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내 염원을 하늘에 전하는 茶.

in #kr-story7 years ago (edited)

부지당(不知堂) 차(茶) 이야기 18.

5월에는 차 작업으로 바쁜 때여서 부지당 이야기를 올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늦었지만 17편에 이어 다음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앞서 우리 차(茶)는 단군 신화(神話)에서 시작되었던 낱말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桓雄)께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한 여인을 만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바로 ‘덩그리칸’(檀君)이 되었고,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워 민족의 역사가 사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점은 이같은 우리 민족의 신화(神話)가 오천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의 생활 속에 유형 무형으로 남아 우리의 의식주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나는 그것이 우리기 차례(茶禮)문화를 지속시켜왔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차례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언구는 한국인으로써 자신의 정체(正體)성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일 것입니다.

먼저 과거 천제(天祭)의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상상력을 동원하여 추정해 보겠습니다. 앞 장 ‘까마귀’편에서 나는 단군께서 천제를 지냈던 강화도 마니산 정상(頂上)의 제단(祭壇)과 그 주변 전경(全景)을 사진으로 올려 보여주었습니다. 그 곳에는 넓은 제단이 만들어져 있고 큰 나무 한 구루가 서있고. 우물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 문명의 여명기에 천제(天祭)가 어떤 모습으로 치루어졌을지를 추측해 낸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소리로 들릴런지 모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마다 연례 행사처럼 치르고 있는 한국인들의 차례(茶禮) 모습을 살펴보면 대강이나마 그 답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민족 신앙은 잘 변하지 않고 전해지는 경우가 많고 특히 그 형식의 핵심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인들의 차례는 유교문화에서 온 제사(祭祀)와 짬뽕이 되어 있어 구별이 쉽지 않지만, 잘 살펴보면 천제 전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밤이 아닌 한낮에 지낸다는 점, 그리고 제사와 달리 절을 세 번씩 한다는 점, 또 잔을 올릴 때 망자의 위패 마다 모두 술잔을 올리지 않고 단지 큰 그릇에 한 잔으로 모아 제를 지낸다는 점 등이 그것입니다. 이같은 차이점은 과거 천제를 올렸던 제사형식이 그대로 남아 전해진 것이라 봅니다.

제사장은 먼저 제물(祭物)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 재물들은 아마도 부족들이 수확한 생산물들이 될 것이고,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제단 옆에서 길러진 ‘물’이었을 것입니다.
‘물’이 중요한 이유는 고대인들의 관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볼 때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물 뿐이었고, 그것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生命)이 유지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祭)를 지낼 때 자신들의 기원(祈願)이 하늘에 전해질 수 있는 ‘물’을 제물로 올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같은 사실은 지금도 차례를 지낼 때, 제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술을 올리는 형식으로 알 수있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절차는 제단에 올려진 물 위에 잎을 띄우는 형식입니다. 이 잎은 바로 제단 옆에 서서 하늘과 교신(交信)하는 우주목(宇宙木), 이른바 신단수(神壇樹)의 나무 잎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물을 준비하고, 하늘에 소원을 빈 다음, 어떻게 마무리를 했을까요? 그것은 자신들의 소원이 하늘에 전해지게 만드는 작업을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 답은 우리가 차례를 지낸 후 행하고 있는 지방(紙榜) 태우기를 주목해 보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들이 제사를 다 지내고 난 후 제단 앞에 붙여놓았던 신주 위패를 떼어 태워 날리는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고대인들이 천제를 지낸 후 그 마무리를 어떻게 했을지 짐작해 낼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제단 옆에 서있는 신단수 잎을 따서 새의 부리에 물려 하늘에 날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같이 추정하는 이유는 제단 근처에서 발견되는 문화 유물 때문입니다. 바로 솟대입니다.

솟대는 그 시작 연대를 짐작하기 어려운 우리 민족의 문화 유산(遺産)입니다. 이것이 높은 장대에 새가 얹어져 있는 모습인데, 이 새가 어떤 종류였는 알 수 없지만 주둥이에 풀잎을 물고 있는 게 많이 발견됩니다.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고 그 유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오래된 우리네 민족문화의 유산임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솟대의 용처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은 그것이 발견되는 곳이 주로 마을의 중심인 사당(祠堂)이나 동네 입구나 동산에 있다는 사실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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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이 제사장이 천제를 지낸 후 제단 근처에 있는 나무를 신(神)과 교신할 수 있는 나무, 즉 신단수(神壇樹)로 간주하고 그 나뭇잎을 새 주둥이에 물려 하늘로 날리는 형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 때부터 솟대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부작(符作)으로써 기능을 하였고, 우리의 의식주 생활로 스며들어 다양한 문화적 개성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를테면 전통혼례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 혼례식의 내용은 남녀가 하늘에 신고하는 제사를 기본으로 깔고 있습니다. 기러기를 들고 입장하거나 마지막에 닭을 날리는 형식등이 바로 고대(古代)에 천제의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같은 것들은 추정만 했을 뿐 확신을 갖지는 못해습니다. 하지만 차(茶)를 만난 후부터 이것은 신념으로 바뀌었습니다.

차라는 글자는 풀초(艹)가 맨 위에 있고, 밑에 나무(木)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글자 중간에 ‘인(人)’인지 ‘팔(八)’인지 알 수 없는 글자가 끼어있습니다. 나는 이 중간 글자가 무엇인지의 알게 되면 차의 진실이 풀리게 될 것이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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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것이 사람(人)을 상징하는 글자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무래도 그것들이 상호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무 위에 사람이 올라가 풀을 가지고 논다고 해석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문자(文字)의 생성(生成)을 연구하는 서지학(書誌學)자들의 연구 논문에 팔(八)자가 새의 날개에서 비롯된 글자로 본다는 이론을 접하고, 그 순간 나는 무릅을 쳤습니다.

풀을 물고 하늘을 나는 새의 모양을 상징하는 문자라면 그것은 우리 고대 제사 문화 유형과 그대로 맟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솟대입니다. 결국 차(茶)는 솟대를 상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나의 추리가 맞다면 이제까지 기호 식품의 한 종류로만 여겼던 차(茶)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뒤집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차(茶)의 종주국으로 자처해온 중국인들에게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게 될 것이고, 다도(茶道)로 온갖 폼을 잡았던 일본 또한 속이 뒤집어 지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다만 중국과 일본의 차를 쫒아 다니며 그들의 문화를 홍보하고 다니는 한국의 차인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드릴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차가 솟대에서 비롯된 문자였다는 것이 정설(定說)이 될 경우, 우리가 얻게 될 유형 무형의 소득은 상상을 뛰어 넘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 번에도 이 이야기를 좀 더 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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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를 고대문자로 찾아보니 나오지 않는군요. 이럴 수 가...
八은 나눌 팔이라고도 하는데 새의 날개로 근원을 보는 관점도 재미있네요. 저도 조사와 사유를 해봐야겠습니다. 계속 올려주세요. 모리거사님 ^^

관심을 보여주니 반갑네요.
차는 나의 뿌리를 찿아가는
즐거운 여행될 것입니다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