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왜 너만 유난떠냐

in #kr-writing7 years ago

#1

"5월까지만 다니면 안되겠니? OO이 결혼할 때까지만"

어머니는 내 직장을 자랑스러워 하신다.
남들은 취업 못해서 난린데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고.
왜 그런가 찬찬히 살펴보니
동네 아주머니들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자식들 직장 얘기가 주로 오가나보다.

"XX언니 아들은 취업이 안되서 6년째 공무원 준비 한다더라"
"OO 아줌마 알지? 아들이 M** PD 피디잖아."

고향에 가면 꼭 위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들끼리 모여 '우리 딸(아들)은~'으로 시작하는 자랑 배틀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 엄마도 한 목소리 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직장을 그만두면
6년째 공무원 준비중이라던 XX 아주머니와 같은 표정을 하시려나.

#2

퇴사를 결심한 건 꽤 오래됐다.

2년 전쯤인가?
당시에 금융권에선 핀테크가 핫한 이슈였는데,
거기서 블록체인을 담당하여 산업 현황이나 기술 등을 조사했었다.
근데 공부하면 할수록 앞으로 은행이 설 자리가 없어보였고,
우리 회사의 큰 장점인 정년보장이 '글쎄, 될까?' 싶었다.

넋 놓고 있다가는 그대로 같이 고꾸라지겠다 싶어서
천천히 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회사를 알아보기도 하고
블로그나 SNS 마케팅을 알아보기도 하고
사업을 알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천천히 준비하고 있는데,

웬걸

생각보다 암호화폐가 빨리 이슈화됐고
급격하게 인적자원이 모여드는게 보였다.

'지금이다!' 싶었다.

그동안 베이비부머 세대가 누렸던 은행이자 25%와
강남부동산, 인터넷 버블 등의 투자기회 등
자산증식 기회가 너무나 부러웠는데
우리 세대가 미래 세대에 부러움을 살 기회가 눈앞에 있구나 생각했다.

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시장에 얼른 들어가
산업의 이해관계자가 된다면 앞선 정보를 바탕으로
부와 명성 동시에 잡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퇴사 시기를 앞당겼고,
부모님과 여자친구의 동의를 얻어
3월에 나가기로 했다.

#3

"3월까지만 다닐거야. 얘기 끝났잖아."

"남들은 취직 못해서 난린데 좋은 회사 들어가놓고 왜 나오겠다고 난리니 난리는"

아마 사촌형 결혼식장에 친척들이 많이 오시나보다.
그럼 다시 설득해야겠지.
어머니를 설득할 땐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게 낫다.

"엄마. 거기에 앉아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가나싶어.
집에와서 뭘 했나 생각해보면 하나도 기억이 안나.
인생이 그냥 사라지는 느낌이야.
거기서 나는 행복하지가 않아."

"다 그렇게 사는거지. 가만 앉아있으면 돈 따박따박 나오는데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혼자서 유난이야 유난은"

실패.

세상이 변하는 거대한 흐름을 포착해서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퇴사를 결심했다는 말을
우리 부모님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서 표현하는 능력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블록체인이니 인공지능이니 이런 얘기를 하면
꼭 '뜬구름 잡는 것 같다'고 하시니.

결국엔 그래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잘 될거야.

응원해주신다.

이 판에서 어떻게 유난을 떨어야
잘 떤다고 소문이 나려나
한번 사는 인생
유난도 좀 떨고
뜬구름도 좀 잡고
신명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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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저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닐 때 엄마가
'어디 가서 엄마들 만나면 난 할 이야기가 없어~'
요런 말씀 하실 때 참 서운했거든요~
그런데 결국 끝까지 믿어주고 기댈 벽이 되줄 사람은 부모님 뿐인 것 같아요.

비젼과 희망을 말하지 않더라도 직장이 나를 갉아먹는지,
내가 이 회사 월급 루팡쟁이인지~ 고민이 되는 글입니다.

진지한 글 감사해요. 팔로우 하고 갑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