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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대담하고,
너의 마음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용감하고,
너가 늘 상상하던 인생을 살 수 있을 만큼 강해라.
I.
초등학교 3학년때 죽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3학년때 소풍 간 곳이 국립묘지였다. 선생님이 무덤 앞에서 누가 죽었는지 (좀 유명한 사람이였던거 같다) 설명해주는데 왜 사람이 땅 속에 있냐고 물었다. 선생님의 대답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때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이름, 육체, 영혼이 쓰리콤보로 몽땅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25살때까지 괴롭혔다.
II.
초등학교 6학년때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기역, 니은, 디귿도 몰랐다. 엄마는 한국어는 꼭 배워야 한다며 토요일마다 나와 동생을 한글 학교에 내려다 주었으나, 언어에 소질이 없던 나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수업을 견딜 수 없어 화장실 간다고 한 후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한글도 모른채 한국에 돌아왔다.
이건 웃픈 얘긴데, 초등학교 앞 떡볶이 집 아줌마는 단골 손님이였던 나와 동생에게 마트 심부름을 엄청 많이 시켰고, 동생과 나는 신나게 그걸 또 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학교 앞에 우릴 데리러 왔고, 떡볶이 집에 같이 가게 되었는데 떡볶이 집 아줌마가 엄마한테 그랬다. 애 하나도 아니고 둘이 저렇게 모자라서 어떡하냐고...
III.
열한살, 죽음을 경험했다.
외할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셨다. 하필 생신도 석가탄신일이셔서 할머니 생신때는 절에서 온가족(친척, 사촌)이 모였었다.
사건은 한국 들어간 첫 해, 할머니 생신때 일어났다. 석가탄신일이라 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 여러 방송사 카메라들은 절 앞 잔듸에 빼곡히 앉아 있는/절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찍어댔고, 그 카메라들이 신기해서 그 앞에 기웃기웃 거리다가 금방 흥미를 잃은 동생과 나는 절 마당을 돌아다니며 탐색했다. 작은 언덕 밑에 박스들이 쌓여있길래 저건 뭐지?하고 나는 힘차게 박스 위로 뛰어 내렸고, 박스는 슝~하고 밑으로 떨어졌다. 오마이갓. 순발력과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난 순간 팔을 일자로 뻗어 땅을 짚었고, 온 힘을 다해 버텼다. 한국말을 못하던 나와 동생은 도와달라 말 한 마디 외치지 못했고, 잔듸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지? 머리랑 팔만 보이는 날 쳐다만 볼 뿐 어느 누구 하나 와서 날 꺼내주지 않았다. 신체검사 턱걸이 0.00001초인 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몸을 끌어 올렸고, 땅 밟고 서서 우물이 얼마나 깊은가 내려다 보았는데 내가 살아있다는게 기적이였다. 평생 잊지 못할 그 순간... 나는 나만이 날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IV.
중3때 왕따를 당했다.
나를 왕따 시킨 애 중 한 명은 연예인이 되었고, 한 명은 파워 블로거가 되었다. 이름대면 그들이 누구를 왕따 시킬 이미지가 아닌데 할 것이다. 봉사, 자선 단체 기부, 유기견 활동, 등등 선한 일 많이 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절대 비난할 생각은 없다. 개과천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진심으로 그들이 인격적으로 성장한거라 믿고 싶다.
난 내가 왜 왕따를 당했는지 모른다. 그때 당시 돌아가면서 한 명 왕따 시키는게 유행이기도 했고, 기싸움이기도 했고, 순전히 싫어서이기도 했겠지. 외국에서 자라서 자유분방하고, 나이에 비해 당찼던 내가 꼴 보기 싫었겠지?
다른 애들은 왕따 당하면 학교 안나오고, 아프다고 조퇴하고, 점심도 안 먹고, 왕따 주동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편지 쓰고, 그래서 한 두 달 지나면 다른 애가 왕따 되고, 왕따 당하던 애는 왕따 주동자가 되고...
인간의 사악함과 이중성은 나이가 없다는걸 알게 되었다. 아닌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난 학교도 꼬박꼬박 갔고, 점심도 혼자 꾸역꾸역 먹었고, 잘못한게 없어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그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난 졸업할때까지 왕따였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내가 왕따인게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난 혼자 있는게 더 편하고, 혼자 노는게 더 즐거웠던거 같다. 그리고 남의 이목, 시선, 평가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젔던거 같다.
V.
열여덞살에게 진로를 정하라는건 잔인하다.
난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딱히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없었기 때문에 달달 외우기만 하는 공부가 재미 있을리가 있나. 그래서 고3때 아빠에게 대학에 가지 않겠다 선언?했고, 아빠는 내게 고맙다했다. 등록금 안내도 되게 해줘서. 솔직히 난 학원 다녀본 적도 없고, 과외 받아본 적도 없다. 부모님이 내 사교육비에 일원도 안썼다는 말이다. 근데 고맙다니. 너무 황당해서 기필코 아빠가 등록금을 내게 할테닷 하는 마음으로 3개월 바짝 공부해서 수시로 H대와 K대에 붙었는데 아빠는 너가 잘하는거 해라 (=영문과), 나는 재밌어 보이는 거 할래 하고 K대에 갔다. 입학해서 강의도 잘 못 따라가고 허우적 대긴 했지만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한국에서 다닌 대학 2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설레였던 시간들이였으니까. 아빠는 등록금이 엄청 아까웠겠지만.
VI.
스무살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난 한국에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을 했고, 그 곳에서 파릇파릇한 신입생인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신입생답게 공부를 안해도 너무 안해서 지켜보다 한마디했다. 이번 학기 올 에이 안받으면 헤어지겠다고. 이건 내가 올에이 우등생이였기에 가능했던 일 (깨알 자랑)✌🏼
나보다 공부 못한/안한 남편은 치과의사가 되었고, 난 선생님이 되었다. 사람들이 직업을 물어봐서 답해주면 다들 남편에게 "와~~~ 공부 엄청 잘하셨나봐요".......풉.
남편이랑 한국 방문하면 친정아빠는 남편을 동네 포장마차며, 식당이며, 스크린 골프장이며,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 사위 치과의사라고 그렇게 자랑을 하신다고 한다. 정말 창피해 아빠. 이제 제발 그만하자. 쫌!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공부한게 아깝다며 선생님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했다. 평소 남의 말에 신경 안쓰는 내가 남편의 몇마디 말에 화가 났다. 난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컸고, 만족도도 높았으며 무엇보다 재밌고 즐거웠기 때문에 세상의 잣대로 나의 직업을 판단하는 나보다 공부 못한 남편이 괘씸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허니가 나쁜 의도로 얘기한건 아니지만 난 내 직업이 존중받지 못한거 같아 서운하고 직업은 평생하는건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거라고.
요즘은 다른 일이 하고 싶다며 남편을 괴롭히는 중이다.
VII.
현재의 나는 요즘 흔히 말하는 딩크족이다.
처음부터 딩크족은 아니였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는데 남편은 아직도 학생이였다. 스물 넷에 결혼해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도움 받기 싫었던 난 한 순간에 가장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졸업을 하고, 좀 더 안정(심적, 경제적)이 되면 아이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보면서 부모가 된다는게 얼마나 막중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책임감, 희생, 사명감, 구속, 죄책감, 불안 등등..
슬슬 주변 친구들도 애를 하나 둘 낳기 시작했고, 육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와 남편은 안 낳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10가지도 넘는 이유가 있지만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이유는,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여자에게 강요되는 엄마라는 역할과 희생을 내가 기쁘게 감당해 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5년전에 강아지를 입양했다. 강아지가 분리 불안 증세가 너무 심해 두 달 가량 고생했다. 그 두 달동안 난 심각하게 일을 그만 둬야하나 매일같이 고민했다. 남편도 이런 고민을 했을까? NO. 강아지가 아플때 나는 출근을 못한다. 남편은 출근할까? YES. 강아지가 짖는다. 그의 짖음엔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고, 짖음의 톤도 다 다르다. 밥 달라, 피피 마렵다 나가자, 장난감 던져라, 물 달라, 등등. 남편은 그 짖음을 구분할 줄 아는가? NO.
우리 집 살림 98% 를 하는 남편은 타고난 부성애가 없나? 왜 나만 모성애가 있지?
결국 강아지의 욕구를 그때그때 바로바로 충족시키는 일은 나의 몫이고, 가끔 아니 자주 남편을 재촉하고, 쪼아대고, 닥달해야 그도 그때그때 바로바로 하는데 난 왜 남편에게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의문이 들며 그러는 나의 모습이 참으로 어글리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자식은 강아지 한마리로 끝이다.
와.. 정말 오랜만에 여행기나 맛집이 아닌 내 이야기를 적어봤다. 오늘 퇴근 후 책을 읽다 저 대문 글귀를 보고 몇 자 끄적여보고 싶어졌다. 어쩜 불필요하게 말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몇년 후에 영원박제된 이 글을 읽으며 이불킥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르고.
결론은,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우린 늘 선택이라는 두 갈래 길에 놓이지만 그 순간들마다 난 가장 "나"다운 선택을 했다. 내가 내린 결정에 내가 책임을 져야하므로.
지금 난 잘 먹고, 잘 자고, 잘 산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하다. 물론 이건 내 기준에서의 행복이다.
난 끊임없이 나를 들여다보고 연구한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노후에 어떤 모습으로 늙어 있고 싶은지,
그리고 남은 삶동안 뭘 해야 행복할지...
설사 남들이 나를 비난할지라도, 나와 가치관이 맞지 않을지라도, 나와 생각이 다를지라도,
나는 나대로 대담하게, 용감하게, 강하게 살면 된다.
너 자신이 되어라.
너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이미 주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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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연재 포스팅:
[Quote #2] smile
[Quote #1] 온전히 나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말
자 번호 별로 하나씩 시리즈 로테이션 시작 !
월요일 - 죽음에 관하여
화요일 - 언어의 역사
수요일 - 홀로서기
목요일 - 세상을 왕따시키기 까지
금요일 - ailee 의 학점헌트
토요일 - when I met your father.
일요일 - DINK 족을 위한 여가
크. 1일 1포스팅 응원합니다.
우왕 좋은 아이디어다.
@aileecho how I met your father 드라마도 찍어줘요
오 엄청 좋은 아이디어네요.
쥔장이 뺀찌 놓네요.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언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시간 전에 ㅋㅋㅋㅋ
에일리 형아 저질 체력이라 안된데요
ㅋㅋㅋㅋㅋㅋ
맞아. 나 어제 퇴근하고 이 글 쓰고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뻗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isoooh202 스팀 시세가 좀 올라서 돈 맛(?)을 봐야....레드불 3개 갖다 놓고 포스팅을 하실텐데...ㅋㅋㅋ
그러니까 말입니다
돈이 최고의 보약이지요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machellin님 발톱만큼의 글솜씨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음... 잘 쓰라고 하지는 않았잖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 글 한방에 읽혔는데..잘 쓰시는데.ㅠ
6번째 이야기 좀 더 해주세요. 파릇파릇한 신입생 남편을 어떻게 만났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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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6번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럼 6번은 다음 포스팅에~ 🙈
OMG. 나이에 비해 죽음에 대한 생각이 깊으시네요.
왕따... 지금은 잘나가보일지 몰라도 인과응보가 있을겁니다.
지금 너무 밝은 모습으로 이렇게 아무렇지않은듯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실수 있는 @aileecho님 응원합니다!
아무래도 학생들과 왕따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며, 제 경험도 자주 들려줘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거 같아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에일리님에 대해 이 글로 조금 더 알게 되었네요 ㅎㅎ
위에 댓글처럼 남편님과의 알콩달콩 얘기도 듣고 싶어요 ㅎ
그럼 신비님을 위해 곧 풀어보지요 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에일리님에 대하여 좀더 알게 되었네요 죽음이라는게 참 알수없는거 같아요 정답오 없는거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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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그 두려움은 몇백배로 다가오는거 같아요.
여기서 댓글 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지금 굴뚝 같은데
금단현상으로 인한 나의 예민함이 폭발할까봐
참고 갈께 형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넝 가 ㅋㅋㅋㅋㅋㅋ
파치형아가 불러서 다시 왔네
형아도 원해??ㅋㅋㅋㅋㅋ
제가 애정하는 두 분께서 왜 이러시죠? 두 분 다 퇴장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부터 댓글몰이룰 시작하자
원해 형아????ㅋㅋㅋㅋㅋ
우와 이 포스팅 하나로 큰딸의 모든 과거를 알아버렸네요
2번은 웃으면 안되는데 왜이렇게 웃긴지^^
웃어도 되요 ㅋㅋㅋㅋ 저도 엄마랑 동생이랑 이 얘기 가끔하면 꺌꺌꺌 웃는걸요 ㅋㅋㅋㅋㅋ
역시 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앗 칭찬 부끄럽습니다. ☺️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해야지요!
오떤 가시나들이 내 조까 왕따를 시켰어? 화악~~~~
이름 대봐!!!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름대면 파장이 어마어마할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삼춘밖에 없어~~
살면서 좋은 경험만 하면 좋을텐데
세상일이 내 맘 같지는 않더라구요.
이 말이 정답인 것 같아요. 나답게 살고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계속 선택하면서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야 겠어요. ^^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단비랑님 늘 응원해요! 즐거운 추석 되시길요 😊
격하게 응원합니다. 우리 다 각자의 가치관과 판단으로 결정해 최선을 다해 살면 되겠죠. 행복하시면 올굿!
빙고! 🙌🏼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란만장이라는게 에일리님을 두고 하는 말이군요.
과거사를 이렇게 한번에 까버리시다니... 소재를 아끼셨어야죠.
다들 그렇게 소재를 아끼며 영업을 하는곳이 스팀잇인데.ㅋㅋㅋㅋ
이 전략을 써야겠군요.... 아주 맘에 들어요.ㅋㅋㅋ
500번까지도 쓸 수 있는데용 🤪
저 전략을 쓴다면... 100% 진심처럼 느껴져야해요 ㅋㅋㅋㅋ 뻥카 안통함 ㅋㅋㅋㅋㅋ
파란만장 에일리가 확실합니다.ㅋㅋㅋㅋ
턱걸이 0.00001초는 뻥카아닌가요?
100초도 거뜬 할거 같은데?
땡하자마자 바로 땡
챠모
오잉 이건 책 인용이에요? 아니면 누나스토리? 아 댓글들보니 진짜 스토리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응 내 이야기인데~ 책 인용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일리형 책 안읽으시는데...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 가서 약이나 먹어
나는 마음의 양식을 먹을래 ㅋㅋㅋ
그래 우리 땡챠모... 많이 힘들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혀 안힘든데?ㅎㅎㅎㅎㅎ
함들땐 형 사진을 보면서 위안삼고 있어^^
ㅋㅋㅋ@aileecho 두분 넘 재밌어요. 그러게요. 제가 왜 그생각을 못했을까ㅋㅋ
그나저나 빨리 진도나가요!
에일리형 강한 사람이었구나
여리여리한 외모 때문에 온실속 화초인줄 알았는데
오늘부터 리스팩 합니다~!!
오냐~
(╹◡╹)에일리님 역사네요. 그나저나 떡볶이 집 아줌마 진짜 너무하시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ㅎ
ㅋㅋㅋㅋㅋㅋㅋ child labor + discrimination하는 떡볶이집 아줌마 참 나쁘죠.. 근데 입장 바꿔 6학년이나 된 애가 한국말도 어눌하고 이거 사와라 저거 사와라 하는데 해맑게 다 해주면 그렇게 생각할거 같아요. 그때는 지금처럼 외국인도 많지 않았고..ㅋㅋㅋㅋㅋㅋ
밝은 보름달같이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도깨비님도 가족분들과 즐거운 추석연휴 되시길 😊
오 정말 흥미진진한걸요? 참 어릴때 외국살다가 한국온 사람들에게 왕따는 제법 흔한 일이라고 하더라고요ㅠㅠ 뭐랄까 질투심같은것도 있고 그래서. 다른 종류의 왕따와는 그래서 많이 다르다던데. 암튼 힘드셨을텐데 잘 이겨내셨다니 대단하시네요. 앞으로 6번에 대한 포스팅 연재 부탁드립니다ㅎㅎ
좀 다른 차원의 왕따이긴 하죠. 티비에서 나오는 폭력적인 것보다는 지능적인~ 그나저나 6번 인기 많네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