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의 모험 The Adventures of Duri │제19화 Episode 19│ 코로만델 탐험기 (1) ─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해변, 핫 워터 비치(Hot Water Beach)

in #kr6 years ago (edited)



The Adventures of Duri



두리의 모험








제19화 코로만델 탐험기 (1)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해변, 핫 워터 비치(Hot Water Beach)







/








Hot Water Beach, Coromandel,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7월 15일 일요일, 웰링턴 출장이 끝났다. 오클랜드에 도착한 건 월요일 새벽 여섯 시경. 2주 동안 한 달 반 분량의 일을 압축적으로 하면서 약간의 수입과 함께 수면 부족, 스트레스, 피로 누적, 면역 체계 약화 등등을 주렁주렁 달고 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사흘은 정신없이 잠만 잤다. 잠에서 깨면 어느샌가 눈이 다시 스르르 감겼다. 더 이상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고, 억지로 졸음을 참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거대한 피곤 앞에서 후련함을 느끼며 완벽하게 무장 해제가 된 처지는 의외로 은근한 만족을 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할 일을 끝내고 느끼는 후련함'이다. 매일의 삶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노동만으로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를 이런 기분으로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선을 다해 일했으니 우리에게 휴식을 주기로 했다. 쉬는 게 목적이었기에 캠핑 대신 잘 갖춰진 숙소에서 2박 3일을 지내기로 했다. 두두가 출장을 갈 때마다 숙박 포인트를 잘 모아둔 덕에 1박은 무료로, 또 다른 1박은 한화로 2만 5천 원 정도를 추가로 결제하고 예약할 수 있었다. 똑똑한 두두 덕분에 공중으로 증발했을 수십 개의 쿠폰들이 이렇게 큰 선물이 되어 돌아오다니! 기대 속에 숙소를 고르고 골라 비슷한 가격대의 리조트 한 곳과 비앤비 한 곳을 최종 후보로 골랐다. 번지르르한 리조트 사진은 화려하긴 했으나 영 끌리지가 않았다. 작년 겨울 이탈리아 레조디 칼라브리아와 폼페이 근처 숙소에서 머물며 느꼈던 인적이 드물고 씁쓸한 기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세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선 시간들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낯선 세계에서 일상을 형성하고 있는 과정이었기에 조금 더 다정한 기운이 필요했다. 그래서 공간만 덩그러니 남겨진 곳보다는 호스트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비앤비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







 수요일 아침, 여행 짐을 챙겨 들고 집에서 187km 정도 떨어져 있는 코로만델 반도로 향했다. 동쪽 해안에 있는 머큐리 베이의 핫 워터 비치(Hot Water Beach)가 우리의 첫 목적지였다. 한 해 평균 70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다는 이곳은 하루 두 번, 아침저녁 때의 썰물 전후로 두세 시간 정도에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시간대가 마련된다. 처음에는 '핫 워터'라는 이름이 너무 직관적이고 밋밋해서 큰 기대는 할 수 없었다. 온천수가 나오는 특이한 해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겠지. 그러나 핫 워터 비치는 우리를 2박 3일 일정 중 이틀이나 방문하도록 만들었다. 내 인생 최고의 해변이 이토록 평범한 이름 뒤에 숨어 있었다.




IMG_5406.JPG

Hot Water Beach, Coromandel,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두두는 오랫동안 서핑에 굶주린 탓에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로 사라졌다. 파도를 타는 두두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파도가 무척 높은 날이라 해변에서는 두두의 모습조차 볼 수가 없었다. 한동안 해변을 산책하다가 다시 스파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주위에는 모래를 파고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도 발이라도 담글 생각에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두 발로 구덩이를 열심히 팠다. 포클레인처럼 발가락으로 모래를 무너뜨리고 발등에 모래를 얹어 바깥으로 내보냈다. 손을 쓰고 싶었지만 모래 묻은 손으로 카메라를 만질 수가 없어 운동하는 셈 치고 온천수가 올라올 때까지 구덩이를 파는 데 열중했다.




IMG_5321.JPG

Hot Water Beach, Coromandel,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IMG_5257.JPG

Hot Water Beach, Coromandel,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지하 두 곳에서 65℃ 정도 되는 온천수가 올라오는데, 그 위에 모래를 파면 너무 뜨거워서 몸을 담글 수가 없다. 자리를 잘 고르면 살짝 식은 적당한 온도의 온천수를 확보할 수 있는데 보통 이렇게 '온천수 잭팟'에 성공한 사람들 근처로 사람들이 줄줄이 구덩이를 판다. 아쉽게도 내가 파던 자리는 '꽝'이었다. 모래에서 약간의 열기는 느껴졌지만 바닥에는 찬물만 고였다. 서핑을 마치고 나온 두두가 조금 더 깊게 파보았지만 여전히 스파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아까 산책을 하며 인사를 나눴던 소년을 발견했다. 소년과 여동생은 작은 삽으로 구덩이 두 곳을 연결해 길쭉한 스파를 만들고 있었다. 남매는 우리들의 합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두가 감사의 표시로 구덩이를 더욱 깊게 파주고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수로 들어갔다. 이전부터 허리 통증을 호소했던 두두가 만족스러운 탄성을 질렀다. 그런 두두를 보면서 겨울 서핑을 하고 나온 직후에 전신으로 따뜻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꽁꽁 언 몸을 미리 데워놓은 전기장판 속에 훌러덩 던져 넣는 것과 비슷하겠지! 고심 끝에 한국에 두고 온 수영복이 무척 아쉬웠다.




IMG_5287.JPG

Hot Water Beach, Coromandel,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둘째 날에는 캠핑 의자와 책을 들고 갔다. 뜨거워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지점에 당차게 의자를 펼쳤다. 여기서는 모래를 깊이 팔 필요가 없었다. 독서를 즐기며 모래 속에 발가락을 넣고 꼼지락꼼지락 움직였다. 물이 조금 식었다 싶으면 발끝을 모래 깊이 넣어서 뜨거운 물을 공급하면 되었다. 바다 정원에 관한 아름답고 미스터리 한 소설을 읽고 있어서 몰입하기에는 이만한 배경이 없었다. 기괴한 바위들과 수북한 풀 나무들이 등 뒤로 솟아 있고, 발아래의 모래는 태양을 삼킨 것처럼 뜨거웠다. 오랫동안 증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 히터가 나오는 비행기 안에서 러시아의 눈 덮인 산맥을 바라볼 때도 이렇게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겨울 바다, 정반대의 감각이 충돌하는 이 공간도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IMG_5268.JPG

Hot Water Beach, Coromandel,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해가 지자 몸에 붙어 있던 습기가 식으면서 추위가 느껴졌다. 다시 겨울로, 마법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주위가 황금색으로 변하는 태양의 피날레 마술이 시작될 때 천천히 해변을 빠져나왔다. 금발 머리칼이 거대한 푸른 눈동자 위로 흩날리고 있었다.




Hot Water Beach


Pye Place, Coromandel, New Zealand

유료 주차장: 시간당 $2 / 하루 최대 $15
무료 주차장: 유료 주차장에 가기 전 왼쪽 갓길로 내려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근처 서핑 샵에서 삽을 유로로 빌릴 수 있지만 근처 숙소에 머문다면 호스트에게 빌리는 방법도 있다.​썰물과 밀물 시간대는 Weather & Tide Times에서 확인 가능하다.









Title.png


Dudu & Riri are the ones who develop each desire in each place. Dudu wants to live as a builder and Riri as a creator. Though there are a lot of different things between them, Dudu & Riri pursue the same values: living an independent life, fulfillment of a dream, learning & reading about things, living a future-oriented life, and the value of BEING TOGETHER.


목수로 살고 싶은 두두와 기록자로 살고 싶은 리리.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격도, 하고 있는 일도 다르지만 같은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삶, 꿈의 실현, 배움에 대한 애정, 미래 지향적인 삶, 그리고 함께 하는 것의 가치를 꿈꿉니다.









「두리의 모험 The Adventures of Duri」이전 글



│제1화│유리 온실 탈출기
│제2화│행운의 증표
│제3화│안녕, 오클랜드!
│제4화│새로운 모험을 위한 붕붕이
│제5화│보름 동안의 변화
│제6화│첫 바다, 무리와이
│제7화│+프리미엄+ 공기의 축복
│제8화│와레 푸카푸카
│제9화│어느 심심한 가을날
│제10화│이렇게 예쁜 가을 바다
│제11화│옷 말리기 대작전
│제12화│오클랜드 아트 갤러리 산책 - 고대 유적 기록물부터 현대 미술, NZ 페미니즘 제2물결까지
│제13화│웰링턴 여행, 웰링턴 '출장'이 되다
│제14화│라글란에서 생일을 (1)
│제15화│라글란에서 생일을 (2)
│제16화│일요일의 웰링턴 산책 (1)
│제17화│일요일의 웰링턴 산책 (2)
│제18화│어둠 속의 실루엣 ─ 그리고 잊지 못할 밤





│by @chaelinjane

Sort:  

뉴질랜드 꼭 다시 가고 싶은데, 이렇게 이유를 하나 더 만드시는군요.

써니님-! 핫 워터 비치는 쌀쌀한 5월-8월에 방문하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ㅎㅎㅎ 한번만 방문하기에는 무척 아쉬운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 저도 일상과 여행을 함께 하고 있어서 생각보다는 구석구석 다니지 못하고 있답니다 ㅠ ㅎㅎㅎ 아쉬워도 이 시간들을 감사하게 기록해보려고요 :))

저도 가보고 싶네요. 글을 읽다 저도 모르게 구덩이 파는 모습을 상상했네요. ㅋㅋㅋ

저 정말 땀 흘리며 열심히 했어요ㅋㅋㅋㅋ 허공에서 스쿼트 한 느낌이랄까요??! ㅎㅎㅎㅎ

잘 읽었어요. ㅎㅎ
저희도 뉴질랜드 여행했을 때 해변가를 파면 온천물이 나오는게 너무 신기했었는데 직접 해보진 못했거든요.
캠핑의자에 앉아 뜨끈하게 발을 데우면서 책읽으면... 와우 넘 부러워요 ㅋㅋㅋ
by효밥

뛰어들고 싶은 마음 절반, 사진 찍고 책 읽고 싶은 마음 절반,
결국 후자를 선택했어요ㅎㅎㅎㅎ
꼬마들의 파라다이스였답니다-!!!!

여름에 다시 가면 아주 그냥 더워서 혼나겠죠? ㅋㅎㅋ

사진이 모두 참 좋네요, 두리님 통해서 낯선 뉴질랜드에 대한 매력을 알아갑니다.

한큐님 오랜만입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ʖ ͡°͡°

헐 우와 미쳤다.....
엄청난 공간이네요 저곳은ㄷㄷㄷㄷ 뉴질랜드를 언제 갈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여행하게 된다면 저긴 꼭 꼭 꼭!!! 들르고 싶어졌어요. 완전 대박

모든 일이 잘 마무리 되어 두리의 모험을 재개하신 것이길 바랍니다~^^

무려 2개월 전의 여행기를 이제서야 올려요.. ͡°͡° ͜ʖ ͡°͡°
저긴 진짜 미친 곳!!!! 꼭 겨울에 들러보시길 바랄게요 ㅎㅎㅎㅎㅎ
몸을 완전히 담가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서 다시 가보고 싶기도 하답니다 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많지만! :)
남섬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부지런히 써보려고 해요 ㅎㅎㅎㅎㅎ

(≧∀≦) 풍경도 사진도 정말 예쁘고 해변의 온천이 정말 멋지네요~

아론님 감사해요 !!!! :) ♥️♥️ 헤헤 아이슬란드의 온천도 꼭 체험하러 가보고 싶답니다! ㅎㅎㅎㅎ 추석 잘 지내셔요 아론님-!!!!

요즘 글이 안 보이네요. ^^ ~~~

꺄아 인석님 오랜만이에요! :) 그동안 거의 인터넷 없이 살고 있어서 스팀잇에 들어오질 못했어요. ㅠㅠ ㅎㅎㅎㅎ 오늘 편지 한 통 보냈습니다! 헤헤 시간나면 수신해주세요! :D

저도 매일 들어와서 리리님 글이 올라왔는지 확인한답니다^^ 바쁜일 마무리되고 여유가 생기시면 스팀잇에 꼭 들러주시기 바라요 :D

우잉 토랙슈님 감사해요 헤에에에 (//▽//)
한 달이나 걸렸네요 @_@ 이제 정착을 잘해서 당분간은 자주자주 들어올 수 있답니다 헤헤헤 밀린 글들 다 읽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어요 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