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에 쓴 글입니다. 이 글과 같이 읽으면 좋을만한 글을 쓰고 있어 손대지 않고 스팀에 올립니다.
그링 굉장히 거칠고 그래서 부끄럽지만 다음 글을 위해서 올려둡니다.
그렇다고 무슨 종교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불가지론자이며, 신이라는 추상보다는 그 추상을 품은 인간을 경외하며, 또 그보다는 인간을 경외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사람의 구원이 되지 못한다.
무언가 명제와 같은, 엄밀한 이야기를 하려면 논리를 세워야 한다. 볼품 없지만 조금 논리를 늘어놓으려고 한다.
- "사람은 사람의 구원이 되지 못한다."라고 나는 주장한다. 이 때 사람은 보편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이다.
- 보편적인 존재로서의 사람? 그러니까, 일반적인 사람. 그리고 그냥 목적을 띄지 않고 존재하는 보통의 존재.
- 사실 이렇게 파고들면 그냥 문장 자체가 틀린 것 같지만.... 사람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보편성을 포기하고, 스스로 물화하거나 역할을 달리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 예를 들자면, 내게 언제나 삶의 답을 묻는 진구 E가 있다. 나는 이 친구와 관계맺음 함으로써, 그냥 '사람'에서 친구로 역할이 바뀌게 된다. 그렇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 그리고 나는 그 친구, 얕은 우울증을 앓고 방황하는 그 친구에게, 일종의 상담사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준다. 상담이라고 해서 전문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상담. 우울증이 있으면 약을 먹어라. 그러니까 병원에 가라. 아침에 무조건 일찍 일어나서 낮잠 자지 마라. 그 시간에 게임을 하더라도. 약 먹는 동안 조금 상태가 호전되면 계속 좋은 습관들을 고착화시켜 나가라. 관성을 만들어라.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내가 먼저 겪었던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감정의 쓰레기통으로서 그 친구는 자신의 오갈데 없는 감정을 내게 쏟아붓는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번이라고, 이제 나는 그 역할과 대상화, 물화를 포기했지만.... 그러기도 했다.
- 그로인해 나는 그 친구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나 역시 영향을 받는다. 관계맺음을 통해 서로간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서로는 더이상 보통 존재로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명제에서 말하고자 했던 사람은 위의 주장에서 정의된 바와 같이, 그냥 길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뜻한다.
- 한편, 위처럼 관계맺음을 하고(의사나 환자 등 다양한 관계맺음도 마찬가지.) 서로가 일종의 지분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우리가 본질적으로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 때의 사람의 의미는, 조금 한자적 의미를 살리면 '인간'과 가깝다.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나와 비슷한 개체 1에서 관계맺음을 통해 사회적 존재로서 만나고 개인적 존재의 의미를 나눈 사이.
-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의 구원이 될 수 있는가?
- 아니다.
- 우리가 서로의 지분을 소유한다고 해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타자이다. 설령 내가 그 사람의 모든 면모를 낱낱이 안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이 될 수 없다. 그 사람과 다른 삶을 살아 왔으며,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선천적인 차이까지 있지 않은가. 결정적이진 않더라도 계속해서 일치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선천적인 변인들. 누군가는 언어에 더 예민하고, 누군가는 수식에 더 예민하고. 그런 사소한 차이들은 10년, 20년 다른 길을 걸으며 큰 간극을 만들어 낸다. 내가 지금 보는 검은색과, 당신이 보는 검은색은 같은가? 농담 같은 소리긴 하지만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 요는 사소한 차이들이 긴 시간 굳어져, 일반적인 사람들은 너무 다른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 큰 간극을 뛰어 넘을수는 없을까?
- 없다곤 말 못하겠다. 형식적인 것들로 우리는 어느정도 우리의 사고를 교정하고 서로 유사한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다가갈 수 있는 것은 결국 각자가 나눠 쓴 페르소나 중 하나일 것이다.
- 요는 이렇다. 서로가 흉금을 터놓고 교류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덜어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없이 가까워져도 같아질 수는 없다. 어느 순간 한계가 온다. 이건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고.
- 같아질 필요도 없다.
- 결과적으로 우리는 서로의 구원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구원은 뭔데?
- 당신이 만약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 상황을 타계하도록 하는 의도나 수단.
- 그렇다면 사실 누구든 구원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 구덩이에 빠진 사람에게 발판을 놔줄 수는 있지만, 걸어 나오는 것은 결국 개인의 몫이다. 내가 만든 발판을 그 사람이 믿고, 밟고 올라올 것인지, 그 발판이 너무 미끄럽거나, 뜨겁거나, 날카롭거나, 거칠거나 하지는 않는지, 혹은 그 사람은 오직 사다리만 탈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며, 밧줄 외의 다른 수단은 거절할 수도 있다. 진짜 거친 비유구나. 내가 타인에게 내민 손길은, 그 사람에게는 독일 수도 있으며, 양심을 찌르는 것일 수도 있으며, 미덥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나를 온전히 믿고, 나도 그 사람에게 적합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어느정도는.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자로 잰듯한, 신이 내려주는 그런 구원은 될 수 없다. 그게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적당히 만족스러운 지점에서 합의할 수는 있겠지. 직접 내려오지는 말고, 나무로 된 발판을 놔줘. 그렇게.
- 당신은 그 사람을 구덩이에서 끄집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직접 내려가서. 그러나 그것 역시 그 사람의 의사에 반한다면 구원이 될 수 없다.
- 결국 인간을,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그 자신이다.
-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주변을 둘러싼 세계와 사람들이 친절하다면, 그리고 자신에게 그럴 의지가 있다면.
- 그렇지만 그 의지는 누구도 줄 수 없다. 누군가 의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도 있고, 발판을 놔줄 수도 있지만 결국 선택은 자기 몫이다.
- 사람은 사람의 구원이 될 수 없다. 그저 구원의 수단 중 하나로, 얌전히 기능이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스스로에게 구원자라는 이름을 붙이지 말자. 뻐기지 말자.
-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 도움을 청한다면, 스스로 구원하려는 그 손길은 무시하지 말자. 그건 당신이 가질 수 없는 가장 값진 열쇠다. 돈으로도 보통은 살 수 없지. 문제 해결의 열쇠. 열쇠는 언제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소중히....
- 그로하여 자신이 자신의 구원이 될 수 있도록 도우면, 그걸로 족하지 않은가?
- 그렇기에. 사람은 사람의 구원이 될 수 없다. 구원은 항상 있지 않으며, 100% 구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구원이 있다면 오직 스스로에게 있으며, 이 때의 구원이란 자신을 구하고자 하는 동기이다. 동기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여러가지 상황이 맞는다면, 한 사람은 자신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그러니까 뻐기지 말고, 당신에게 그런 '사명'이 온다면 겸허히 수행하면 족하다. 사람을 구할 때에는 당신의 신념에 따라, 인간을 구할 때에도 마찬가지지만. 구하지 않는다고 그게 죄는 아니니까.
(당시 후기)
사람은 사람의 구원이 될 수 없다고 평소 생각한다. 그럼 소방관은? 슈바이처 박사는? 기타등등등... '구원'이라는 표현이 삶에 실재하는 위협에서 누군가를 지켜내는 것과 다른 의미로 쓰일 때나 성립 가능한 생각이지만. 예컨데 우울한 친구를 달래준다거나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친구 한 녀석이 날 너무 귀찮게 하는데, 내 도움을 안 받을 거면 좀 안 그랬으면 좋겠다. 자기 인생의 답과 길은 결국 자기가 찾아야 하는데. 나한테 물어봤자 나오지 않는다. 그 녀석의 구원은 자기 안에 있는데 왜 자꾸 타인을 조지고 다닐까.
여튼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사람의 구원이 될 수 없다.
그럼...
실례지만... 글을 읽으며 학생이 쓰신 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확히 꼬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젊음이 느껴집니다.
맞습니다... 저는 철학 공부를 맨날 겉핥기만 해서 그런 느낌이 더 드실겁니다.
학문의 한 분야로서의 철학과 필로소피아로서의 철학을 구분하는건 어렵습니다. 후자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철학을 공부한다'는 표현부터가 '지성을 공부한다'만큼 이상한 말이 되지요.
지성은 지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나, 지식이 부족하면 지성을 전달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요. 저는 제 생각을 다스리고, 정리하고,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 도구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그래서 철학 공부 얘기를 한 것이고 kmlee님이 그런 느낌을 받았으리라 추측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