 제시
뉴턴 법칙 및 행성 운동 설명

정도 되겠습니다.
이 중에 어느 하나만이라도 발견했다면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중요한 연구지만 뉴턴은 이외에도 많은 연구를 합니다.

그중에 가장 많이 빠져있었던 연구가 연금술이라고 합니다.
뜬금없이 연금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세상을 이루는 기본 입자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던 시절로 뉴턴은 이를 알기 위해 연금술에 빠져들어 수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연구한 자료가 수백페이지에 달했고 큰 제목만 800개가 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는지 느껴지시나요?

또 다른 분야는 종교입니다.
뉴턴은 어느 평범한 사제들보다도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에 대해 잘 알았고 종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 14만 단어가 넘어간다고 합니다.
심지어 뉴턴은 지구의 종말에 대해서도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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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뉴턴의 업적은 광학이라는 책의 출판인데 이 책은 뉴턴의 앙숙인 로버트 후크가 죽고난 뒤 발표하게 됩니다.
이 책에는 자신이 젊은시절 연구한 광학에 관한 다양한 이론과 실험들 그리고 빛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들도 실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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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구들을 한 뉴턴은 노년에는 조폐국 국장과 의회 의원을 하였고 그 후 왕립협회의 의장이 됩니다. 그리고 1705년에는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727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노년에는 과학과 관련되지 않은 일을 한 것 같지만 꾸준하게 연구를 지속했고 광학의 책 출판도 기사작위를 받기 2년전인 1703년에 합니다.

뉴턴은 평생에 걸쳐 연구에 미친사람처럼 학문을 탐구했고 연구를 시작하면 밤잠을 거의 자지 않고 연구에만 매달리고 밥을 먹을때는 앉아서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서서 먹을때도 많았다고 하니 그가 이룬 업적이 자신의 천재성과 엄청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내용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뉴턴의 노년시절의 이야기는 하지 못했네요.
하지만 다양한 업적에 대해서는 소개라도 했으니 다행입니다.
사실, 원래는 삶에 대해서 소개하고 업적들에 대해 하나하나 소개할까 했는데 그러기에는 양이 또 너무 많을 것 같아 고민이 되네요.
아무튼, 오늘의 뉴턴에 관한 포스팅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는 과학자에 대해 포스팅한다면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해당 포스팅에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구글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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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뭐 천재라는 표현이 딱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군요.
한사람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잇는거 같애요.ㅎ

천재중에 천재지요ㅎㅎ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약 성서에 대한 14 만 에 대해 올려 주세요 바쁘시니까 쪼금씩,
Please ^^

제가 종교는 잘 몰라서요...ㅎㅎ
ㅠㅠㅠ

주식한번 잘못해서 코인판에도 곧잘 불려나오죠 ㅎㅎㅎㅎ

돈앞에서는 천재도 어쩔수없나 봅니다...ㅎㅎㅎ

과학관련 내용을 재밌고 유익하게 쓰시는 분이 계셨군요!! 역시 스팀잇의 세계는 넓네요!!! 감사합니다! ^^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ㅎㅎ
자주 놀러와주세요~^^

뉴턴이 농부가 되지 않게 도운 선생님이 고맙네요.
인생에는 그런 분이 필요하죠.
과학은 너무 어렵지만 이런 스토리는 재밌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캠퍼스라이프는.. 도서관만 다니는 지루한 삶을 살고 있어서 뭐 쓸게 없네요...ㅠㅠ
그래도 재미난 일이 있으면 올려보겠습니다ㅎㅎㅎ

참 대단한 분이긴 한데
저렇게는 못 살 거 같네요 ㅋㅋㅋㅋ
삶이 피폐해질듯 ㅜㅜ

평생 빠져서 살아야겠죠...ㅎㅎ
저도 저렇게는 못살것 같아요.. 평범한게 최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