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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9]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한 벽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안에는 벽화가 많이 놓여 있습니다. 작을 재료를 붙여 만든 모자이크도 있고 물감으로 그린 것도 있어요. 어떤 벽화는 액자에 넣어 전시되어있고 어떤 벽화는 원래 있던 공간을 복제해서 그 안에 전시되어있습니다. 여기 놓인 몇몇 벽화와 모자이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있었던 폼페이에 관한 특별전에서 본 기억이 있어요. 서울에서 볼 때는 벽에 정원 그림 그려 놓는다고 방이 커 보이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저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벽에 뭔가 칠해 놓은 걸 자주 보았기 때문에 익숙해져서인지 전시된 벽화가 공간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막힌 벽에 그려 놓은 유리창은 정말 있는 거처럼 보였어요. 창 그림이야 실제처럼 빛이 쏟아지지는 않으니 좀 어설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식물은 빛을 반사하는 면도 적고 해서 정말 똑같이 보입니다.
요즘은 벽면을 액정화면으로 채우기도 합니다. 벽화도 액정화면에 뒤질 게 없어요. 카메라로 녹화해서 보여주는 화면도 제가 실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진 않습니다. 예전에 진짜같이 보이던 컴퓨터 그래픽 효과가 지금 보면 정말 하찮아 보이는 것처럼 사진이 없던 시대는 벽화가 진짜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리고 화면이든 벽화든 생명 유지를 위해 기껏 벽을 둘러서 공간을 만들고는 밖이 그리워 놓은 거란 점에서 둘 다 이상하긴 마찬가집니다. 벽화가 시시해 보인다는 생각을 그대로 지금 저에게 가지고 와보면 지금 제방에 발려져 있는 벽지도 나중에는 참 우습게 보일 겁니다.
나폴리 박물관에서 관람객이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층 중앙에는 큰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의 넓이만큼이나 높은 천장은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어요. 다행히도 이 공간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충분히 커서 다음 나올 큰 공간이 충격적으로 다가오진 않습니다. 높은 천장에 그려진 창문이나 문틀 그리고 기둥들은 얼핏 보았을 때는 진짜로 보였어요. 들어갈 곳이 들어가 있는 창문과 나올 곳이 나온 기둥을 보고 그림이란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림입니다. 그래서 한번 놀라고 뒤에 또다시 자세히 보니 일부는 정말 창문이어서 놀랐습니다. 그림이니 위치를 달리하면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비수기에다 폐장시간이 다가와 사람이 없고 약간 어둡기까지 한 그 큰 공간에서 혼자 진실과 거짓 사이에 당황한 제 모습은 남에게 볼만한 구경거리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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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0]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큰 홀
저는 어렸을 때 사진을 찍으면서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로 본 세상은 서로 다른 두 값의 연속이지요. 디지털 사진을 확대해보면 더 이상 나뉘지 않는 작은 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막 흥할 때는 얼마나 많은 점을 나타낼 수 있는지가 중요했어요. 한 사진을 표현하는 점의 개수가 백만 개인지 삼십만 개인지는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났습니다. 색과 명암 표현은 설명하기 복잡하니 일단 제외하면 표현하는 점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사진은 더 현실과 똑같아집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점을 추가해도 세계는 늘 더 작은 점들로 나뉘어 표현돼요. 제 눈에 들어오는 빛을 이루는 광자 하나와 사진 속에 점 하나가 일치하는 사진이라 해도 제가 보는 세계를 그대로 나타낸 거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려진 창문은 일단 진짜 창문을 따라 한 겁니다. 정교한 기계인 사진기보다 사람 손이 잘났을 리 없어요. 그런데 저는 진짜 창문과 그려진 창문을 혼동했습니다. 저는 제가 생각한 대로 그려진 창문을 진짜 창문으로 본 겁니다. 제 눈에 똑같은 색이지만 어떤 뛰어난 감각으로 보면 다른 색일 수도 있어요. 곡선이 직선으로 보이고 같은 길이의 선분이 서로 달라 보이는 것 같은 착시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지요. 그림이 진짜 같은 경험은 그림보다 더 거칠고 엉성한 모자이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은 배워야 하고 연습해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진 보는 방법은 제가 익숙한 모국어 같은 거예요. 사진을 이해하는 방법에 익숙하니 굳이 외국어 같은 그림과 모자이크를 찾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림과 모자이크도 사진을 통해 봐요. 그래서 여행을 시작했을 때 모자이크나 벽화가 어설프게 느껴진 거고 여행을 다니며 사진이 아닌 다른 걸 보는 방법이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기에 벽화와 모자이크를 보고 일상과 다른 경험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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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다시 파이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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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virus707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