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13 (월)
■ 에베소서 5:15-21
[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사도바울은 빛으로서의 사명, 곧 빛의 자녀가 가져야 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첫째,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라고 합니다(15). 주의하라는 것은 그 행함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빛으로서의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이때 사도바울은 지혜있는 자같이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즉흥적인 말과 행동으로 형제에게 상처를 주거나 넘어지게 하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언행에 있어서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잠5:1-2). 이는 사도바울이 말한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는 것은 곧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심판하시는 동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늘 말씀이 입술에서 떠나지 않게 함으로서, 말씀이 삶이 되고, 그 말씀이 행함의 기준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대적들이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여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숨은 곳에서 온전한 자를 쏘며 잡가지 쏘고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탄식하였습니다(시64:3-4). 이는 결국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형제를 죽이는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감정대로 내뱉은 말이 형제를 실족하게 하고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합니다. 화살을 쏘면 더 많은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서로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적인 방법을 쓰는 것은 성령충만한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는 술 취하여 분별력없게 행동하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18). 어떤 문제 앞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16-17). 주어진 시간을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허비하지 말고 순간순간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사용하라는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속히 지나갈 수도 있는 기회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관련있는 것으로서, 세상의 어느것보다 가치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인한 구원의 은혜를 붙잡지 못한 채, 세상의 썩어질 것을 취하려고 세월을 보내는 어리석은 삶이 되지 말것을 권면한 것입니다.사도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갈6:9). 악한 세상에서 선을 행한다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은 많은 손해를 보는 것 처럼 여겨집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물질주의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승리하여야 할 자가 아니라 이미 승리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 그 모든 승리의 원천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도 넘어선 영생을 선물로 얻은 사람들은 이미 승리를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붙잡은 가장 가치있는,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기 위해서는 그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감당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셋째,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18). 술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방탕함에 이르지 말아야 합니다. 빛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복종하고 존중해주어야 하며, 서로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품어주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나의 삶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전심전력을 다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바울은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권면합니다(19). 시는 곧 하나님과 그 지으신 세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의 오묘함을 노래한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의 모습이며,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최상의 기쁨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또한 신령한 노래란 성령의 감동에 따라 행함으로 얻어진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서로 화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서로 나누며 함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모이면 서로의 흉을 보고 헐뜯는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사도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자기 스스로를 높이고 드러내려는 외식된 자의 마음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충만하여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깊은 찬송과 노래를 드릴 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여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20).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때로는 최악일지라도 이러한 상황을 통해서 선하신 뜻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구원하심을 믿는 자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합니다. 이는 맹목적으로 추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복종은 군대에서 군인들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정렬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것은 서로에게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사역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명령하고 사람이 사람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분열과 갈등을 가져오고 결국에는 파당을 형성하게 나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분쟁과 갈등을 봉합시키고 믿음의 공동체로 견고해지는 길이 됩니다. 복종은 "의무적인 행함"을 전제로 합니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군사는 이미 군사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입니다.
- 나의 기도
하나님, 우리의 악한 선택으로 인하여 빛으로서의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지 못하고 형제에게 상처를 주고 실족하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빛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 마음을 빼앗겼던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고 참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앞에서 각자가 복종하여 강한 공동체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멘 축복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이름으로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