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민작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가 1914년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마음]에 대해 제 소박한 감상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1914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마음의 서사시라고 불리듯
인간의 복잡미묘한 마음에 대해 섬세하고도 치밀하게 묘사되어
여전히 현대적이고 잘 쓰여진 작품입니다.
허나 시대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 선생님과 나
2부 : 부모님과 나
3부 : 선생님과 유서
3부가 이 소설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1, 2부는 3부에 다다르기 전까지 추리소설처럼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3부가 시작되면 1, 2부와 달라집니다. 어찌보면 짜증나는 캐릭터일 수도 있다고 여기겠지만
대부분 마음이 괴로울 때 우리도 선생님처럼 저런 면이 있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던 점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스토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나'는 가마쿠라의 한 해수욕장에서 '선생님'을 만나 한눈에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선생은 타인과 거리감을 두고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나'의 적극적인 태도로 두 사람은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지만 '나'가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 있는 사이 선생은 '나'에게 유서를 보내고 목숨을 끊는다. 선생의 유서에는 왜 그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게 되었는지가 담겨 있었다.
선생은 학생이었을 때 친구인 K와 둘이서 하숙집의 딸을 좋아했는데 친구를 속이고 그녀를 가로채었다. 이를 알게 된 K가 자살하자 이후 선생은 줄곧 절망에 빠져 살게 되었다. 소세키는 <마음>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자괴감, 근대를 지탱하던 '시대의 윤리'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연을 묘사했다.
--- 이상 스토리는 알라딘에서 인용했습니다.
- 친구 K를 하숙집에 왜 데려온 것일까?
선생님은 친구 K가 이상이 너무 높은 점, 균형 잡히지 못한 세계관(태도)을 균형 잡기 위해 친구를 하숙집에 굳이 무릎까지 꿇어가며 데려옵니다. 3부의 편지가 인간의 윤리적 어두운 문제를 알려주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보면 선생님의 행동 및 태도는 무의식적인 측면에서 친구 K를 궁지에 몰고 갔습니다. K가 자살한 후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알리러 갔을 때 자신이 생각지도 않았던 말을 내뱉곤 당황합니다. 아주머니와 아가씨에게 죄를 졌다고. 숙부가 선생님에게 계략을 부렸던 것처럼 그 또한 무의식적으로 K, 아주머니, 아가씨 모두에게 계략을 부린 것으로 보입니다.
- 신념(믿음, 자신감, 강함)과 의심(열등의식, 질투, 약함) 사이에서 일렁이는 마음 또는 자아에 대해 당시 국제정세와 관련해 이야기해요.
지킬박사와 하이드엔 가해자의 분열적인 욕망이 엿보인다면 [마음]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후 죄의식으로 찌그러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킬박사의 하이드]에서 욕망은 이중적입니다. 마음껏 욕망을 발현하고 싶어합니다. 그게 규범을 벗어날 수록 더욱 강렬한 유혹을 느끼고 일탈할수록 깊은 만족을 느끼며 욕망에 심취해갑니다. 그러면서도 선한 얼굴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이 둘을 다 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서로 모순되었습니다. 그래서 지킬박사는 갈등을 하지만 끝내 하이드의 욕망에 휘둘려 끌려가게 됩니다.
두 가지 욕망 모두를 긍정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로 했던 게 어터슨 같은 변호사의 욕망이 아닐까요. 하이드 같은 통제할 수 없고 규범을 벗어난 욕망은 지킬과 같은 얼굴과 선의로 포장되고 어터슨 같은 법을 대변하는 이성이 이 분열적 욕망을 변호하고 옹호하며 세상 밖으로 맘껏 퍼져나갔던 것이 아닐까요. 이 소설이 이걸 겨냥하고 쓴 건 아니지만 제국주의의 이런 모습들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선생님이 숙부에게 배신을 당한 피해자가 되어 모든 인간을 증오하기에 이릅니다. 특히 선생님은 정신적 결벽증을 갖고 있어 그 충격이 심각합니다. 물론 이때의 인간에는 선생님 자신과 아가씨는 괄호 처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이 K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간 뒤 깨닫게 됩니다. 괄호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괄호가 벗겨진 뒤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자살충동을 느끼지만 아가씨 때문에 죽은 듯이 살아갑니다. 이때도 정신적 결벽증은 그를 극한으로 밀어붙입니다. 어찌 보면 선생님은 너무나 윤리적인 인간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보여준 윤리적 태도는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념에 찬 K는 사랑 앞에서 흔들리고 약해집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어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K가 평소 말한 신념에 찬 세계관의 말을 되돌려 줍니다. 허나 선생님은 신념에 찬 자세로 말한 게 아니라 열등의식, 질투, 약함을 방어하기 위해, 또는 복수하기 위해 그 말을 한 것뿐입니다.
선생님은 처음엔 피해자였다가 나중엔 가해자가 되고 맙니다. 그의 말처럼 생각한 게 아니라 행동하고 나서 뒤늦게 자신의 모습에 당혹해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로 나가지도 않고 죽은 듯이 정말 숨만 쉬듯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일합방으로 일본은 군국주의화되고 제국주의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재능을 펼치려 나가지 않고 조용히 숨죽여 살아갔다는 것은 그런 분위기와 현실에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지 않을까 합니다. 또 대체로 소세키의 소설 속 인물들은 직업도 없는 한량 같은 백수들이 많이 나옵니다. 일본은 서구 열강 속에서 약소국이었다가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거듭납니다. 의심의 자세에서 신념에 찬 자세로 온 사회가 들썩이는 데, 소세키의 소설 속 인물은 의심으로 괴로워하거나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소설 속에서도 도쿄엔 활력, 활력하며 뭔가 에너지가 끓어 넘치지만 목적과 의미가 없어 어둡다고 표현됩니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서술자에게 등불이 되어준 이가 선생님이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실지도 모르는데도 고향과 육친의 아버지를 떠나 도시와 정신적 아버지 같은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떠납니다.
-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서 취한 소세키의 자기본위 정신(태도)에 대해 말해보죠.
[마음] 발표 이후 소세키는 [나의 개인주의]라는 강연을 합니다.
소세키의 자기본위 및 개인주의는 [마음]이 발표된 해에 강연한 [나의 개인주의] 원고입니다. 개인주의란 말은 당시 동아시아 어디에도 있지 않은 말이였고 세계(관)였습니다. 이 자기본위 및 개인주의는 서구 열강 속에서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낸 방어논리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개인주의란 말은 서구의 기독교(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에서 나온 정신 및 태도입니다. 교회가 타락했으므로 타락한 교회를 통해서 신을 만날 게 아니라, 신은 어디에나 있으니 기도를 통해 신과 일 대 일로 만나자는 태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서구의 자연관인 원자론(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상태)도 이 개인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허나 이제 과학은 양자론(원자는 쪼갤 수 있으며, 홀로 완전하게 원자처럼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사물은 저 홀로 완전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서로 계속 깊이 관여하여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내가 나무를 보면 나무도 나에게 반응한다고 한다. 그게 아주 미세할지라도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소설가 [일식]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나란 무엇인가]에서 “개인주의”의 폐해(연대할 수 없는 외로움, 세계와 나의 고립 또는 격리)를 말하고 개인주의는 원자론적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므로 양자론과 같은 ‘분인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개인주의는 영어로 in-dividual에서 나온 말로, 원자론처럼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분인주의‘는 여기에서 부정을 나타내는 ’in‘을 제거하고 분리를 합니다. 물론 신체적인 나는 하나이지만 우주와 만나는 나, 공부하는 나, 사랑하는 나, 일하는 나, 운동하는 나, 술 먹는 나, 친구 만나는 나, 영업하는 나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신체적 나가 1이라면 이 여럿의 나는 여럿의 개수만큼 1/n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럿은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하지만 분자도 계속 변할 것입니다. 여럿이 30이라면 한창 연애에 빠져있을 땐 연애하는 나가 15/30이 되어 나의 과반수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와 일에 지치면 혼자 있고 싶은 열망 때문에 사랑하는 나는 급격히 축소됩니다. 그리고 고독도 원자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나들이 겹쳐지듯 영향을 받아서 생긴 것이므로 고독한 나는 절대 원자처럼 존재하는 아니라 양자론적 세계처럼 존재(?)한다고 합니다. 개인주의의 세계관이 가진 한계와 그로 인한 질병과 문제들을 벗어나기 위해 분인주의를 그는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힘들고 괴롭다면 그 분인을 줄이거나 못 줄인다면 즐겁고 행복한 나를 만드는 분인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할당해서 나를 경영해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소세키가 말하는 개인주의와 자기본위는 당시 서구 열강이 강하게 밀려 들어오니 약소국의 지식인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태도였을 겁니다. 너무나 강하게 나의 뿌리까지 흔들어되니 나를 지키려면 개인주의가 어느 정도 보호막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그럼으로 해서 아가씨와 선생님의 관계나 선생님과 K의 관계처럼 격리 및 고립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아 여기서 이만 줄입니다.
뉴비님들은 kr-newbie 태그를 달아주시면
보팅확률이 높아집니다
1914년이면.. 엄청난 연도군요. 그때도 해수욕장이 있었다니
신기하네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묘사한 부분도
재밌을것 같습니다
뉴비 태그를 계속 달아줘야하다니???
스팀잇이 아직은 불편하군요. 한국인끼리 소통하는데 영어 말고 우리말로 태그 달면 안되겠죠?
근대화의 초기는 현대의 단초들이 가득해서 더욱
흥미롭죠. 활력이 넘치는 도쿄였지만 방향과 목적을 몰라 어둡던 시절이였죠.
물론 뉴비 태그를 달지 안달지는 자유입니다
단지 뉴비 태그에서만 활동하는
큐레이터들이 찾기 편해서 그런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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