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에 죽고, 소문에 살고
"선화 공주님은/남 몰래 시집을 가 두고/맛둥 도련님을/밤에 몰래 안으러 간다네."(김진영 역)
이 노래는 서동(훗날 백제 무왕)이 신라의 선화 공주를 제 여자로 만들기 위해 장안에 유포시켰던 노래입니다.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며 그 대가로 이 노래를 유포시키게 하였던 것이죠. 노래는 소문으로 떠돌다가 사실인양 채색이 되고, 급기야 서동이 선화 공주를 얻게 됨으로써 사실이 됩니다.
안토니 드 멜로의 《입 큰 개구리의 하품》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1946년 여름, 기근이 돌거라는 소문이 남아프리카 대륙을 휩쓸었다. 사실 곡식들은 잘 자라고 있었고, 날씨도 추수하기에 정말좋은 기후였다. 그런데 소문을 듣고 놀란 2만명이나 되는 소작농들이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도망가 버렸다. 결과적으로 농사를 망치게 되었고 수 천명의 사람들이 기아에 시달리게 되었다. 기근이 든다는 소문은 사실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소문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집니다. 얼마 전에 한 방송사에서 '소문'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 다큐멘터리에서 행한 실험을 보니 부정적인 소문이 긍정적인 소문보다 전파력이 훨씬 크더군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하는 속담도 있지만, '정말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경우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하가 편역한 《탈무드 잠언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위대한 랍비 아키바가 임종할 무렵 그의 아들이 말했다. "아버님, 아버님 친구 분들께 제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의 아들은 꽤 훌륭한 청년이었다. 아키바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들아, 나는 너를 추천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너에 대한 소문이 가장 좋은 소개장이니까 말이다."
좋은 평판을 쌓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한 평판을 바탕으로 좋은 소문이 나면 좋겠지요. 그러나 그 평판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세상입니다. 더군다나 소문이 내 의도와 상관없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소문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문은 기업이나 국가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우리는 이와 관련해서 많은 사건들을 접해왔습니다. 소문이 좋은 내용이라면 다행이지만 안 좋은 내용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소문에 의해 정상적인 생활을 박탈당한 채 은둔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유력 정치인이 경쟁자의 악의적 소문 유포에 의해 꿈을 꺾고 스러져 가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근거 없이 유포된 소문에 고통 받다가 세상을 등진 일들을 보아왔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 일이 될 수도, 그 소문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서로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뒤에 숨어서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퍼뜨리는 일, 부끄러운 일입니다. 죄입니다.
하창수의 《함정》 중 '소문'을 다루는 글을 발췌해보았습니다.
소문은 누군가를 대상화 시켜놓습니다. 그리고 소문 속의 그 누군가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놉니다. 그럼으로써 그 소문 속의 그는, 혹은 그들은 소문이라는 틀 속에 갇히게 되는 거죠. 원래 그나 그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사를 와버린 꼴입니다. 그런데 실은 말이죠, 그, 혹은 그들을 가지고 장난감처럼 놀고 있던 존재들, 그 존재들 역시 그 소문의 틀 속에 갇힌다는 겁니다. 그 존재들도 그나 그들과 함께 낯선 공간으로 주민등록을 옮겨버린 거죠.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그 존재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완고한 철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들이 그와 그들을 이주시켜버린 그 주소에 자기 자신도 주민등록을 옮겨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곳은 감옥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소문의 감옥쯤 되겠죠. 그런데 정작 문제는 말이죠, 그곳이 감옥이더라도 상관이 없다., 아니 감옥이니까 더욱 즐기겠다, 하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막가는 거죠. 오직 즐기겠다는 겁니다. 감옥이면 어떠냐…….[하창수, 《함정》, 책세상, 2002,p.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