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틈타, 국립 현대 미술관 MMCA에 다녀왔다. 바쁨을 핑계로 혼자 전시 보는 것을 계속 미루고 있다가, 작년 사진전 이후에 오랜만에 방문했다. 올해의 작가전이 끝나기 전에 봐야겠다는 무언의 알 수 없는 사명감이 있었고, 친구에게 요나스 메카스에 전시에 대한 추천을 받았기에, "아무래도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전시' 혹은 '예술'과는 사실 좀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애정 하는 인상주의 회화에도 딱히 큰 관심은 없었다. 예술계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작품들을 책에서 읽을 때면, 감동보다는 따분함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올랐다. 또한, 현대미술은 기괴함으로 가득 찬 알 수 없는 아티스트들의 파티와도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특히, 현대예술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정말 흥미롭게 살펴본 것도 내가 내 힘을 들이지 않았던 미술과 예술이었는데.. 어느새부턴가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포인트가 있었겠지만, 단순히 생각해봤을 때, 생각을 가지고 감상을 시작했던 것은 군대 복무 이후 친구들과 함께 전시를 몇 번 가고 나서였다. 이후, 오스트리아에서 취미로, 내 마음대로 감상하는 것을 시작했고 나름 시간과 생각을 들여 전혀 모르던 아티스트들의 이름과 약력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후, 오스트리아에 사는 친구가 예술을 공부하는 친구였기에, 그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아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다. 아, 생각해보니 멋모르고 관광하러 갔었던 뉴욕의 MoMA에서의 영향도 조금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에요"라는 다소, 아니 많이 낯간지러운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닌, 내가 즐길 수 있는 '무언가'로부터의 생각과 행동이었다. (사실 그렇게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호기심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과 사상, 시선을 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었고, 생경한 것을 볼 때의 어린아이의 시선과 호기심에 가까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GRAZ의 기묘한 Kunst Haus에서부터, 친구가 추천해준 비엔나의 무제움 쿼바르티에, 바르셀로나의 MACBA 등등을 차례로 들렀고, 네덜란드의 반 고흐 박물관부터 런던의 화이트 큐브, 베를린의 박물관 섬과 함부르거 반호프, 내가 살던 작은 도시 그라츠의 작디작았던 갤러리들과 독립 전시, 그리고 적잖은 충격을 주었던 베니스 비엔날레까지. 생에 다 보지 못할 작품들과 다른 언어로 쓰인 사상과 내 두 귀로 입력되는 언어들은 정말이지 대단했고,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00을 보았다고 얘기하면, 소화한 것들은 1퍼센트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가는데 꽤나 좋은 영향을 미친 것임이 분명하다고 믿고 있다. 사고의 확장과 색다른 경험은 '나'라는 것의 발전이지 않을까.
지난 8월 한국에 돌아오고 난 이후, 9월에는 몇 가지 전시를 봤고 그 때 국립 현대 미술관에 방문했었다. 단 한 번만의 방문만으로, 지난날 방문했었던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생각났고, 그 미술관 만큼이나 다채로운 경험과 안식을 주었다. 나는 작품을 보면서 멍 때리는 것도 좋아하는데, 특히, 영상일 때는 더욱 그게 좋다. 백색소음 같은 거라고 말하면 되려나. 아무튼, 다시 한번, 이번 방문에도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고 생각할 거리와 휴식 시간을 주었다.
나는 비비안 마이어를 좋아하는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사진을 좋아하는데, 사진을 단순히 잘 찍어서는 절대 아니고 사진에서 보이는 그녀만의 구도나 시선이 너무 멋져서이다. Sneak pics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한 채 찍은 사진이나, 자기 자산을 찍은 자화상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녀만의 시간을 홀로 서서, 다른 것을 배제한 체 그 순간의 진실과 자신에게 집중했고, 그게 사진에서 정말 진실성 있게 이야기된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그녀의 사진을 보고 심지어는 다큐까지 챙겨보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사진을 주제로 한 전시가 한국에서도 열렸다고 알게 됐으나,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나는 public 그러니까, 대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고, 그래서 그런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가 담긴 것들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이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생각되지만) 그래서인지 요나스 메카스가 풀어내는 그의 끊임없는 일상의 순간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국적과 피부가 다를 뿐이지 어쩄든 그 사람들도 개인적으로는 대중에 속했으니까. 물론 그의 유명인 친구들은 제외해야 할 거 같지만, 어찌 됐든 필름이 주는 이미지는 실상 평범한 순간들이고 타인에 눈에는 크게 의미가 없는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근데 그가 생각하는 바는 그게 전부라는 것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프렌치 워크웨어의 푸른색을 두르고 있는 그를 볼 수 있다.)
현대 영화사에 있어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현한 중요 감독들의 작품을 전시로 재구성해 소개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필립 가렐, 찬란한 절망> (2015)에 이어 두 번째 기획으로 미국 독립 영화의 대부인 요나스 메카스의 전시 <요나스 메카스 - 찰나, 힐긋, 돌아보다>
요나스 메카스는 1922년 리투아니아서 태어났고, 현재는 뉴욕에서 거주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 요나스 메카스와 동생 아돌파스 메카스는 비엔나로 도피할 준비를 하지만 독일군에 체포되어 독일 엘름스호른(Elmshorn)에 있는 강제노동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이후 수용소를 탈출한 형제는 UN 난민 수용소에 머물게 된다. 이때 메카스는 독일 마인츠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다. 1949년 형제는 미국으로 이주한다. 이주한지 몇 달 후 요나스 메카스는 16mm 볼렉스 카메라를 구입해 직접 삶의 섬광 같은 순간들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요나스 메카스는 영화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고 글을 쓰는 일련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필름 컬쳐 매거진을 창간하고, 1962년 필름메이커 조합을 결성하고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로 성장하게 되는 필름메이커스 시네마테크를 창설한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 그룹' 운동의 촉매 역할을 한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의미를 엄밀히 따지자면 60년대의 요나스 메카스, 케네스 앵거, 그리고 앤디 워홀 등에 의해 만들어진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들을 말한다. 이들은 60년 9월 28일 뉴욕에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 그룹'을 결성하고 성명서를 발표한다.
"우리는 허위로 가득차고 세련되며 호화로운 영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칠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영화를 원한다. 우리는 영화가 피빛이기를 원한다."
『세계영화사』 / 지음/ 옮김/ /1999년
196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 운동의 선두에서 영화비평과 문화를 이끌어가면서 동시에 직관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따라 포착되는 일상의 기록 같은 '필름 다이어리' 형식의 영화들을 발표한다. 그는 평생에 걸쳐 시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20여권 이상의 산문집과 시를 발표했고 이 서적들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고전문학의 일부가 되었고 그의 영화들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소장되고 있다. 특히 그가 발전시킨 일기체 형식의 영화는 현대영화 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요나스 메카스는 16mm 볼렉스 카메라가 포착하는 순간 이미지들의 순수한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을 찾고 발전시켰던 것처럼 영화적 매체의 변화를 읽고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온라인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이용해 그의 작업 방식을 확장했다. 그의 필름 및 비디오 설치 작품들은 서펜타인 갤러리, 퐁피두 센터, MoMA, 카셀 도큐멘타,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 에르미타주 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소개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발췌-
누워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제목은 < 행복한 삶의 기록에서 삭제된 부분>이다. 그의 90번째 생일을 앞두고 작품을 완성했다. 지속적으로 흐르는 그의 순간들과 내레이션이 고요한 전시장 분위기와 함께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좋을, 개개인의 삶에 일상의 생명력과 의미를 던져주었다. 12개의 모니터로 나오는 365 프로젝트와 그 위로 비치는 스크린 영상, 그리고 그것 보고 있는 사람들. 시시때때로 관람자와 영상이 변화하면서, 재구성되는 모습이 흡사 영원히 지속되는 영화와 같았는데. 그 모습도 참 신기하고 멋졌다.
그렇게 얼마간을 누워있다가,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일상적인 순간들이 보였다. 설 연휴를 보내는 타인의 모습이 보였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그렇게 미술관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요나스 메카스를 따라서, 나도 내가 봤던 순간을 찍어봤다. 그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처럼 느껴보고 싶긴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기록적인 사진 찍기였지만, 조금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를 겪은 후의 생각과 행동이었으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예술에 딱 맞는 말이더라고요
저도 미술은 젬병이야, 감상도 잘 못하겠어 라고 생각하는 류였는데 유럽 여행 가서 미술관들 돌아보면서 steamfunk 님처럼 바뀌게 된 케이스입니다.
아직도 현대미술은 무슨 소린지 모르는 것들이 가득하지만 예전보다는 관심있게 봅니다ㅋㅋ
괜찮은 사진전같아 보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해하고 아는것도 좋지만 가서 흥미있고 재밌게 볼 수 있다는 게 제일 멋지고 중요한 것 같아요 :> 정말 추천드리는 전시에요 3월 초까지 진행하니 꼭 들러보세요!
앗 이 글을 보니 국립현대미술관에 가고 싶어지는군요.
다음주에 가려고 하는데 그때까지 하려나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네네!! 3월 4일까지 했던걸로 기억해요 !!
짱짱맨은 스티밋이 좋아요^^ 즐거운 스티밋 행복한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