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제자에게 물려줄 것은 사실 밥그릇과 옷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떨어진 옷과 낡은 밥그릇을 제자들은 스승의 유품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전통은, 그 제자가 그 스승의 수제자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교 최초의 주역, 부처님에겐 밥그릇이 없었다. 그래서 불교역사에는 밥그릇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참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록이면서도 중요한 이야기다.
고행, 몸을 괴롭혀서 마음을 가볍게 해보겠다는게 고행이었다. 지금도 그게 불교의 수행법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비록 부처님은 이 방법을 선택했지만, 고행은 불교의 전통이 아니다.
부처님이 되기 전 작은 나라의 왕자출신 싯다르타는 스승이 없었기에 밥그릇을 물려줄 사람도 없었거니와, 유일한 수행메뉴얼인 고행에 무려 6년이나 시간을 쏟아 붓느라 그 기간동안 밥그릇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싯다르타가 몸을 괴롭혀서 정신이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무려 6년이나 지나서였다. 때맞춰 아랫마을 수자타란 여인은 우유죽을 끓여왔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 밥그릇을 그냥 물에 떠내려 보낸다. 그리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밥그릇에 소원을 빈다. 그리고 밥그릇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물속에 사는 나가는 우리에겐 용궁이고 용이지만 용이란 개념이 약한 동남아에선 뱀이다. 그래도 둘 모두 용궁에 살고 있다. 앞으로 부처님이 될 분이 죽담아 드신 밥그릇은 나가에겐 중요한 기념품이어서 얼른 가져다 용궁에 탑을 세웠다. 부처님의 손길이 닿은 밥그릇도 종교적 상징인 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신들은 질투가 심하다. 신계에서 가장 힘쎈 신, 인드라는 뱀잡는 독수리, 나가잡는 가루다로 변신해서 나가를 후려치고 발우을 빼앗는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 도리천에 발우를 가져간다. 그림의 우측 상단의 조그맣게 표현된 인드라의 날개는 고약한 듯 하면서도 귀엽다. 잘 보면 나가에게 빼앗은 밥그릇을 움켜쥐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부처님은 밥그릇이 없다.
버마 사람들의 믿음에, 양곤에 있는 거대한 황금탑 쉐다곤은 부처님에게 머리카락을 얻어서 탑속에 넣고 그 탑을 세웠다는 믿음이 있다. 이 머리칼을 얻은 발리까와 땃뿌샤란 두 사람은 버마에서 온 것인지, 그래서 쉐다곤을 그들이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처님을 만나서 머리칼을 얻기는 했던 것 같다. 그들이 부처님을 만나서 음식을 드렸을 때 그들에게도 부처님에게도 밥그릇이 없었다.
그 때 사천왕이 등장했다. 밥그릇 하나씩 들고 가서 부처님에게 드리니, 부처님은 밥그릇이 하나만 필요할 뿐이었지만, 4인 중 누구의 것을 받아야 할 지 결정하지 못한 부처님은 네 개를 눌러서 합쳤다. 이게 그림이나 책이나 부처님 일생의 세계버젼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석씨원류 중
이 삽화는 석씨원류라는 중국판 불교역사서인데, 그림이 약 400여장과 일화로 소개된 독특한 양식의 책이다. 1400년대 만들었으니 역시 한국의 석보상절과 거의 같은 시대에 만들어졌다. 여러 기록들에서 한땀 한땀 모아서 그림+카드로 만들었으니 지금 봐도 현대적이다.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보면 작가가 그냥 따라 그린 것인지 알고 그렸는지를 알 수 있는데, 두 개의 스토리를 연결시킨 걸 보면 내용을 정확히 파악했을 것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발우가 그걸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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