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흑우로서의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그냥 내 얘기를 끄적거리고자 한다.
인생은 참 별 볼 일이 없다.
중 2병이 극에 달했던 중학교 시절, 나는 음모론과 국수주의 사학에 엄청나게 빠져있었다.
음모론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메이슨부터 시작해서,
666, 바코드, 요한계시록,
피라미드 에너지를 찾아보며 시작된 오컬트 탐방,
환단고기를 접하며 시작된 국수주의 사학, 증산도,
각종 기공술, 명상, 파룬궁 등등.
남들이 모르는 것을 찾아보며, 지식을 확장하며,
지적 허영심에 빠져 허우적대고,
어떠한 현상을 받아들일 때, 수많은 음모론 적 프레임으로 분석하며,
이 세계의 이면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흔한 중2병이었지.
공부를 잘했거든.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들과 똑같은 건데 말이지.
그렇게 자라난 나는 흔히들 공격 받는 "좌빨" 대학생이 되었다.
다음 아고라에 상주하며 매일매일 토론을 하고,
광우병부터 시작하여 각종 시위와 집회에 참가하고,
의경에게서 뺏어온 헬멧을 자랑스럽게 전리품처럼 집에 전시하고,
그러면서도 총학 같은 활동은 하지 않았다.
아나키즘과 탈중앙화가 인류의 최종 지향점이라고 생각하며,
정부에 대항하는 것은 철저히 개개인으로써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총학도 나에게는 타파의 대상이었다.
뭘 생각했던 걸까? 정말 처절하게 모든 인간이 개인으로 고립되길 바랬다.
운 좋게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별 거 없는 "학벌"이 나의 인텔리전스를
보장해준다고 생각했다.
법학도가 된 것도 어쩌면 그냥 내 허영심에 타이틀을 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왜냐면 대학교에 와서도 공부를 잘했거든.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들과 똑같은 건데 말이지.
그리고 사랑.
욕구와 사랑을 구별하지 못했던 철 없던 시절의 치기.
욕구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 위해 덧 붙였던 감성이라는 포장지.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면서 이시마로 라고 불러달라고 했었지.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덧없는,
너무나 덧없는,
한 없이 덧없이 지나갔던 날들.
하지만 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때도 난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돈을 잘 벌었거든.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들과 똑같은 건데 말이지.
모든 것에 실패하고, 여기가 바닥이겠거니 했는데,
인생이 뒤통수를 치며 그보다 더 깊었던 바닥을 보여줬던 그 때,
알아버리고 말았다.
인생, 참 별 볼 일 없구나.
나는 특별하지 않구나.
지구의 60억개의 삶이 있다면,
그 중 59억명 정도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예수나 증산 상제가 재림해서 이 세상을 뒤집어 엎는 일도,
프리메이슨이 비밀의 세계정부를 만들어 세계를 조종하는 일도,
지축이 정립되어 세상에 대 격변이 일어나는 일도,
모든 국가가 무너지고, 정부가 해체되고, 아나키즘 적 대동사회가 성립되는 일도,
외계문명이 오는 일도,
어느 소설가의 소설처럼 내면세계에 눈을 떠서 진정한 탈 자아가 이루어지는 일도.
정말 아무일도 없구나, 이 세상은.
그 이후로 그냥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며, 묵묵히 살아갔다.
내가 특별하지 않으니, 남도 특별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성경의 한 구절처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었다.
그러다 당신을 만났다.
지나치게 로맨틱한 말과 감성으로 내 마음을 꾸미는 일도,
우리 관계를 세기의 로맨스처럼 드라마틱하게 구성하는 일도,
감정의 과잉으로 격앙되는 일도 없이,
그냥 어찌보면 참 덤덤하게 관계를 이어갔다.
그 소소한 일상 중에서 당신은 참 특별했다.
당신이 특별해지니, 내가 특별해졌다.
간단한 명제였다.
내가 특별하기 때문에, 남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남이 특별하기 때문에, 내가 특별해진 것.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나,
회사원으로서의 나,
고등지식인으로서의 나,
모두 실패하였지만,
당신의 남편으로서의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물론 아직까지는-이라는 조건이 있지만)
예전에 읽었던 소설의 중심명제처럼,
나는 단수가 아니었다.
이 세상의 중심에 오롯이 나라는 특별한 존재가 있고,
그 특별한 존재에 묶여있는 다양한 존재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존재에 내가 녹아들며, 각각 개별의 존재에 녹아든
나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
나는, 요리를 잘 하고, 당신 앞에서 귀여운 댄스로 애교도 부리고,
씻기 귀찮다면서 당신한테 앙탈도 부리고, 가끔 짜증도 내고,
예민하게 당신의 어조에 반응하기도 하고, 당신의 모습에 웃기도 잘 웃는,
이 세상 60억개의 삶 중에 하나이지만,
나에게 있어 당신이 하나이듯이,
당신에게 있어 내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인생은 별 볼 일이 없다.
내가 어느날 묻어둔 가상화폐가 대박 나는 일도,
로또가 당첨되어 떼부자가 되는 일도,
외계인이 침공해서 지구가 발칵 뒤집어 지는 일도,
국가가 멸망하고 세계가 통합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인생은 참 당신 볼 일이 많다.
내일 홈플러스에 가서 또 살 것도 많고,
눈을 뜨면 옆에 있을 것이고,
그리고 우리 딸, 이든이 데리고 사진도 찍으러 가야하고,
이제 금요일이니까 골목식당도 소파에 앉아서 봐야지.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지만,
당신 볼 일 많은 인생이 되어서,
내 인생은 참 특별하다.
그리고 그게 참 좋다 나는.
반갑습니다 글 잘읽었어요~
팔로우 하고 갑니다~^^
시간나시면 맞팔 부탁 드릴께요!
시..시간은 언제나 남습니다.
나를 특별하게 할 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참으로 힘든 일인데 결국 사랑은 삶을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것 같네요. 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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