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머무는 동안 외국인들이 기본적으로 가보는 만달레이나 바간도 여행하면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친구의 고향인 켄퉁시(Kengtung, 현재는 Kyaingtong으로 표기) 방문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가깝게 지내던 현지인 동생들도 이 곳 출신이 많았다. 이 곳은 미얀마 동북쪽에 위치한 샨주(shan state)의 동쪽에 위치하며 양곤에서 비행기로 2시간 차로는 2일이 걸리는 산간 지역으로 태국, 라오스 그리고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켄퉁에서 50키로정도 북동쪽에 위치하고 중국과 국경을 접하는 몽라(mongla)라는 도시는 제4번 특별지역으로 반정부활동이 있던 지역으로 평화협정 후 행정자치구가 되어 외교권을 제외한 상당부분의 자치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곳의 주요 고급 관리들과 학교 병원등에는 아카라는 부족 출신들이 많은데 친구도 같은 부족 출신이다.
미얀마에는 약130개 이상의 부족과 언어가 존재 하는데 그 중 하나인 아카어를 쓰는 아카민족은 국경 주변의 중국과 태국에도 나뉘어 살고 있으며 매년 부족 행사시에는 이 곳 켄퉁에 모여 축제를 하곤 한다. 친구의 아버님이 이 모임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몸에 마비가 온 이후로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지금은 평범한 촌부로 살고 계신다.
이 곳 켄퉁지역은 외국 사람들에게는 골든 트라이앵글이라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예전부터 지금도 산간 지역에서는 무장을 한 조직들과 함께 양귀비 재배를 하고 국경을 통해 밀거래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들은 이야기들은 다 쓸 수도 없지만 예전에는 어디 아프면 그 잎을 차 다리듯이 하여 마시면 낳았다는 이야기는 친구세대와 노인들에게서 많이 들었다. 물론 예전에는 아플 때에 약을 사 먹을 수 도 없었을 테니 민간요법의 하나로 대안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켄퉁지역이 통제 지역인 것을 모르고 허가도 없이 공항에 내려서 공항 경찰한데 불려가고 친구 친척이 잘 처리해서 위기를 넘기고 하였던 것도 이제는 웃음을 자아내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한가지 고무적인 현상은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의 노력으로 대체 수입을 위해 현재 많은 농가들이 녹차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중국상인이 와서 거의 전량을 중국으로 가지고 가는데 차 맛이 좋기로 소문나서 이에 대한 자부심도 커지고 있다. 일부 농가는 커피재배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 곳 산간 주민들이 수익활동을 다변화 하여 불법적인 양귀비 재배와 중독에서 벗어나는데 일조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태국과의 국경도시인 따칠레이크(tachileik)는 가 볼 시간이 안되었고 중국 국경도시인 몽라는 하루 시간을 내어 방문하였다. 특별자치지역이라 켄퉁시와의 경계에서 다시 외국인 신고를 하고 여권을 맡긴 다음 되돌아 올 때 다시 받았다. 중국과의 국경무역의 중요한 도시중의 하나이고 카지노를 하러 넘어오는 중국인들이 많아 호텔과 상점들을 건설하느라 분주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를 가든지 교통의 중심지는 부동산 개발이 큰 비즈니스 인 것은 틀림 없는 듯 하다.
켄퉁 도심 인구는 약 3만명 정도라고 한다. 어디나 그러하듯 도심 외곽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으니 켄퉁 전체인구는 대략 30만명 정도로 파악된다고 한다. 산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든 이유로 실제는 좀 더 많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미등록 주민들이 존재하며 아직까지는 관리가 완벽하지는 않은 듯 하다. 시장에는 상당부분의 공산 제품들이 중국산과 태국산이다. 미얀마 자체의 제조시설이 빈약한 이유도 있지만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제품들이 가격이 더 저렴하고 미얀마 제품보다 품질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교통수단은 중국산이나 태국산 오토바이이고 트럭 같은 경우는 대부분 중국산 저렴한 트럭들이다. 일부는 경운기 디젤엔진이나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뒤에 승객 여러명을 태우도록 만든 승합차(오토바이에 큰 니어커를 붙인 것 같은 개념)를 이용하기도 한다. 시장에서는 300원정도 하는 간단한 국수부터 1000원이면 고기국수나 고기 덮밥 같은 것을 쉽게 먹을 수 있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면 핸드폰 사용자도 많이 늘어 젊은 친구들은 중국산 스마트폰, 나이드신 분들은 일반폰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 지금은 2년 전 내가 방문했을 때보다 네 다섯 배는 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켄퉁시내는 전기가 공급은 되지만 단전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사고로 전봇대가 쓰러지거나 발전기가 고장나면 수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런 이유에서 상점등에는 디젤 경운기 엔진등을 이용해서 자가 발전 설비를 갖추고 있는 곳도 많이 볼 수 있다. 시내를 벗어나면 전등 몇 개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저가의 태양열판을 이용하는 곳도 많다. 내가 머물던 친구의 집은 진입로 전봇대가 넘어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시골 생활이 그렇듯이 전기 없으면 해지기 전에 저녁 먹고 어두워지면 일찍 자고 새벽에 닭이 울면 일어나고 자연에 순응하는 뭐 그런 것이 살아가는 방법...
다행인것은, 5월이면 미얀마 대부분이 아주 더울 시기인데 그래도 켄퉁은 해발 고도가 높은 산간이라 양곤처럼 덥지는 않아 밤에 견딜 만 했다.
시내 전체적인 주변의 외형 분위기는 우리나라 80년대 이지만 핸드폰사용자들과 일부 부유층들의 차들을 보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이 곳도 우리나라 농촌처럼 시내의 젋은 친구들은 공부와 취업을 위해 큰 도시로 나가는 추세이고 농사만 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도시 외곽 지역은 그런 생각조차 못하고 농사 일에만 전념하는 생활을 한다.
불교의 영향이 커서 어디서 어떻게 살든 다 자기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의 생을 위해 선하게 살려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있어 어디를 가든 친절하고 미소짓는 것을 보면 삶의 질은 우리보다 높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내가 머무는 동안 친절하게 이것 저것 챙겨준 친구의 가족과 친척들의 따스함이 아직 가슴에 남아있어 다시 한 번 방문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본다.
감사합니다. @bizventurer
또 가실 계획이 있으신가보네요 ㅎㅎ
좋은 경험과 글 잘 보았습니다.
다음글 또 기대해 보겠습니다.
계획은 많은데 실행이 잘 안되네요. 읽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파워는 약하지만 보팅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Welcome to our country and nice to meet you.
Please follow me @patricksanlin and upvote. Thanks
감사히 보았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기만 해도 글쓴 보람이 있어 행복합니다. 댓글 다시는 분은 무조건 눌러드리기로 ㅎㅎ
싱감나는 포스팅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얀마에 관해 한국말로 쓰는 걸 처음 봤습니다. 얼마나 오래 거기에 있었습니까?
대단하네요... 위에 헨리가 미얀마 사람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