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인생, 그리고 유머
일요일 늦은 저녁입니다. 저녁 식사 후 서재에 앉아서 내주 할 일들을 체크합니다. 내주의 시작인 월요일부터 진행될 중요한 약속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필요한 서류나 자료들을 챙깁니다. 미리 챙기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고생인 나이입니다.
8시 50분쯤 되면 아이가 부릅니다. 한 개그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서재를 나와 부엌으로 가서 저는 과자나 쥐포, 오징어 등 군음식을 쟁반에 담습니다. 그리고 쇼파에 앉습니다. 아이와 아내와 함께 주전부리로 군음식을 먹으며 개그 프로그램을 봅니다.
개그란 사전적으로는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등에서 관객을 웃기기 위하여 끼워 넣는 즉흥적인 대사나 우스갯짓을 말한답니다. 당연히 개그맨이란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겠지요. 개그맨들의 개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넘치는 위트와 유머에, 그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상황에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제 가족은 유쾌한 공간 속을 유영합니다.
이 개그 프로그램은 적어도 제게는 한 주를 마무리하고 새 주를 시작하는 경계에서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개그의 수준이 낮으냐 높으냐는 제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그들은 웃기고 있고, 저는 웃고 있고,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들로 인한 웃음 속에서 내 삶의 고단함을 풀며, 기분을 새로이 하고, 에너지를 충전하고, 또 다른 내일을 꿈꿉니다. 적어도 그래 왔다고 믿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기대합니다.
삶에 지치다 보니, 그래서 가끔 지나치게 고단하다 보니 사람들은 무거운 것보다 가벼운 것을 원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합니다.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언제 먼지처럼 날아가 버릴지 모를 만큼 가벼워진 세상에서 진지함이란 하나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삶 자체가 아이러니인 상황이라면 개그맨들의 가벼운 입담이나 몸짓은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는 마약일지도.
하긴 세상을 사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지금, 진지함이나 고뇌에 찬 모습은 오히려 사치인지도 모릅니다. 10분 이상 진지해지기라도 하면 대화가 단절되고, 정치 이야기나 사회의 정의, 북핵 문제나 국제 정세, 중동평화 문제를 이야기 하고자 하면 귀를 닫아버리고, 문학이나 철학에 이르면 아예 진저리를 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가벼워지고 희화화 되는 마당에 이들의 존재는 차라리 고마운 일입니다.
앨런 클라인은 말합니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머를 발견하는 것은 삶에서 코믹한 아이러니를 찾는 또 다른 방법이다”라고. 개그맨들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갖게 되는 슬픔을 치유해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들이 부디 우리에게 웃음의 명약을 주는 그런 치료사가 돼 주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전해주는 유쾌함과 웃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탁석산의 《철학 읽어주는 남자》에서 발췌한 글을 읽어드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거리 두기가 이루어지려면 인생과 세상에 대한 무상감이 있어야 한다. 인생은 어차피 허무하다. 인생이 허무하다면 집착할 것도 없다. 결국 무엇이 남겠는가? 기억? 기억도 스러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향유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무상감은 우리 마음을 비우게 함으로써 일상과 거리를 두게 한다. 그리고 그 벌어진 틈 사이로 우리는 삶의 진실을 목격하며 유머를 떠올리는 것이다.[탁석산, 《철학 읽어주는 남자》, 명진출판, 2003,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