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무엇을 '더' 원하는 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면 굳이 목표 설정 따위도 필요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건 이미 협상이 아니라 명령이다.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목표를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로부터 존중 받고 싶은 자존감이나, 감정적 카타르시스의 분출, 그리고 상대에게 무언가를 비즈니스적으로 얻는 것은 양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혼 소송을 담당해 보면 협상의 이런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대부분 이혼 소송의 경우, 배우자를 괴롭히는 것과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 선택지는 양립하지 않는다.
물론 반드시 감정적으로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돈 좀 몇 푼 잃어도,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바람이 난 배우자나, 또는 인격적으로 상처를 준 사람을 최대한 괴롭히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추후 다시 다루겠지만 나는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또한 내가 괴로우니 저 사람도 괴로울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얼마 전 아내가 성폭행당했다고 고소를 했으나 무죄 판결이 나자 억울함을 못 이기고 부부가 동반자살한 사건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살을 했으니 그 친구나 또는 판사가 죄책감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정말 그랬다면 참으로 어리석다. 기왕 죽을 생각이었다면 굳이 자신들만 죽을 이유도 없었다.
감정적으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면 이에 상응하는 카타르시르를 분출하는 것이 맞다. 풀지 못한 분노는 자기 자신을 죽이는 독약과 같으며, 그것을 계속 안고 있는 것은 자신이 마신 독약에 상대방이 쓰러지는 것을 바라는 것과 다름 없으니 말이다.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풀어야 한다. 따라서 상대방을 힘들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감정적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더 신중해야 한다. 첫번째, 세상에는 상대 측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승리의 증거로 생각하는 또라이들이 많다. 만약 처음부터 상대방을 비난할 생각이라면, 어떻게 말을 해야 상대방이 더 이상 웃으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깊은 상처를 받을지, 공개된 협상장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심각한 망신을 줄 수 있을지를 미리 오래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페이스에 도리어 휘말리게 된다.
두번째, 감정적 분출과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분노란 경우에 따라서는 상황을 일시에 해결하는 충격 요법이 되기도 한다만, 충격 요법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상대측과 테이블에 앉을 기회가 영영 상실될 수도 있다.
성인이라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혼 소송에 있어 변호사에게 "승소 패소는 상관 없으니 저 사람 최대한 오래 길게 괴롭혀 주세요."라고 말하는 의뢰인과는 분쟁이 생길 일이 적다. 마치 결혼 정보 업체에 가입한 후 커플 매니저에게, "저는 느낌을 봐요."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저는 키 얼마에 연봉 얼마 이상이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여성의 결혼이 훨씬 빨리 성사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문제는 변호사에게 이혼 소송을 맡긴 뒤 최대한 많은 금전적 이익을 요구하면서도, 이를 위한 변호사의 소송 전략에 간섭하는 의뢰인들이다. 상대 측에게 욕을 해주길 바란다거나, 거의 불법 수준의 치졸한 짓을 동원해 배우자를 망신주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행동은 위자료나 양육권에 있어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비즈니스'에 있어 불리한 주문을 해놓고 나쁜 결과가 나오면 그때 변호사를 탓하는 의뢰인들이 있다. 소위 욕망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얻어내고자 하는 자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항상 자신이 무엇을 '더' 바라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 습관이 익숙해지면 상대방이 무엇을 바라는지도 좀 더 잘 보이기 시작하며, 따라서 상대방에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자신에게는 중요한 것, 반대로 상대방에게는 중요하지만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트레이드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것을 파악한 이후부터는 모든 행동에 목적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협상론 서적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바는 동일하다.
첫째, 큰 그림을 그리고 작은 골짜기가 아니라 산을 보라는 것이다. 목적 설정이 분명하다면 현재 시점에 상대방의 태도나 감정적 도발 또는 상대방이 그럴듯하게 제시하지 않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1억 짜리 물건을 구매함에 있어 몇십만원 짜리 상품을 프로모션으로 주는 것 등)에서 눈길을 돌릴 수 있다.
둘째, 이기는 것이나 정의나 명분, 옳고 그름에서 자유하라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핵 협상에서, 왜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데 미국은 포기하지 않느냐는 글을 남기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그것은 미국은 수만개의 핵무기를 구축할 역량이 있고 북한은 수십개의 핵무기도 유지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협상이란 기본적으로, 욕망과 욕망의 대결이다. A라는 사람의 입장이 더 옳고 B라는 사람의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 협상에서 A의 주장이 관철되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협상에 있어서는 더 우위에 있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있으며 실제로 종합적으로는 더 우위에 있는 쪽도, 개별 Agenda에서는 열위에 처해 있는 경우도 흔하다. 문제는 통상 합리성이나 종합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이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적이 분명하다면, 상대측과 자신의 1:1이 인격체로서의 아니라 본 쟁점에 있어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욕망의 크기가 보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격체로서의 상대방이 아니라 목적물의 크기로서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럼으로 인해 협상 테이블에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1:1의 관계가 아니라 다대 다의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배신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이익이 주어지는 연속된 수인의 딜레마 게임에서, 가장 효율이 검증된 전략은 바로 TIT for TAT이다. 게임은 간단하다. 먼저 상대방에게 협조한 후, 그 이후부터는 상대방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즉 상대가 배신을 한다면 바로 보복하고 다시 협조하면 똑같이 협조하는 것이 TIT for TAT 전략의 핵심이다. 재밌는 것은 이 전략은 일단 협조로 시작하고, 상대의 행동을 후행하기 때문에 1:1 게임에서는 필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 TIT for TAT 전략의 사용자에게는 협조가 이익이라는 점을 알기에 모두 협조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누적 점수에서 다른 모든 알고리즘을 압도하게 된다.
좀 더 advanced하게 들어가보자. 만약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어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협상에서 공공연히 양보하여 상대방을 우쭐하게 만들고, 대신 명분과 평판을 얻을 수도 있다.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인 것이다(반면 무턱대로 참으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노예 근성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협상에서 가장 우수한 대응 전략인 시간을 끌고 결정을 지연하는 것 역시도 먼저 목적을 명확히 파악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빨리 결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패배는 상당한 안도감을 주지만 반면 결정을 유보하는 것은 사람을 초조함으로 몰아 넣는다. 즉 패배하는 것보다 결정을 지연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더 괴로운 것이다.
물론 빠른 결정이 필요할 때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을 급하게 압박하여 결정하게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그런 불편한 심리 상태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협상의 목적을 감정적 카타르시스로 정한 것과 같으며, 이것을 드러내는 것은 노련한 상대의 자비에 자기 목숨을 내맡긴 것과 같다.
무엇을 '더' 원하는가를 파악하고 이를 위해 움직여라, 이것이 내 협상론의 1편이자 지난 번 협상에서 실수할 수 밖에 없었던 첫번째 이유다.
나는 내가 무엇을 더 바라는지에 대한 숙고가 부족했다. 실은 지난 몇 년 간, 자신의 나르시즘을 채우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진중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든, 전형적인 악질 쏘시오패스라는 평가든 간에, 어떤 식으로든 깊은 인상이 남는 것을 즐겼고, 그래서 삶을 즐길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었다. 연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 그 자체보다 심리 게임에서 이기고 상대방이 자기 모든 패를 까는 것을 보는 게 훨씬 재밌었다.
지인들은 누구나 인정하듯, 만약 내가 우병우 정도 능력이 있었다면 나는 분명 한 술 더 떴을 것이다. 실상 따지고 보면 별로 잘난 것도 없었지만 여하간 자기 도취에 빠져 있던 그 시점, 나는 조제 무리뉴처럼, 내뱉고 싶은 말을 아무렇게나 뱉어도 앞으로 사는 데에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원래 잘난 사람이 아니고 진짜 잘난 사람이 아닌데다가 어딘가 보상심리까지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겸손을 배울 기회가 없었거나 또는 이를 금세 까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과, 작년 협상에서 큰 실수를 겪었다는 것은 실은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한 어떤 브레이크였을지도 모른다.
하는 것을 다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감옥에 간 지인처럼, 태생적으로 겸손한 사람도 주어진 조건이 계속해서 좋으면 실수를 하게 된다. 왕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으악.. 이런 좋은글이 있었다니.. 리스팀해야겠습니다. 좀 보고 배워야지 공감가는게 나쁜짓한놈은 내가 나쁜짓했으니 반성해야지가 아니라 내가 옳아 하고 피해만주고 살더군요. 권선징악은 기도만으로는 이뤄지지않으니 이기고 사는게 맞다고봅니다. 그렇기에 정말 좋은글이군여 !
물론 좋은 분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거겠죠 ㅜㅜㅜ 리스팀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쪽 과라.. ㅎㅎ
멋있으십니다 ㅋㅋ 멀린님에 비해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저도 마찬가지에용 ㅎㅎ
무엇을 바라는지 하나에 집중해서,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너무 많은 걸 동시에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많이 줄인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못 줄였네요 ㅜㅜ
북한과 미국은 사실 협상이 아니죠^^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미국과 손잡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의 북한이 대등한 협상 테이블에 앉기라도 하기 위해서 개발한 것이 핵이기 때문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쵸 그 관점에서 사실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던 수완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미국이 두 번의 전쟁에서 실패했거나 오바마랑 트럼프 순서가 바꼈다면 어림도 없었을지 모르지만...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협상이야 말로 꼭 배우고 이뤄 나가야할 것 중 하나라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다음편을 기원합니다!!!!!
이모티콘이 없어서 아쉽네요 하트 날리고 싶은데~
ㅎㅎ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모티콘이 없어도 그 마음은 충분히 잘 전달 받았습니다 ㅋㅋㅋ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