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자본주의란?
Buzz Word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불분명하지만 각종 매체를 통해 요란하게 확대재생산되는 신조어들을 의미합니다. 상당수는 시간이 지나면 사장되지만 그 중에서도 언론계, 출판계, 비즈니스계, 특히 관료계에서 꽤 질긴 생명력을 갖고 지속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과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꾼다, 공유경제가 자본주의 병폐를 극복한다, 기타 등등. 요사이 의미가 불분명한 언어들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문제 용어는 공유자본주의(Shared Capitalism)입니다. 공유가치(Shared Value) 자본주의라고도 불리는 이 녀석은 지난 미 대선 당시 클린턴 미국 대선후보의 캐치프레이스로 채택되면서 큰 유명세를 얻기도 했죠.
그렇다면 공유자본주의란 무엇일까요? 공유자본주의란 한 마디로 기업이 실현한 이익이나 재무적 성과를 노동자들과 나눈다는 발상에 기초합니다. 그 방식은 이하와 같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익/성과공유제는 기업이 실현한 성과나 이익을 임금이나 퇴지금 형태로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사주 소유나 스톡옵션은 기업이 실현한 자산(주식)가치의 상승의 일부분을 종업원에게 돌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유자본주의의 역사
이러한 공유자본주의 모델은 사실 (미국에서) 역사가 의외로 깊습니다. 미국 독립선언문의 서명자이기도 하고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한 앨버트 갤러틴은 1795년에 미국 펜실베니아의 유리 작업장에서 처음으로 이익공유제를 실험했습니다. 이처럼 18~19세기 동안의 초기 이익공유제는 독립심 강한 장인들이나 자영농들의 동업조합 비즈니스 모델과 결부되어 지속되었습니다. 한편 본격적인 산업혁명 이후 공유자본주의 모델이 시들해지는가 했지만 존 D. 록펠러 등의 저명 실업가들이 '후생자본주의(Welfare Capitalism)'라는 표어 아래 자사주 공유제로 이익의 일부를 종업원과 나누는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한편 이것은 당시 치열해지던 노사분규에 대한 대응의 산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록펠러가 소유한 콜로라도 퓨얼 & 아이언 컴퍼니(Colorado Fuel & Iron Company, CF&I)를 중심으로 대규모 광산파업이 일어나 관련 충돌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3%A8%EB%93%9C%EB%A1%9C_%ED%95%99%EC%82%B4
△ 루드로 학살에 대해
이처럼 공유자본주의는 역사적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 상당히 보편화되었습니다. 미국의 일반사회조사(GSS)에 따르면 (이익/성과공유제, 자사주 소유제, 스톡옵션 중) 적어도 하나의 공유자본주의 프로그램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2006년에 이미 47%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한 최근 미국 기업의 35%가 이익공유제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죠. 현재에도 미국 노동자 절반 가량이 공유자본주의 아래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72556
△ 관련 기사
공유자본주의 확산의 비결
그렇다면 공유자본주의가 이토록 확산된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개인의 유인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 이론으로 보면 공유자본주의의 존립기반은 지극히 취약합니다. 왜냐하면 공유자본주의란 기본적으로 회사가 잘되면 노동자도 잘된다 식의 '집단 인센티브(group incentive)'에 기초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개인의 노력과 성과의 연계가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그룹 인센티브는 '무임승차'의 문제, 그리고 '1/n 문제'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리스트 회피(risk averse) 성향을 갖습니다. 아무래도 기업의 수익실현 여하에 따라 보상이 이뤄진다면 그만큼 보수의 변동도 심해질텐데 다수의 임금노동자들은 그러한 상황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부 경제학자들은 공유자본주의에 회의론적인 시각을 견지합니다.
그러나 공유자본주의 관련 연구를 꾸준히 수행한 Kruse & Freeman(2010)에 따르면 실제로는 공유자본주의의 도입이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경향이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재무적 상황이 불확실한 기업이 위기시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기업성과에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나누는 등 '경영 유연성' 측면에서 공유자본주의를 채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공유자본주의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미국에서) 꽤 확산되고 성과도 괜찮게 나타나는 연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노동자 간의 '동료압력'이라든지 협력적인 노사관계 문화 속에서는 '무임승차'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공유자본주의를 채택한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보수의 변동성을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 인센티브와 복리후생 지원을 병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를 통해 공유자본주의를 도입한 기업들은 '무임승차'와 노동자의 '리스크 회피 성향'을 극복하고, 나아가 기업의 이익과 종업원의 이익을 일치시켜 종사자 전반의 협력을 통해 생산성을 증진시키고 이익을 거두기도 합니다. 또한 프랑스에서의 5년 간의 패널조사 자료를 활용한 Aubert 외(2015)에 따르면 자사주 소유제 등의 방식은 이직방지에도 기여해 기업의 인력수급에 대한 고민을 해소시켜주기도 합니다.
관련 문헌 :
Kruse & Freeman(2010), < S hared Capitalism at Work>
Aubert & Hollandts(2015), “How S hared Capitalism Affects Employee Withdrawal”, Journal of Applied Business Research.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이 놓친 것
이처럼 기업의 이익을 공유한다는 모델이 꽤 확산됨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를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각된 소득과 자산 불평등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공유자본주의'와 관련된 공약을 제1호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내용은 노동자에 배분하는 이익의 15%를 세액공제 대상으로 삼아 공유자본주의 모델을 더욱 확산시켜 불평등을 감소시키겠다는 것.
한편 이러한 클린턴의 공유자본주의 모델은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경합했던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룰뿐만 아니라, 사실은 샌더스의 사회주의적인 방식의 불평등론에 대한 일종의 대항담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하의 표를 보면 두 후보의 차이점이 상당히 드러납니다^^
샌더스의 경우에는 불평등 감소의 초점을 그 동안 미국에서 결핍되었던 각종 사회정책과 복지제도의 확충에 맞추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힐러리는 기업 내에서의 이익배분을 통해 소득배분을 꾀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성과 또한 향상시켜 궁극적으로는 '포용적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지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하부터가 저의 요점인데, 클린턴뿐만 아니라 공유자본주의를 일종의 사회담론으로 끌고 오는 논자들 상당수가 여기서부터 오류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공유자본주의가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공유자본주의는 시장에서 기업이 거둔 초과이익의 일부를 노동자들과 공유하며 노동자와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편 공유자본주의란 애초부터 이러한 초과이익을 둘러싼 기업간 경쟁의 산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공유자본주의에서 공유된 경제적 가치만을 볼뿐 애초에 그 가치를 둘러싼 자본주의적 경쟁 메커니즘을 시야에서 놓칩니다.
공유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경쟁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분에 대해 타당한 것이 전체에 대해서도 반드시 타당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공유자본주의를 도입해서 성과를 거둔 기업이 많다고 해서 그 원리가 모든 기업에 적용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단지 형식논리의 차원에서 제기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공유자본주의의 도입 목적은 애초부터 가치의 공유 및 배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이윤을 위한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유자본주의의 본질은 시장경쟁원리에 기반한 초과성과 및 초과이익의 일부를 종업원에 나누는 데 있습니다. 한편 그 경쟁에서 승리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패배하는 기업이 있고, 거기서 재미를 보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보지 못하는 노동자가 있기도 합니다.
요컨대 공유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경쟁전략일뿐 거시적 사회정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유자본주의를 도입해서 한 기업의 성과와 능률이 향상되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와 같은 일이 보편적으로 일어날 것이라 기대할 근거는 딱히 없다는 것입니다.
공유자본주의의 확산이 뭔지 모를 이유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경제성장(파이의 증가)을 견인하지 않겠냐는 논의도 가능하겠지만(그것이 바로 클린턴의 포용적 성장론) 그것은 이미 기존에 제출되었던 관념론적 경제성장 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 유교 정신이 자본축적을 가속화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공유정신(?)이 그와 비슷한 일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경제이론의 예측(무임승차의 문제 때문에 집단적 인센티브는 보다 소규모 기업에 더 용이하게 도입될 것이다)과 달리, 공유자본주의는 이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대규모 기업에서 더 많이 확산되어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Kruse & Freeman(2010)는 그가 원용한 일반사회조사(GSS)에서 1,000명 이상의 종업원 규모의 기업 중에서 공유자본주의를 도입한 사례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공유자본주의와 같은 새로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할 때 일정한 고정비용이 발생하는 데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쉽게 말해 중소기업은 애초에 이런 식의 '유연하고 복잡한' 인센티브 체계를 운용할 엄두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 주장하듯 공유자본주의가 실제 기업 현장에서의 협업을 통해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 효과를 갖는다면 소규모 기업은 오히려 그 효과에서 배제될 공산이 크다는 것. 이렇게 본다면 공유자본주의란 오히려 대규모 기업과 중소기업의 불평등 고리를 더욱 강화시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특히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큰 문제로 자리잡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유념해야 할 대목입니다.
물론 공유자본주의를 보다 진보주의적(?) 의제로 계승할 수 있는 방향이 없지는 않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공유자본주의를 채택한 여러 기업들은 규모가 꽤 큰 조직에서도 노동자 집단의 협력에 기반한 집단적 인센티브 제도가 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 동안 경영계나 주류경제학은 인간을 개인의 사적인 이익에만 반응하는 경제적 동물로 표상해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들은 '집단의 성공'이나 심지어 '동료압력(peer pressure)'을 신경쓰기도 하는 등 집단적/도덕적 인센티브에 민감해 하는 존재입니다. 그 보상을 제대로 설계해서 여러 대안적인 경제모델을 실험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참고로 바로 그런 도덕적 인센티브를 국가레벨에서 실험한 인물이 쿠바 국립은행 총재였던 체 게바라^^). 다만 현재의 문제는 그 보상의 재원이 결국 시장경쟁에서 얻는 초과이윤이라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글의 가치에 합당한 봇댓리 3종세트 발사합니다~ 제 스파의 미력함이 아쉽네요.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