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자의 사진엽서│ 07 소용돌이와 근심으로부터 힘차게 떠납니다(武離渦罹)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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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의 사진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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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와 근심으로부터 힘차게 떠납니다(武離渦罹)
(굳셀 무, 떠날 리, 소용돌이 와, 근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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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사회 속에서는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의 골짜기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절벽을 조심스레 걷고 발아래의 진흙탕을 살피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초입에서 돌아 나와야 하지요. 그러나 익숙한 사회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발을 들이면 한동안은 오래된 옷을 모두 벗어던진 것처럼 '나'라는 존재를 더욱 굵직하고 절실하게 느낍니다. 외면하고 싶은 내면의 밑바닥을 깊게 끌어안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일순간 알량한 나르시시즘을 느끼기도 하지요.







 잠깐이라도 자신에 대해 풍부한 감정을 갖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생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처량한 몰골로 고독한 시간을 빠져나올 때는 한 줌의 빛 같은 자기애를 부둥켜안아야 하거든요. 오늘 편지는 그 빛을 움켜쥐고 한 자 한 자 써내려 갑니다. 바닷물 아래의 잠류에 휘말려 정처 없이 표류한 까닭입니다. 파리한 초승달에 밧줄을 던져 겨우 시간을 멈춰 세웠습니다. 가끔은 태양이 하루를 건너뛰고 떠올랐으면 합니다. 사회에 건네는 표정을 숨기고 마음의 골짜기를 충분히, 천천히 걸어보았으면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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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iwai Beach, Auckland, New Zealand / ⓒchaelinjane,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날은 밝았습니다. 어둠이 저를 조금 더 오래 숨겨주길 바랐지만, 태양 빛처럼 무한하게 쏟아지는 사랑 덕분에 다시 빛 속으로 고개를 내밀 수 있었습니다. 솔직해질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도 함께라면 초월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내 스스로를 이겨내는 일일지라도요. 그 힘은 무리와이 해변으로 밀려오는 건강한 파도를 닮았습니다. 저도 그런 큰 기운을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커다란 에너지를 머금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내 자신으로 꿋꿋이 걸어나가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클랜드에 지내면서 좋은 친구들을 무척 많이 만났습니다. 남섬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물건을 재정비하고, 친구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아직 가보지 못한 북섬의 아름다운 곳들을 최대한 다녀 보고 있어요. 오늘도 사랑스러운 가족의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답니다. 편지를 쓸 시간이 부족해 결국 하루를 넘기고 말았지만,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펜을 들었으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 편지는 완전히 낯선 곳에서 띄우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주도 온 힘을 다해 살아내 준 당신에게 제가 언제나 큰 힘을 전해 받는 무리와이의 바다를 담아 보냅니다. 武離渦罹, 저는 소용돌이와 근심으로부터 굳세게 떠나겠습니다.






(2018년 9월 16일 일요일)
















기록자의 사진엽서 │ 우편함

2018년 8월 10일 금요일, 첫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2018년 8월 16일 목요일, 조절 가능한 불행에 대하여
2018년 8월 22일 수요일, 사진과 글로 호흡하기
2018년 8월 28일 화요일, 숲의 바람을 전합니다
2018년 9월 3일 월요일, 숲에서 배우는 것들
2018년 9월 9일 일요일, 안전지대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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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lin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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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드디어 Minnow !!!!

힘든 일 잘 마무리 하셔서 근심의 소용돌이로부터 굳세게 떠나셨기를 바랍니다 :)

고마워요, 토랙슈님-! ;)))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이 시간에도 자기 안으로 꿋꿋하게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고 있을 채린님 발걸음을 위해 기도할래요, 오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보내는 소식을 기다릴게요!

스팀잇이 한동안 접속이 안되어서 댓글을 이제서야 달아요-!!!!
으허헝 응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동글님! ㅎㅎㅎㅎㅎ 불안과 부정적인 감정을 스윽 흘려보내는 연습을 재미 삼아 하는 게 아닌,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해내고 있어요. :) 치열하게 애쓰니 마음도 저를 따라와주는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 오늘 하루 마무리 잘하셔요 동글님 :)))

남섬 라이프도 기록 넘치는 일상이 되시길 바랍니다. :)

으아 감사합니다 마셸린님-!!! :)))

원하는 그 길로 떠나야지요.

오랜만에 채린님 글 읽으니 힐링이 되네요 ㅎㅎ
그나저나 혹 브런치에서는 연재 안하시나요?

으아- 애나님 간만이에요-! ㅎㅎㅎㅎ
브런치에서는 연재는 안하고 그냥 개인적으로 업로드만 하고 있어요. :)
다음에 정말로 책을 낼만한 원고를 쓰게 되면 연재작가에도 도전해보려고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