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1. 별이 된 소녀

in #kr7 years ago (edited)

한참 서있었다.
그 소녀 조각 앞에서.

1889년 파리

paris-1290577_1920.jpg

"센강의 다리에 돌이 이것보다 훨씬 작품성 있겠다."

되는 일이 너무 없었다.
뭐 늘 상 그렇지만 요새 들어 더욱 힘겹다.
나름 조각에 목메어 그 시골에서 파리까지 왔는 데 이렇게까지 비굴해져야 하는 걸까.
작품을 내보일 때마다 돌아오는 냉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 자존심을 밟아누른다.

'그래 어디 그 잘난 센강에서 죽어보자.'

술김에. 정말 술김에 그런 거다.
그 늦은 시각 나는 센강의 가장 아름다운 다리에 갔다. 그리고 그 강의 다리에 몸을 바로 세웠다.
늦은 밤과 새벽의 경계는 한 밤 중보다 사람이 없었다. 한 밤 중보다 바람이 세게 불며 온몸을 떨게 만들었다.
다리 위에 서서 그 끝을 모르겠는 강을 바라보고 있을 때, 술에 이끌려 한 발 내딛고자 했을 때였다.

"아저씨도 별 보러 왔어요?"

너무 놀라 앞으로 휘청한 몸이 살고자했는 지 뒤로 자빠졌다.
'분명 금방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없었는 데'
왠 꼬마애가 내가 서있던 다리 부분 옆에 발끝 부터 온 몸을 꼿꼿이 세우고 다리에 매달리듯 서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 어스름한 밤에 기척도 없이 다가온 아이는 오싹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흙투성이 발, 거적에 가까운 옷, 질끈 머리를 묶은 소녀.
그냥 거렁뱅이 여자아이였다.
너무 놀라 술 기운도 날라가고 정신이 돌아오자 내가 금방전에 무슨 짓을 하려한 건지 부끄럽기까지 했다.
괜시리 부끄러워 여자아이한테 큰 소리 냈다. 다리 위에 내 목소리가 울렸다.

"너 지금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는 거야!"
"별보러 왔다니까요."

아이는 그 큰 소리에 고개도 돌려보지 않고 온몸에 힘주어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을 바라본다기에는 너무 시선이 강을 향해 있었다.
이 꼬마가 나를 놀리나.

"별을 보려면 하늘을 봐야지!"
"뭐하러 그렇게 멀리 있는 걸 봐요. 잘보이지도 않고 조그만 걸. 이렇게 가까이에 별이 있는데."

아이는 그러면서 힘들었는 지 그냥 몸에 힘을 풀고 주저 앉아 다리의 난간 틈사이로 강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제서야 까만 강 수면 위를 흐르는 별들이 보였다.
아름답다. 하늘에 뒤쳐지지 않는 아름다움이였다.

"아저씨 별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요."
"뭐?"
"이렇게 말이예요."

아이는 그러더니 노래를 불렀다. 노래 내용은 참으로 애달픈 술집여자의 사랑노래였다. 저 멀리 골목 어느 술집에서 흘러나온 노래 같은데 아이는 노래의 의미를 모르는 지 별의 노래라고 보기 좋게 포장했다.
엉뚱하게도 그 술집노래를 부르는 아이가 참으로 깨끗하게 불러서 그런가.
정말 별의 노래같았다.

어디선가 어떤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여자아이는 질끈 묶었던 머리를 풀러 얼굴을 가리고 뛰었다.
얼핏 본 얼굴에 멍과 상처가 얼룩덜룩하게 붙어있었다.

그게 처음 소녀를 본 날이였다.

그 뒤로도 나는 달라지는 일 없는 삶이였다. 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돌덩이 취급받고 이제는 빵 한조각도 겨우 겨우 먹게되었다. 그렇게 힘에 겹게 하루를 견디다 견디다 센강을 찾아가면 늘 그 소녀를 만났다.
그 소녀는 늘 하늘의 별보다 강의 별을 바라봤다. 소녀는 만나면 늘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하고 노래도 했다.
그렇게 나는 소녀의 이야기도 알아가고 소녀의 노래에 마음을 위로받았다.

알게된소녀는 흔한 길거리의 아이들처럼 가난했다. 그러나 길거리의 아이들과 달리 소녀는 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그렇다고 길거리의 아이들보다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늘 상 온몸의 멍과 상처, 그리고 아버지인듯한 사람의 고함으로 끝나는 소녀의 노래가 그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너도 밥벌이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이게 너의 그 작품 활동만큼 고귀한 활동은 아니여도 밥벌이는 될거야."

팔리지 않는 조각만 하는 조각가.
그래도 조각하고 싶다는 오기로 게속 버티고 있었데.
나름 동생을 걱정한 형이 나에게 일을 가지고 왔다. 조각을 때려치라는 소리가 아니여서 다행이였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이름모를 시체들의 얼굴을 조각하라고 할 줄이야.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이름모를 시체의 얼굴을 조각했다. 그렇게 조각을 하고 받은 돈으로 빵을 사서 길을 걸었다. 왠지 모를 패배감과 자괴감에 넋이 나갔다. 그렇게 빵을 쥐고 걷는 데 왠 구부정한 거름뱅이가 다가왔다.

"빵 좀 주세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녀였다.
그 센강의 다리에서 꼿꼿하게 서서 별을 바라보던 아이가.
깨끗하고 청량하던 목소리의 아이가.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아직 소녀는 나를 보지 못한 듯 했다. 나는 놀라서 처음 본 낮의 소녀에게서 도망쳤다.

한참을 충격 속에 있다가 밤이 되어서 식어버린 빵을 가지고 다리로 갔다. 어김없이 소녀는 별을 보고있었다.
나는 소녀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한참을 서서 이야기만 들었다. 그러다 손에 들린 빵을 소녀에게 건넸다.

"이거 좀 먹을래?"

아이가 갸우뚱 갸우뚱 하더니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싫어요."

나는 당황하였다.

"나는 거지가 아니예요. 이 센느의 다리 위에서는 적어도 아니예요."
"..."
"어? 노래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아이는 또 한참을 노래했다.
나는 내가 감히 그 소녀를 동정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지고 점점 고개 숙이게 되었다.
내 숙인 고개 위로 덮어지는 아이의 목소리에 나는 이상하리만치 위안받았다.

어느 날, 소녀에게 이름을 물은 적이 있었다.
소녀는 난간 위에 앉아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셀리손"이라고 했다.

"셀리손이라니 누가 너를 그렇게 불러"
"아버지가 늘 그렇게 부르니까 아마 그게 내이름일껄요?"

'셀리손이라니.자기 딸보고 더러운 여자아이라고 부르다니.'

나는 그 뒤로 그 소녀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렇게 소녀와 센느강에서 만났던 초봄에서 여름이 될 무렵이였다.
어느 날부터 점점 아이의 상처가 사라져갔다. 나는 다행이라고 남몰래 안심했다.
그렇게 아이의 오래된 상처들마저 희미해질 무렵이였다.

"아저씨. 나 이제 이 난간보다 키가 커요?"
"한참 전에 컸지."
"그게 보여요?"
"그럼 키가 그렇게 큰데."
"아빠도 그걸 알았나봐요."
"뭐?"
"아빠가 이 다리의 난간보다 키가 크면 멀리멀리 팔아버린다고 했었는 데 아빠도 그걸 알았나봐요."

소녀는 그러고는 한참을 훌쩍였다. 소녀의 상처가 줄어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 알았다. 소녀는 팔려갈 준비 중이였다.
' 아아 저 불쌍한 소녀를 어쩌면 좋지.'

"멀리 멀리 가기 전에 별이 될거예요."

소녀가 울던 목소리로 얘기했다.

"꼭 별이 될 거예요."

결의에 찬 목소리로 얘기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저 그 소녀가 말한대로 차라리 별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더운 날, 밤이 되어서도 더위가 가시지 않던 날.
소녀가 깨끗하게 머리를 빗고 처음보는 원피스를 입고 다리에 서 있었다.

" 와. 못 알아볼 뻔 했어."
" 그렇게 달라졌어요?"
" 정말 요정같이 이뻐."

소녀는 그 말이 듣기 좋았는 지 해맑게 웃었다.

"근데 어쩐 일로 그런 옷을 입은거야?"
"오늘은 특별한 날이거든요."
"무슨 날인데?"
"비밀이예요."
"무슨 날인지 더 궁금한데?"
"음,, 다른 건 못 알려드리지만 오늘은 저에게 크리스마스같은 날이에요."
"이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네. 오늘 제 소원이 이루어질 거 거든요."
"음 그렇담 축하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소녀의 즐거운 모습에 진심을 담아 축하했다.
또 한참을 얘기를 나누고 노래를 들었다. 더위에 시달리고 지쳐서 그런지 자꾸 눈이 감겼다.
노래가 끝날 무렵에는 주체하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아저씨 집에가서 자요."

소녀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너무 잠에 취해 아이에게 변변한 인사도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그 다음날.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어렵게 그 소녀가 사라졌고 아비는 빚쟁이를 피해 도망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 아이가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부디 도망간 그 곳에서 행복하길 바랬다.

그리고 현재 이 탁자 위에 누워있는 시체가,
나는 그 소녀가 아니 라고 믿고 싶다.

내가 그 소녀를 봤던 마지막 그 모습 그대로 소녀는 강에서 떠올랐다.
그렇게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소녀를 이렇게 만날 줄이야.
나는 차마 그 소녀의 얼굴을 덮고 있는 하얀천에 손도 대지 못했다.
작업을 시작하라고 장의사는 몇 번을 말하고 갔지만 나는 차마 손대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한참을 망설이다 천을 치웠다.

그리고 내가 마주한 것은 이때껏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소녀는 너무 아름답고 편안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며 깨달았다.

아아 소녀는 도망쳤다.
강 속의 그 별들 처럼 별이 되었다.
별이 되어 이 더러운 세상에서 도망쳤다.


예전 유럽에는 정체불명의 시체들 얼굴을 조각한 데스마스크가 있었다고 해요.
그 중 유명한 마네킹으로 제작된 소녀의 데스마스크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이야기입니다.
오늘 @artnh 님의 센강 그림을 보고 제가 생각한 배경이다 싶어서 떠올린 김에 써봤어요.
저위의 사진보다 어두운 밤을 생각해주세요ㅠ @artnh 님의 센강 그림이 정말 딱 제가 생각한 배경인데ㅠ 정말 잘그려진 그림이니 보시는 거 너무 추천해요!

Sort:  

빠리에서 실제 있었던 일인 줄 알았는데 직접 쓰신 이야기라니 놀랐어요. 슬픈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그런가봅니다.ㅎㅎ 감사합니다:)

글 너무너무 좋아요!!! 팔로우 하고갑니당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용^^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좋은글로 보답할게요:)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좋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아~~ 나도 글을 써야 할 텐데...

감사합니다:) 서로 좋은 자극이되어요ㅎㅎ

앗 아이디가 잘못입력 되어있네요! @artnh 입니다!
글 너무 좋아요... 어쩜.. 구독하겠습니다.

앗!!그래서 수정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