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아들에게(2)-사랑한다는 말

in #kr6 years ago (edited)

U5drcAWuvgpuUrTyB6eTpV8dBYG6KsG_1680x8400.jpg


너희가 외할머니댁에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때 나와 너희 어머니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퀸이라는 록 그룹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제목은 ‘보헤미안 랩소디’다. 너희가 자라서 퀸의 음악을 듣게 될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너희가 커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 음악을 같이 듣게 되기를 바란다. 나도 너희가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같이 듣겠다. 나도 나의 아버지와 그리했다.

기억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랑한다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너희에게 말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너희에 대한 나의 사랑을 생각했다. 내가 내 품을 떠난 너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나는 너희가 이성애자로 자라 건강한 배우자를 만나 아들과 딸을 낳고 살기를 바란다. 너희의 아들과 딸이 또 건강한 배우자를 만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기를 바란다.

나는 또 너희가 내가 받아 너희에게 물려준 성씨와, 내가 직접 지은 이름으로 평생을 살기를 바란다. 너희 성씨는 너희 할아버지의 할어버지로부터 이어진 것이다.

너희 이름은 내가 고르고 골라 지은 것이자, 너희가 세상에 빛을 본 후로 나와 네 어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너희를 부를 때 쓴 것이다. 나는 도무지 너희의 존재와 너희 이름을 따로 떼어 상상할 수 없다.

남자와 입을 맞추는 프레디 머큐리, 아버지의 앞에서 남자 애인의 손을 잡는 프레디 머큐리를 보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파로크라는 이름을 버렸고 불사라라는 성을 버렸다고 말하는 프레디 머큐리를 보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의 뜻을 너희에게 강제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나는 결단코 그런 순간이 오기를 바라지 않지만, 너희 중 누군가가 “나는 이성애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을 때, 너희 중 누군가가 성을 갈고 개명 했을 때조차 나는 너희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럴 것이다. 그래야 진짜 사랑일 것이다.

너희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것이 남을 해코지 하는 일이 아니라면 나는 너희를 지지하는 아비가 될 것이다. 그리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 믿는다.

Sort:  

이것은 보헤미안 랩소디 감상문입니다.

앗... 아아...

묘하고 솔직한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요. 무엇을 해도 사랑하겠지만 그렇지 않길 바라는 마음

예... 저도 어쩔 수 없는 '한국남자'인 모양입니다 ㅠ

왠지 끝에 아멘을 붙여야할 것 같은 경건한 마음이 드네요.

에이맨....

같은 영화를 보고 느낀 솔로와 아버지의 차이.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