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며, 전공/전문분야의 선택에 대해 고민한다. 나도 물론 마찬가지고 스팀잇의 많은 사람들 역시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사실 전공/전문분야/진로(이하 전공이라 통칭하겠다)의 선택은 매우 어렵다. 한번 선택하면 보통 몇 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하며 일부는 그 선택을 평생 이어가기도 한다. 더욱 신중하게 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의 해답에 있어 선택의 reference는 단지 선배나 형님들 중 그 분야에 속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마치 세상의 이치를 다 알고 있는 듯 행동하는 그들 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프로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경험이 아닌 어디서 주워들은 그럴싸한 어구들의 연속. 스스로 reference가 되지 못한 자들과의 대화가 진행 될 수록 느껴지는건 ‘그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중생’이구나 밖에 없었다. 밥 몇 공기 더 먹은 사람의 얄팍한 조언. 몇시간의 대화 끝에 남는건 서로가 들이 부은 술잔에 비춰진 연민과 동정심 뿐이었다. 매번 결론은 같았다. 인생은 어렵다. “최고가 되기 위해선 최고를 만나야 한다”는 말의 참뜻을 이때 깨달았다.
대학시절의 나는 책을 엄청 읽었었다. 특히나 진로 고민을 위해 성공기 위주의 내용들을 많이 읽었는데 1년만에 성공기만 거의 50권 가까이 읽은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특별한 패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읽었던 모든 성공기는 고생->위기->기회->성공 의 4단계로 항상 설명되었다.(사실 이건 뭐 지금도 거의 마찬가지다) 흥미로운건 항상 위기 챕터가 끝나면 바로 기회의 챕터가 온다. 내가 알고 싶은건 어떻게 기회를 잡았는가에 대한 프로세스와 디테일인데 이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책속의 그들에게는 늘 그렇듯 기회는 불연듯 찾아왔다. 마치 이미 찾아오기로 약속되어 있는것 처럼.
그때 알았다. 책도 팔리기 위한 것이라는걸. 하고싶은말과 해야하는말 사이를 고민한 성공기는 한편도 없었다. 책속에 답이 있다던 옛 선조의 말씀은 거짓말 이었다. 책에는 얼핏 보면 답처럼 보이는 질문이 있었고 답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걸 그때 알았다.
한번은 카이스트 다니는 친구에게 이메일 주소를 받아 ‘안철수'님에게 메일을 보낸적이 있다. 뭐 오래되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말미에 ‘파란 채팅창에서 꿈을 찾았던 처음의 안철수님에게 묻고 싶습니다’ 뭐 이런 내용을 썼던것 같다.(감정에 취해서 한말이었지. 이불킥감이다. 킥.킥.킥….아오)
< 영혼이 있는 승부 - 안철수 / ‘미안하다. 당신 책에 영혼은 없었다’ >
결국 진로의 선택에 있어 다른 사람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아니 도와줄 수 없었다.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동안 손에서 책을 멀리하고 밤마다 옥상에 올라가 혼자 맥주 를 마시며 스스로에게 질문과 답변을 하는 것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했던 수 많은 질문들과 답변을 찾는 과정은 오늘날 나의 멘탈 강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는 젊은날의 큰 자산이다. 오해하지 마라. 물론 지금도 젊다 ^^;
이쯤에서 전공/진로를 고민하는 혹자들을 위해 내 이야기를 공유 해보려 한다. 물론 나 역시 여러분들에게 정확한 해답을 줄 수는 없다. 다만 적어도 어떠한 질문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참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린시절 나의 전공은 S/W 였다. 대학교때는 H/W 였으며, 대학원때는 communication 및 radar였고, 창업을 시작 하면서는 경영학이 되었으며, 창업 후에는 기획을, UX를, 그리고 현재는 product design을 맡고 있다.
혹 글을 보고 오해할까봐 미리 이야기 해 둔다. 이런 전공의 다양성을 피키캐스트와 같은 우주의 얕은 지식으로 착각하면 안된다. (직장인 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전쟁터보다 살벌한 비지니스 세계에서 그것을 업으로 한다는건 deep한 이해도가 요구되는 상당히 난이도 있는 문제다. 흡사 학과에서의 복수전공과 같이 접근 했다가는 회사에서 단칼에 잘려나간다. 만약 그렇게 행동 해도 나를 해고하지 않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당장 그만둬라. 그 회사는 배울 것도, 그리고 미래도 없으니까.
전공1. 컴퓨터 소프트 웨어
어린시절 나는 컴퓨터를 참 좋아했었다. 운 좋게도 아버지께서 게임기보다 컴퓨터를 먼저 사주셨는데, 5살때 아버지가 사주신 8비트 apple II 컴퓨터는 나의 보물 1호였다. 그렇게 컴퓨터로 매일 게임만 하다가 보니 8,9살때쯤 자연스럽게 BASIC이라는 컴퓨터 언어는 접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마치 신이 된 듯양 컴퓨터를 내맘대로 움직이게 하는 느낌. 만약 신이 인간을 빚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다.(종교적인 논쟁은 사양합니다. 저는 공대출신이고 진화론을 믿으며 무교입니다. 제 자신을 믿으니 bygon교라 합시다. ㅋㅋ)
<Apple II 컴퓨터 / 출처 : wikimedia >
당시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하지만 이내 성에 차지 않아 부모님을 설득해 컴퓨터 학원을 들어갔다. 아마도 이 무렵 처음 C언어를 접했던 것 같은데 BASIC보다는 사용하기 편해서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 봤던 것 같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장난삼아 C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 컴퓨터의 포멧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N)“ 의 메세지를 띄우는 가짜 포멧 프로그램이다. 물론 Y를 누르던 N를 누르던 ESC를 누르던 간에 무조건 포멧이 진행되는 것 처럼 보인다. 수업시간에 몰래 프로그램을 완성한 나는 수업을 마친 후, 수업시에 사용하는 C에디터와 파일을 바꿔치기 해놨다.
결과는? 다음날 오전 학원이 발칵 뒤집어 졌다. 그도 그럴것이 단체로 학생들이 수업을 위해 C에디터를 실행했는데 포멧이 되어 버리니 난감할 수 밖에. 이제는 소싯절 추억거리에 불과한 옛 이야기이다. 뭐 나름 그때는 개구쟁이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의 초,중,고등 학교 시절의 키워드는 “컴퓨터"로 정의된다. 요즘 코딩교육이 필요하다고 말이 많은데 사실 코딩보다 중요한건 아키텍처 설계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연속되어 보이는 문제를 모듈화 하고 최대한 작은 단위까지 분절 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복잡해서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작은 단위로 분해해 주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리소스만 있다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주관식 문제를 객관식으로 바꿔주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보기는 많지만 하나하나 반복 대입해 가면 된다. 사실 이렇게 습득한 아키텍처 설계 기법은 오늘날 나의 인생의 복잡한 문제를 최대한 잘게 분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기회가 되면 코딩교육을 통해 문제를 분절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면 좋다.
전공2. 하드웨어
프로그래밍을 계속 배우면 배울수록 이상하게 점점 더 답답해져 갔다. 내가 하려는 일들이 점점 하드웨어에 제한되어 막히기 시작했다. 주변에 이리 저리 물어보아도 들리는 대답은 ‘그건 나도 몰라’, ‘그건 소프트웨어 영역이 아니야' 라는 대답이었는데 그럴때 마다 답답함은 더욱 가중되었다.
‘아니 누가 그걸 몰라? 공부는 내가할테니 뭐부터 배우면 되는지 프로세스를 알려 달란 말이다.’
이윽고 고3 입시를 앞두고 나는 컴퓨터공학과가 아닌 전자공학과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다행히 컴퓨터를 하면서도 공부는 계속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의 전자공학과에 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당시에 숨겨놓은 Plan-B 였던 것일까나.
사실 보기에는 단순한 Plan-B 에 불과한 것이지만 당시 상황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 해 수능은 역대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했고 내 수능 점수는 평소보다 많이 낮게 나왔다. 다행이도 다른 학생들 역시 시험을 못 본 탓에 간신히 서울에 있는 전자공학과에 지원 할 수 있었다.
당시 입시는 가,나,다 이렇게 3가지 군에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수가 생각보다 낮게 나온 탓에 서울대와 연고대를 제외하니 내가 가고 싶은 전자공학부는 2개 밖에 없더라. 입시 원서비도 10만원을 훌쩍 넘는터라 쿨하게 ‘가’,’나’ 군만 지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원서비 아꼈으니 소고기나 먹자고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집에 왔는데, 이게 왠걸. 태어나서 아버지한테 그리 쓴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입시가 장난이냐며 옆에 있던 빗자루로 흠신 두들겨 맞았었는데 입시가 아니라 아버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등떠밀려 나와 ‘다’군을 지원하러 갔다. 아무리 봐도 가고싶은 학교가 없길레 결국 ‘가'군에 지원한 학교를 ‘다'군에 다른 전형으로 다시 지원하고는 원서접수를 마무리했다.
다음이야기는 아마 예측할 수 있을 거다. 혼돈속의 입시는 ‘가’,’나’군 탈락과 함께 나를 멘붕으로 이끌었고 결국 집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낸 끝에 ‘다'군에 합격했다. 이자리를 빌어 아버지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쓰다보니 스팀잇에 한번에 쓰기에는 양이 좀 많아보인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편에 다루는게 나을듯 싶다. 마치 해답을 줄 것 처럼 장황하게 일을 벌려놓고 도망가는 느낌이긴 하지만, x싸고 밑을 닦지 못한 찝찝한 느낌이긴하지만, 정신상태 멀쩡할 때 더 재미있는 내용 가지고 돌아오겠다.
재밌는 성장기네요!
앞으로도 재밌는 일화 기대해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네 추가로 정리해서 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ㅎㅎ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진정한 코딩의 얼리스트 어답터시네요. 다음편도 올려주세요 -
주말에 해야 할 일이 많아졌네요. ㅋㅋㅋ
재밌게 읽었습니다.
큰 문제를 잘게 쪼개는거, 여러 함수로 분리하는 것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ㅎㅎ
저도 이 부분 인상 깊어서 스크린샷으로 저장했네요
공감합니다~^^
지금은 위기를 지나 기회를 맛보고 계신거겠죠? ^^ 다양한 전공을 섭렵하고 계시다니 대단하십니다~ T자형 인재가 아니라 ㅠㅠㅠ 자형 인재이신것 같아요~ㅎㅎ
과찬이십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ㅋㅋ
필요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하고싶은것이 해야하는것으로 바뀌는 행위가 일어날때 전공분야가 조금씩 다른 범주로 확대 되는것 같네요. 최근 10년간 이것 저것 해야하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일단 아버님께 감사를 ㅎ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베이직 배웠는데 전 완전히 문과형인가이 됐네요ㅋㅋ
문과 이과 나눌필요 있나요. 되돌아 생각해 보면 피차 인생은 어차피 인문학인 것을요.
그나저나 저때는 정말 아팠습니다. 아버지 힘이 세시더군요. ㅋㅋㅋ
사진이 애플컴퓨터의 고조할아버지인가봅니다. ^^
차츰 성장해나가는것이 제일 중요한것 같아요.
다음 포스팅도 기대하겠습니다~
저시대의 최신 아이맥 이라고 생각하시면 비슷할듯 합니다. ㅎㅎ
가격도 굉장히 비쌌던것 같아요.
다음편도 얼른 정리해 보겠습니다. ^^;
bygon님의 글을 읽고나서 스스로 사색하는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방문 감사드리며, 팔로우하고 갑니다! 시간되실 때 다음편도 부탁드려요~ㅎㅎ
혼자 생각하는 시간은 정말 소중한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소모적으로 느껴지던 '멍때리기'일지라도 말이죠. ㅎㅎ
저도 성공기, 성장책들은 안읽게되더라구요.
책에서는 말씀하신것처럼 위기와 고난뒤에는 기회가 꼭 오던데 현실과는 좀 먼거같은 느낌이거든요.. 아니면 제 노력이 부족한걸까요?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위기와 기회의 인과관계가 뒤바뀐 것이더라고요.
'위기를 버티면 기회가 온다'가 아니라 '기회가 올때까지는 위기이다.' 이렇게 말이죠.
수학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필요충분 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인 셈이겠네요. 기회가 오던 안오던 위기일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기회가 올때까지 무조건 버티셔야 되요! 그것을 우리는 노력이라고 하죠. ^_^
맞아요... 노력의 결실이 안보여도 해야하고 버티는거죠:)
한 개구장이의 성장기 잘 읽었습니다. 풀보팅 하고 갑니다. ㅎㅎ
ㅋㅋㅋㅋㅋㅋㅋ 풀보팅 감사드립니다. 불새 보러 조만간 가겠습니다 ㅎㅎ
어릴적부터 코딩으로 장난을..! 떡잎부터 남다르시네요 ㅋㅋ
그래서인지 이제 지겨워요. ㅋㅋㅋㅋ
물론 업으로 저보다 더 잘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ㅎㅎ
그나저나 꼬드롱님이 당구 치는걸 보면서 저도 다시 당구를 쳐볼까 합니다만..... 밀린 글부터 써야되겠네요 ㅎㅎ
전 코딩 공부해보려고 했다가 헬로월드에서 접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구 치세요!!! :) 글빨리쓰시고 당구!!! 아니면 어차피 밀린 글 또 미루고 당구!!!
와우, 어차피 밀린거 또 미루고 당구. 참신한데요? ㅋㅋㅋ 언제 기회되면 한번 불러주세요 ㅋㅋ 당구밋업?... 당밋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