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가족끼리 여기저기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곤 했다. 차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에 차에서 편하게 자는 스킬(훗날 교통사고를 당해 스킬을 잃게 된다)이나 흘리지 않고 먹기 등등 장시간 이동에 적합한 여러 가지 기술들을 익힌 기억이 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다보면 저런 기술들 외에 여러 가지 추억들이 많이 생각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음악에 관한 것이다.
당시 선곡권은 운전하는 사람의 몫이었기 때문에 거의 항상 아빠 취향의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창 핑클과 지오디가 핫할 때라 그들의 노래를 듣고 싶었는데 아빠는 단호했다. 아빠는 매번 직접 구운 씨디 한 장을 반복재생하며 드라이브를 하셨고 어느샌가 나의 취향은 그 씨디에 맞춰져있었다.
씨디에 한두곡이 있던게 아니기 때문에 모든 곡들이 기억나지는 않으나 그 중 몇몇 곡들은 지금도 노래방 가면 부를 만큼 좋아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다. 나중에 커서 중경삼림을 보다가 이 음악이 나와서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히익’하면서 입을 틀어막았다. 왠지 이 노래는 적당한 습도와 청명한 날씨 그리고 살짝 바람 부는 날 걷다보면 생각난다. 그 밖에 비틀즈, 롤링스톤즈, 퀸 등 유명 밴드들의 노래 또한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빠는 아무래도 밴드 덕후였던 것 같다. 하여튼 그 결과 현재 나는 락페를 낙으로 살아가는 훌륭한 락덕후로 성장하였다.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저렇게 보내고 슬슬 인터넷에 중독되기 시작한 청소년은 그 때 인터넷을 휩쓸던 밴드 뮤즈에 빠짐과 동시에 이른 중2병이 도졌다. 우수에 젖은 눈으로 학원을 가는 길에 타임 이즈 러닝 아웃을 들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인빈써블을 들으며 친구들과 우정을 다졌다. 중학교에 들어가선 잠시 다른 길을 걸었다. 아이돌에 빠진 것이다. 허나 그도 잠시, 좋아하던 그룹의 모 멤버가 탈퇴하자 울며불며 몇날며칠을 보내고 다시 록의 세계로 회귀하였다. 아마 그 때 라디오헤드를 좋아했던 것 같다. 톰 요크의 기묘한 춤사위를 보는 것을 즐겼으며 카르마 폴리스에 맞춰 몸을 흔들대곤 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메탈리카나 교류직류에도 빠지기 시작한 것 같다. 사실 그 때 굉장히 많은 밴드들을 좋아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굴에 검은 칠을 한 사람들도 있고 그랬는데...
하여튼 고등학교 입학 전까진 혼자 인터넷을 떠돌며 좋다는 노래 있으면 듣고 때려치고 그랬는데 친구가 생겼다. 생에 처음 사귄 친구는 아니고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를 사귄 것이다. 처음이었다. 오아시스를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이 친구가 영업을 상당히 잘하여 나도 뒤늦게 오아시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이 외에도 온갖 밴드들을 나에게 추천해주었으며 얘 때문에 진정한 덕후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는 얘일 것이다. 친구는 수많은 밴드들을 내게 추천해주었고(꼭 좀 들어보라고 강요했다) 나도 질 수 없어 여러 밴드들로 공격하였다. 그래서 그 시기에 태어나서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일단 추천받은 밴드는 전곡재생을 해야했기 때문에 주로 야자실에서 그 과제를 해치웠다. 수학 문제 풀 때 음악 들으면 집중 잘 된다는데 난 그냥 수학을 포기하여 그 시간에 온전히 노래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공부를 하나도 안한 것 같지만 장점도 있다. 가사가 영어이기 때문에 알아들으려면 영어 공부를 해야했고 이는 어휘와 리쓰닝에 아주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고3때 자주 들었던 노래는 주로 더 스미스나 벨벳 언더그라운드, 보위 등등의 옛날 옛적 노래였다. 지금도 계속 좋은 노래들이 나오고 있는데 왠지 옛날 , 더 옛날 노래만을 찾게 되고 그 결과 유행에 크게 뒤처지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항상 내가 아는 노래는 그들이 모르고 그들이 아는 노래는 내가 모르는 대참사가 벌어졌고 친구가 노랫말로 드립을 쳐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심각함을 느끼고 최신 힙합을 듣기 시작했으나 나에겐 맞지 않는 옷이다. 친구가 모 래퍼의 신곡을 들어보라 강요해도 듣다가 울면서 이어폰을 빼곤 한다. 모두가 락을 좋아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붙잡고 난 오늘도 새로운 밴드를 찾아 유튜브를 헤맨다.
하하 선곡권은 운전하는 사람의 몫이죠.제가 송골매를 좋아하기에 제 꼬맹이와 마누라는 원치않는 7080을 들어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