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찬 스트리밍 중”
길거리에 있는 한 건물 벽에 설치된 거대한 영화 포스터에 이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절찬 상영 중’을 대체한 이 문구는 어색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이 말처럼 과거와 미래가 적절하게 뒤섞여 어색함과 자연스러움이라는 반대되는 두 느낌이 동시에 드러나는 말이 또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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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하는(디자인) 일을 시작했다. 움직이는 그림과 소리가 전송되는 것을 보고, 앞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공짜로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했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만드는 음악이 극소수 인간(기업가,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데 이용되지 않기를 바랐다. 저작권 개념이 소멸되고 음악이 복제(출판)되어 생기는 이익은 전부 사라지는 세상이 인터넷으로 인해 실현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아마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만이 당연하고 ‘올바른’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괴상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아예 없애자는 시민운동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이제는 인터넷 덕분에 음악을 ‘공공재’처럼 아주 저렴하게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는 ‘아주 저렴하게’ 다. ‘공짜’가 아닌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음악을(또는 영화를) 스트리밍 하면서 극소수만이 막대한 돈을 벌어 들이는 구조로 정착되었다.
“절찬 스트리밍 중”이라는 문구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예전에 상상하던 바로 그 미래라는 것을 실감 나게 했다. 그리고 예전에 했던 상상은 ‘순진’했으며, 현재(과거에서 상상한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되었음을 깨닫게 만들었다.
_덧.
우연히, 재미있게도, 위 글은 정확히 구두점까지 1400byte(한글 700자)입니다.
저작권을 없애면 생산자의 생계와 생산 수단을 보장하는 것과 함께 가지 않으면 자본의 생산만 남기는 방향으로 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가난 코스프레'하는 창작자들 보면 이미 그 상황이 가까이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네. 말씀하신 대로 꽤 현실적인 대안들이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절찬 스트리밍 중 재미있네요. ㅎㅎㅎ
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