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 씨, 한 가지만 더 물을게요.”
“예, 얼마든지요.”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인데요. 만약, 범인이 신일 씨가 생각한 대로 피해자들과 같이 근무했던 자이고, 범인이 지금 그때 있었던 어떤 일에 대해 복수를 하는 거라면….”
“그렇다면요?”
“…제일 먼저 죽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일 거 같아요?”
“예?”
그녀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무례인 줄 알지만, 솔직히 답해달라는 무언의 압박. 허를 찌르는 한 방에 신일은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그, 글쎄요. 그건 좀…”
“아뇨, 부담 없이 신일 씨 생각을 듣고 싶어서요. 어차피 오늘, 수사에 협조해 주시려고 먼 길 와 주신 거잖아요.”
그녀는 이번에도 쉽게 퇴로를 열지 않았다. 타협의 여지없는 단호한 어조라니, 이렇게 작정하고 다그칠 정도라면 지금 그녀에게 서투른 핑계 따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상대는 프로파일링에 정통한 수사관이다. 어줍지 않게 잔머리를 굴리다 괜한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 솔직히 자기 의견을 밝히는 게 특별히 문제가 될까? 사실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아니다. 이 모든 게 정말 진하, 아니 그즈음 그곳에서 군 생활을 누군가의 소행이라면, 그가 반드시 응징하려할 사람의 이름은 누구라도 알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아무래도?”
“…도경욱 중사, 겠죠.”
“도경욱.”
“예. 범인이 당시 교관실에 있었던 사람을 범행대상으로 삼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도 중사는 거기 포함될 거라 생각해요.”
“그 이유라면 역시….”
“예, 꽤 악명 높은 사람이었거든요. 병사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행위를 가하는 걸로 유명했어요. 그러니까 뭐랄까….”
“아니에요. 어떤 의미인지 저도 잘 알 것 같네요.”
원하는 답을 충분히 들었다는 듯 혜원은 가차 없이 신일의 말을 잘랐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할 때 그녀의 표정은 심상치 않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 이름이 언급될 걸 예상한 사람 같았다. 혜원은 찬찬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류철을 훑는 척 했지만, 그녀의 시선이 저 서류뭉치에 있지 않다는 걸 신일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경찰 생활 중 만난 어느 악마 같은 상관의 얼굴이라도 떠오른 걸까. 그게 아니라면….
“참 재미, 있어요.”
재미? 도경욱 중사의 이름을 듣고 처음 꺼낸 말이 재미있다, 라니. 혜원의 얼굴에 힘없는 미소가 번진다. 전에 본 적 없는 메마른 웃음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경욱 씨라고 하셨죠?”
“예.”
이제 그녀의 뺨에는 그나마 남아있던 웃음기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건조한 그녀의 음성에 얼핏,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리는 것 같다.
“저번에 신일 씨가 말한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들 신분을 조회하면서 몇 분들과 통화를 하게 됐어요. 길성우 원사나 김상원 소령, 주인태 하사 같은… 다 아시는 분들이시죠?”
“예, 당시에 다 함께 근무했으니까요.”
“그분들께도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만약 범인이 이러한 조건의 사람이라면 그가 누굴 제일 먼저 노릴 것 같은가, 라고요. 하나같이 똑같이 답하시더군요. 신일 씨를 포함한 네 사람이 모두 같은 인물을 지목한 거예요.”
“그야…”
“아니에요, 무슨 말씀하려는지 알아요. 말로만 들어도 도경욱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으니까요”
오늘 진짜 이상하군. 이런 엉거주춤한 태도는 신일이 지켜본 혜원의 모습과는 달랐다. 서류철에 꽂혀 꿈쩍 않는 그녀의 시선을 신일은 옹골지게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도경욱 중사 말이에요.”
마침내, 그녀가 입을 뗀다. 여전히 긴장한 목소리와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지난 5월에 변사체로 발견됐어요.”
“예?”
“역시, 라고 해야 할까요. 말씀하신대로, 아니 모든 분들의 예상대로 범인이 가장 먼저 노린 대상이 도경욱 씨였다고요.”
에블린 드 모건(Evelyn de Mon), 죽음의 천사(The Angel of Death), 1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