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9. 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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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9. 21 (목)

■ 예레미야 4:5-18

[ 고통이 마음에 까지 이르기 전에 ]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지체없이 시행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적의 침략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리고 경고 깃발이 높이 세워집니다(5). 예루살렘이 아무리 견고한 성읍이라고 자부하여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 앞에서는 순식간에 두려움이 일고 멸망의 기운이 감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고 선포하십니다(6).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느부갓세살 왕으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켜 유다와 예루살렘에 전쟁을 선포하게 하시고, 그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한 회개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나의 길을 가리라"하며 우상숭배와 음행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유다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심판하셨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긴급한 전쟁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리고 깃발이 높이 올려지며 지체하지 말고 도피하라는 신호가 전달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열국 중에서 택한 아름다운 땅을 황폐케 하려고 수풀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굶주린 사자 바벨론을 일으키셨습니다(7). 바벨론의 침략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은 긴급하게 나팔을 불고 깃발을 높이 세워 피할 길을 찾아 보지만, 이 전쟁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이라는 점에서 이미 피할 길이 모두 막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을 수풀에서 나온 사자에 비유하신 것은, 장차 이스라엘의 숨통이 물고 늘어진 바벨론이 결국은 그들을 처참하게 찢어버리는 비극을 맞이하게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피할 길을 찾아 보지만 나팔이 울리고 경고의 깃발이 올라 갈 때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향하여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이는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8). 이는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유다의 죄악에 대하여 합당한 심판이 이미 시행된 만큼 합당한 죄의 삯을 치르기 전에는 결코 돌이키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고 피할 성읍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대언자들을 통해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판이 시작되면 때는 늦습니다. 때가 지나기 전에 악한 습관을 버리고 악인과의 관계를 청산해야 합니다.

바벨론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왕과 지도자들이 낙심하고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게 됩니다(9). 이는 왕을 비롯한 유다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백성들을 거역과 악행으로 이끌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결코 전쟁과 같은 참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거짓 평화를 선포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가진 신념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수 없는 참 선지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부귀를 쌓아 가는데만 몰두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순식간에 그들의 권력과 부귀가 근거지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심판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였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니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이르렀나이다"라고 탄식하였습니다(10). 그는 백성들의 입장이 되어 하나님 앞에 슬퍼하며 탄식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미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탄식은 평강을 약속하였던 하나님께서 칼로 민족을 치신 것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광경 앞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면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는 평강과 축복의 말씀을(신28:6), 스스로 저버린 것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탄식은 이처럼 생명과 평강의 삶이 보장된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나님의 복에서 떠나 자멸의 상황에 직면한 것을 안타까워 한 것입니다. 또한, 한편으로 예레미야의 탄식은 백성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백성들의 부패와 타락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타락과 부패로 인한 것이며, 그들에게 올바른 하나님의 뜻을 듣지 못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러한 백성들의 무지로 인한 심판을 안타까워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때와 같이 이 시대에는 전쟁과 같은 참극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이며, 복을 주실 것이라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배역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회개와 심판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어떤 피할 길도 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고 하며, 이것은 키질을 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라고 탄식합니다(11). 뜨거운 바람이 사막에서 불어 옵니다. 그러나 이것을 피할 수 있는 성읍이 없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철저히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바벨론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상황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러한 때는 지나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행한 악행의 삯을 치르기 위한 징벌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12).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모진 학대와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벨론의 병거는 회오리 바람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게 예루살렘을 유린하게 될 것입니다. 바벨론의 공격에 대하여 회오리 바람과 독수리가 먹이를 잡아채는 듯한 광경으로 묘사한 것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공격으로 흔적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라고 부르짖지만,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은 죄악의 삯을 완전히 치르기까지 시행될 것입니다. 바벨론의 공격은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는 일시적인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아니라 완전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에브라임을 지난 예루살렘을 에워쌀 날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15).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는 구름때와 같이 밀려드는 적군들의 함성에 파묻혀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16). 이는 애굽이나 앗수르와 같이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우방들조차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하여 아무런 힘과 능력이 되어주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재앙이 "그가 나를 거역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17).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와 음행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며 자기 쾌락의 길을 따라 지속적으로 범죄한 결과라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18).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아무리 큰 소리로 부르짖고 금식하여도 소용없습니다. 평화로운 때에 죄악을 깨닫고 슬퍼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피할 곳이 없음을 한탄할 때에는 이미 때는 늦습니다. 지금 이때에 회개하는 것만이 유일한 피할 길임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금식과 회개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때에 긍휼을 베풀만한 때에 회개하며 돌이킬 수 있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온 땅에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깃발이 올려지기 전에, 우상숭배와 음행을 물리치고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