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나는 예상 시기보단 느리게 가곤 하지만 목적지에 가고 있는 거 같다 믿는다.
20살이 되기 전 '20대에는 최대한 많은 경험과 지역을 돌아다니겠다'는 다짐이 그랬고,
7년 전 쯤이던가, ' 제주에 일정 기간 살아보고 싶다'는 다짐이 그랬다.
하지만 20대 되기 전의 30대에는 특정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 목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있긴 했다.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여전히 30대 들어선지 오래 됐지만 나는 여전히 떠돌아만 다니는 중 이고,
7년 전쯤 제주에 일정 기간 살아보겠다는 마음은 몇 달에서 1~2년 정도였지만 아무래도 더 길어질거 같다.
다만 그 길어짐이 이동네는 아니고 제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동네에 익숙해 졌지만 이제 정말 이곳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을거라 무언의 압박.
어서 커리어를 쌓으라고, 그러려면 더 시도하고 적응할 지역을 찾으라고 삶이 내게 압박을 한다.
2달 전, 나는 3달안에 이 동네를 뜰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세 달 안에 어떻게든 결판을 보자고 생각하며 임시 거처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일요일 여행을 해야겠다고, 제주에 있으니 여행하며 삶을 즐기자 다짐은 그러했지만
그 여행은 단순 여행이 아니라 나의 생계를 책임질 여행이 되기도 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선 나는 오늘 안 가본 우리 동네의 구역, 법환 마을을 뚜벅이로 걸어보기로 했다.
서귀포 혁신도시로 명칭을 가지고 있는 신시가지 주변에 내가 제주 마을이 있는 동네는 두 곳이다.
호근동과 법환마을.
아마도 신시가지 계획도시가 조성되기 전 마을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이미 아파트거나 신식건물이거나 공사판이다. 오늘은 월드컵경기장 밑으로 부터 있는 법환마을을 걸어다녀 봤다.
항상 바다 가까이에 있는 마을을 동경해왔으니까.
이게 내가 제주에 온 이유기도 했고...
아직 월드컵 경기장 바로 밑쪽은 개발되지 않았다. 옆의 대로변을 따라서는 쉴세없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아직 안쪽은 귤밭이었다.
돌담과 새소리, 밭들
하지만 밭을 지나 5분도 안되어 원래 부터 있었을 법한 동네가 보인다.
골목골목
미로같은 올레길들
미리 준비해둔 종이 지도로는 방향을 잡기에 역부족이다.
내 호기심이 더 깊은 골목으로 발을 들여놓게 했다.
잃어버렸다 길을
괜찮다
결국은 저 벌리 바다로 이어질 꺼니까
그러면다시 그길은 내게 익숙한 길일 것이다.
빨래줄에 걸린 할머니의 속옷
사람이 살지 않는 골목의 집
돌집에 짚 지붕의 제주식 집의 슈퍼.
그 안의 공간은 5평이나 될까? 그 안에 보이는 진열장의 소주병
그 앞에서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의 등을 쓰다 듬는다.
그리고 이따금씩 보이는 팬션같은 집들.
동네는 그렇게 끝났다.
밭과 비탈진 언덕에 집촌을 봤을 땐 약간은 설레었다.
밭이 막 시작될때 2~3개의 팬션이 보였고, 그 바로 아래에 있는 동네에서는 범섬을 비롯해 먼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촌같은 동네.
순간 '이런 동네에 정착하는건 어떨까?' 생각해 봤다.
그런데 나는 이런 시골 동네에 버틸 자신이 있을까?
인터넷의 공간에서조차 익명의 나로 있기를 바라는 내가?
내가 알게될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나는 받아드릴 수 있을까?
그들이 내게 필요한건 있을까?
없다.
그 공간에 내가 있을 이유가.
내가 하고싶은건 그 동네에 피해를 줄 뿐일수도 있다.
동네 중앙으로 있는 나름 동네의 클 길을 지나 바다 가까이에 간다.
공사 중인 곳, 공사 준비 중인 곳이 여러군데 보인다.
바닷가에서 잠시 앉아 낚시하는 동네 아저씨들 구경을 하다가
올레길을 따라 결국은 신성리조트 앞까지 갔다가,
동네 중심인 우체국으로 돌아오고,
그리고 다시 월드컵 주차장으로 그 마을을 지나 돌아간다.
1시간 반정도 걸었다.
3시간은 걸리줄 알았다.
생각보다 발은 빠르고,
동네는 작다.
사람은 적다.
나는 어디서 살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