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는 나를 처음 만난 날
자신은 누굴 좋아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는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오래 기다릴 생각이었다.
조금 호감을 보이더라도 일부러 무덤덤한 척 해주고
내가 혹여나 실수할까봐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본지 2주가 지난 날이었다.
그날은
하루종일 여자의 얼굴이 불편해 보이던 날
무언가 꼬여서 모든 게 어수선했던 날
이제 정말로 더 잘 되진 않겠다 싶었던 날.
난 잘 되지 않더라도 여태 같이 보낸 시간에 감사할 생각이었다.
찾아뒀던 좋은 술집이 카페로 바뀌어서
차를 마시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화를 했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많이 했던가. 여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자도 좀 더 마음을 열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자를 모르는 여자인데 왜 이렇게 매력적일까,
사랑엔 실패해도 사람을 알아단가는 것 자체가 좋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점점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어나기 직전에 여자가 무슨 말을 꺼냈다.
'아 그런데 이런 건 술을 마시고 해야 할 거 같은데...'
라고 말했다. 그 바람에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다시 맥주집으로 향했다.
여자는 나에게 Define The Relationship이라는 단어를 알려주었다.
자기는 내 마음에 따르고 싶다고
매일 고민하고 있었다
대로 살다간 많은 행복을 놓칠 것 같다고 했다.
"I thought it would be good to let her be, if she wasn't ready for whatever comes."
...
...
"Yes, but, please don't let me be. I don't want to stay forever in my safe-zone."
...
...
"si, then,.. why don't you let me in?"
이렇게 경계를 허문 뒤로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언제부터 좋아했느냐
왜 좋아했느냐
마음 여는데 오래 걸린다더니 어째서?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와 나는 그날 처음으로 마음 놓고 웃으면서
새로 시작된 관계에 행복해 했다.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여자가 예정에 맞춰 떠나게 될 때는 어떻게 할 지,
다투면 어떡할 지,
지킬 점 같은 것들.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여태 연애를 하며 해왔던 실수들, 그걸 몰라서 했던 것들이 아닌 것 같아서.
어쩔 땐 Less is more이니까.
마음에 기대와 걱정이 적을 수록 편안함과 사랑이 머물 자리가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여자를 알아가는 동안 내가 얻은 생각들이
나의 생각이 아니라 이 여자와 내가 같이 있을 때 만들어지는 기운이 그러하기 때문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
이 여자를 대할 땐 늘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