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5 (주일)
■ 에베소서 2:11-22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한 공동체로 ]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11).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깊이 생각하는 자만이 말씀 앞에서 겸손할 수 있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소가 먹이를 먹고 되새김하듯, 마음 속에서 반복적으로 꺼내어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앞에서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구원받은 이후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관점에서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부정한 자로 여겼고, 자신들을 거룩하고 성결한 백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세워가며 얼마나 율법적인 관습과 싸워야 했는지를 증거합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육체적으로는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철저한 이방인이었습니다. 혈통적으로나 전통적으로도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유대인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2). 그들은 아무런 소망도 기대할 수 없는 하나님 없는 삶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할례받지 않는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은 것이 결코 말씀이 폐하여 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롬9:6-8).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온 자들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값없이 구원을 받은 우리 삶은 항상 감사와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아무런 소망도 기대할 수 없었던 삶에서 영원한 기업을 약속받은 하나님백성으로서의 삶의 전환은 혈통이나 출신이나 할례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13). 할례에 대한 다툼은 초대교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주장하였습니다(행15:1). 그러나 베드로는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행15:7-9). 또한, 사도바울은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고 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할례자냐 무할례자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구원의 증거임을 말하였습니다(롬4:9).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인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새생명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피 곧 "대속적인 희생의 피"로서(롬5:10), 예수님의 희생의 핏값으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났음을 의미합니다. 소망을 기대할 수 없는 하나님 없는 삶에서 하나님 안에서 평화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삶으로 바뀌어졌으며, 전통과 민족과 율법이라는 경계의 담이 허물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이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14). 또한, 사도바울은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함으로서 출신이나 혈통에 관계없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하나 되도록 하게 하셨음을 증거 합니다(16). 우리의 행위는 자랑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한 몸과 같이 상호협력하며 돕고, 함께 아파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기를 소망하십니다(17). 온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두지 않듯이, 먼 곳의 사람과 가까운데 있는 사람의 구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온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은혜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모두가 성령 안에서 인도함을 받고, 한 성령 안에서 교회를 세워나가는 동역자로 세워져야 합니다(18).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더 이상 출신이나 배경이나, 혈통과 같은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것들로 인해서 어떤 사람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며 오직 하늘나라의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모퉁잇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아름답게 세워져 가야합니다(19-20). 육체를 자랑은 곧 차별을 낳고 차별은 상처와 다툼을 낳게 됩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자랑하는 자는 결국 교만한 자요 형제를 미워하는 자입니다. 사도바울은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속의 은혜 앞에서 자랑할만한 육체가 없음을 증거하였습니다(빌3:4-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우리가 자랑하여야 할 최고의 가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서로와 서로를 연결해주는 능력이 되며 그로인해서 교회는 더욱 아름답고 튼튼히 세워져 갈 것입니다(21-22). 나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세워나가려는 노력이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 나의 기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는 어디로부터 왔고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늘 돌아보며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게 하시고, 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게 하시고 서로 함께 지어져 갈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