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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lude - Blackened
Chapter 1 - Dog King(1)
Chapter 1 - Dog King(2)
Chapter 1 - Dog King(3)
Chapetr 2 - HERO(1)
Chapetr 2 - HERO(2)
Chapetr 2 - HERO(3)
Chapetr 2 - HERO(4)
Chapetr 3 - Vertigo(1)
“신일 군!”
적막을 깨는 목소리에 신일은 고개를 들었다. 식장 반대편, 김 소령이 다급히 손짓하고 있다. 빨리 이쪽으로 와 주게. 그의 손놀림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역시, 뭔가 수상하다. 신일의 눈을 사로잡은 건 의심스럽게 상기된 김 소령이 아닌, 그 옆에 선 낯선 여인의 존재였다. 그녀는 얼핏 김 소령의 일행처럼 보였지만, 둘의 관계가 특별히 돈독해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길 원사와 설면하게 인사를 나누고 걸어가면서도 신일은 두 사람을 번갈아 훑어봤다. 김 소령의 경직된 자세와 어색한 웃음, 저건 결코 옛 동료의 안부를 물으려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김 소령은 오랫동안 신일을 찾아 헤맨 사람처럼 안달이 나 있었다. 재촉하듯 상대를 불러 세운 김 소령이 다짜고짜 옆에 선 여인을 신일에게 소개했다.
“인사하게. 이 분은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계시는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소속 정혜원 경위이라네.”
느낌이 좋지 않다. 신일은 이전에도 몇 번, 이런 김 소령의 모습을 본 적 있었다. 이건 그가 거드름을 피우며 잘난 체 할 때 주로 보이는 행동이다. 무슨 일이건 자기 공 추켜세우기에만 급급한 김 소령이었다. 그가 아무 이유 없이 사건 담당수사관을 나에게 소개할 리 없다.
“안녕하세요? 정혜원이라고 합니다.”
“예, 나신일입니다.”
“이 친구가 제가 말씀드린 그 친구입니다. 아마도 신일 군이 이번 수사에 큰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합니다만….”
지난 몇 년 간 가까이서 지켜 본 사람처럼 말하는군. 신일은 그제야 이번 일이 돌아가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살인사건과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요. 바쁘시겠지만, 수사에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지막하지만,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목소리다. 한가운데 묵직하게 꽂히는 직구를 흘려보내며 신일은 수사관의 얼굴을 살폈다.
도무지 경찰처럼 보이지 않는 여인이다. 밋밋한 광대뼈 위로 솟은 콧대가 도드라지고, 짙은 눈썹 아래 또렷한 눈망울이 검게 빛난다. 예리하게 내깔린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그녀를 경찰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 글쎄요, 저 같은 사람이 따로 도움 드릴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이번 사건에 신일 씨의 지식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들과 관련해서 신일 씨에게 여쭤볼 게 있어서 말이에요.”
이건, 더 이상 도망갈 여지를 안 주겠다는 거군. 이 정도면 제법 능숙한 퇴로차단이다. 신일은 곁눈질로 김 소령을 쏘아봤다. 저 인간의 치졸함에는 화가 나지만, 그걸 굳이 이 여자에게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혹시 한인건 대령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들으셨나요?”
“아뇨, 전 부고소식만 듣고 온 거라…”
“한인건 대령은 이틀 전 회식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에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어제 오후, 부대 인근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발견됐어요. 건물 5층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요.”
“아파트 건설 현장이라고요?”
“예, 직접적인 사인은 추락사였지만, 그 전에 이미 예리한 흉기로 여러 차례에 걸쳐 자상을 입은 흔적이 발견됐어요.”
“그럼 추락하기 전에 이미…”
“누군가에 의해 난도질당한 채 떠밀려 떨어진 거예요. 현장을 둘러보니 죽기 직전, 어디선가 납치되어 끌려온 것 같더군요.”
“죽기 전에 납치를…”
“그리고 이게 돌아가신 한 대령의 안주머니에서 발견된 쪽지입니다.”
“쪽지? 쪽지라고요?”
“이것 때문이에요. 저희가 나 선생님께 도움을 구하려 이유 말이에요.”
수사관이 펼친 수첩 뒷면, A4 용지 크기의 출력물이 곱게 접혀 있다. 그녀는 엄지와 검지를 수첩 사이에 구겨 넣어 끼워진 종이를 천천히 펼쳤다.
“괴상한 쪽지군요.”
“예, 피해자의 옷 안주머니에 있더군요. 피가 묻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한 흔적도 보이고요.”
“피가 묻지 않도록…”
“예, 일부러 보란 듯이, 말이죠.”
그녀는 보란 듯이, 란 말을 의도적으로 강조했다.
“사람을 죽이고 이런 글까지 남기다니, 기분 나쁜 놈이네요.”
“기분 나쁜 짓이라면, 그뿐만이 아니에요.”
“예?”
“범인은 한 대령을 살해하기 직전, 피해자의 몸에도 어떤 흔적을 남겼거든요.”
“한 대령님의 몸에?”
“예, 저희가 이번 사건을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판단하게 된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그게 그러니까…”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신일은 무의식적으로 읽어 내려가던 쪽지에서 눈을 뗐다. 말끝을 흐리는 수사관의 초점이 순간 불안하게 흔들렸다.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한 대령님을 살해하기 전에… 입을 꿰맨 것 같다고 하네.”
식당 가득 찬 육개장 냄새에 눅눅한 불길함이 스며난다. 눈앞에 번쩍이는 하얀 불꽃에 신일은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뭐, 뭐라고요?”
“김 소령님 말씀대로에요. 부검 결과,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 피해자를 마취약으로 제압하고 먼저 입을 꿰맨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정신이상자의 무차별 살인에서는 흔치 않은 행동이에요. 오히려 이런 사체훼손은 증오범죄에서 자주 나타나는 패턴이죠.”
“…증오 범죄.”
“예, 범인은 귀가하는 한 대령을 납치한 후 굳이 외딴 장소로 끌고 가서 입을 꿰맨 채 살해했어요. 특히 현장에 남은 발자국의 움직임을 분석해보면, 그가 피해자를 사냥하듯 이리저리 몰고 갔음을 알 수 있죠. 이건 피해자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심어주려는 의도에요. 상대의 단순한 죽음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거죠. 무엇보다 걱정인 건, 범인이 이런 범행을 저지르면서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는 점이에요. 사체에서는 주저흔(躊躇痕)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를 찌르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는 거죠. 모든 범행과정을 통틀어 자신이 직접 남긴 메시지 외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 역시, 우려할 만한 일이죠. 만일, 이 자가 이런 엽기적인 만행에도 눈 하나 깜짝 않을 정도의 사이코패스면서, 완전범죄를 시도할 만큼 탁월한 범죄자라면 이 자를 잡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열악한 단서들로 범인의 심리적 몽타주를 그려나가는 수사관의 눈빛이 치열하게 빛난다. 신일은 옆으로 걸쳐 짚은 다리를 집어넣으며 쪽지 속 문구를 다시 찬찬히 살폈다.
“범인은 피해자의 몸과 쪽지를 통해 메시지를 뚜렷이 전하려 했어요. 메시지의 내용으로 보아, 인문학적 지식에 대한 지적 허영심이랄까, 자기과시욕적인 성향이 대단히 강할 것으로 추정되고요. 이게 현재까지 저희가 파악한 수준의 정보입니다.”
“자, 잠깐만요, 범인이 피해자의 입을 꿰맨 것만으로도 무슨 메시지를 남겼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그… 입을 꿰맨 게 말이죠.”
“예.”
“그 자체가 또 다른 메시지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무슨 소리에요, 그게?”
“신일 씨, 혹시 마피아에 대해서 아시는 게 좀 있으세요?”
“마피아라면, 그 범죄조직 마피아를 말하는 겁니까?”
“맞아요. 바로 그 마피아 말이에요.”
“갑자기 마피아는 왜?”
“범인이 피해자의 입을 꿰맨 모양이요. 그 꿰매진 실밥 모양은 누가 봐도 알파벳 엠(M), 에이(A), 에프(F), 아이(I), 에이(A)의 글자꼴이었거든요. 영문으로 쓴 마피아라는 단어, 혹시 이게 이번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나 해서요.”
머릿속에 거대한 수도꼭지라도 열린 기분이다, 신일은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조용히 되뇄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의심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추리고, 무엇을 버려야할지 그는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눈앞에 드리워진 깊은 어둠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떤가요? 뭔가 좀 연결되는 구석이 있는 것들인가요? 이것저것 뒤죽박죽인 상태라 저희는 도저히 감이 안 잡혀서 말이에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얘기가 있으면….”
신일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하지만,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생각의 잔가지를 솎아내며, 그의 호흡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증오범죄와 마피아의 연결고리라면 뭐가 있을까. 복수심에 누군가의 입을 꿰맸다는 건 마피아의 오랜 불문율, 오메르타(Omerta)를 위반한 자에 대한 응징일 수도 있다. 발설해서는 안 되는 비밀을 외부에 알린 자에 대한 복수, 그 침묵의 계율이야말로 마피아를 진짜 마피아로 만들어 주는 규약이니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신일은 고집스레 닫은 아래턱을 가로저었다. 그렇게 보기엔 범인이 남긴 메시지, 저 의심스러운 쪽지가 마음에 걸린다. 범인이 남긴 글, 저건 침묵의 계율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저 글에 따르면 범인이 한 대령에게 원한을 품은 건, 그가 발설해서는 안 되는 비밀을 폭로했기 때문이 아니다. 저건 오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