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12 (주일)
■ 에베소서 5:8-14
[ 조금도 어둠이 없으신 하나님께 나아오라 ]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합니다(8).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기 전에 삶의 자리가 어디였는 지를 증거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증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하였습니다(2:1-2). 즉, 불순종의 아들들과 같이 사탄을 따라 행하며 죄와 사망 가운데 있었던 삶을 어둠이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구원으로 말미암아 빛 가운데로 나아올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는 빛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회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골1:12-14). 사도 요한은 "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고 증거하였습니다(요일1:5). 빛이시라는 것은 선하시며 진리되심을 의미합니다. 본질적으로 삶의 방향성이 다른 하나님의 자녀가 여전히 부름 받기 전의 어두운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을 버리고 껍데기를 취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빛이 어둠을 밝히듯,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러운 것과 탐욕과 음행으로 물든 세상을 밝히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한 빛의 자녀로서의 열매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했습니다(9). 그것이 빛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삶입니다. 그런데 빛의 자녀가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들을 은밀히 행하며 어둠 속의 것들을 쫓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책망 받게 될 것입니다(10-12). 사도바울은 그러한 모든 것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둠의 것을 쫓아가는 자들에게 "잠자는 자여 깨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4). 지금이 빛의 자녀로 순종하며 사명을 감당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빛으로 오셨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백성에게 빛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빛의 사명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4-16). 빛의 사명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착한 행실'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행실'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빛의 열매라고 합니다(9).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은 빛으로서의 사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강조한 것으로서, 이 빛의 열매로서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할 수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고 확신하였습니다(고전4:20). 즉, 입으로만 주여주여 하는 자들을 통해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는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말합니다(10). 이러한 사도바울의 말에는 확신으로 차 있습니다. 즉, 자신의 경험적인 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삶 속에서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눅4: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하여 보라고 한 것은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말한 것입니다. 빛의 열매를 맺는 삶에 무조건적인 능력과 복을 약속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속에서 이익과 손해를 따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익과 손해가 아니라 빛으로서의 사명입니다. 시험은 나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손해와 이익을 따지지 않고 믿음의 선택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선택이 옳고 복된 길이었음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할 뿐만아니라 어둠에 참여하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어둠의 일을 배척하고 책망해야 합니다(11).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라는 어둠 속에 살고 있습니다. 빛되신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어둠의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등불을 지속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어둠이 찾아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책망하라는 것은 어둠에 대한 보다 강력한 대응을 말한 것으로서, 미온적인 태도를 버리고 악한 행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불의나 죄악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것은 악의적으로 상대의 죄악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둠에 속한 자들을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며 자기 스스로를 죄악에서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는 명령은 미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권면하고 설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기도와 설득이 있어야 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13:4-7).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날들을 기다려야 하며 모든 불익을 감내할 수 있는 희생적인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행했던 것들은 말이기도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그 죄를 책망하여 회개하고 돌이켜 빛가운데로 나아올 때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12-13).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고 선포합니다(14). 이는 어둠 속에서 잠자는 영혼들을 향한 빛의 선언입니다. 어둠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며 마귀의 근거지입니다. 그곳은 곧 영원히 불못에 떨어져 고통받을 자들의 자리입니다.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포된 말씀을 듣고 깨어 일어나 빛 가운데로 나아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죽음 가운데서 이끌어 영원한 생명 가운데로 이끄실 산 능력이 되십니다.
- 나의 기도
하나님, 어둠 속에 머물며 육체의 쾌락을 좇는 인생이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빛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 나아와 진실함과 의로움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손해와 이익을 따지며 망설이지 않게 하시고 언제든지 믿음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