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포인트 있으세요?”
카운터 직원의 말에 허둥지둥 스마트폰을 열어 포인트 지갑 앱을 켭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나 슬쩍 가늠해본 다음, 포인트를 찾아내 바코드 화면을 내밉니다. 얼마나 적립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받을 수 있는 건 받고 보자는 마인드로 살고 있거든요.
그러고 보면 어느새 포인트라는 건 일상생활에서 빼놓기 어려운 요소가 됐습니다. 통신사 멤버십 포인트, OK캐쉬백, CJ ONE, L포인트, 해피포인트, GS포인트… 제가 쓰고 있는 포인트와 이런저런 멤버십만 해도 열 종류는 족히 되는 듯하네요.
▲ 카페 스탬프 쿠폰도 따지고 보면 포인트의 한 종류죠.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포인트 카드는 앱(App)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것들을 한데 모아놓을 수 있는 이른바 ‘포인트 지갑 앱’도 꽤 여러 종류가 있죠. 덕분에 예전처럼 포인트 카드를 주렁주렁 들고 다니는 귀찮음은 없어졌습니다. 잔뜩 쌓아놓은 포인트 카드를 어디다 뒀는지 헤매는 불상사도 없게 됐고요.
그래도 불편한 점이 있긴 합니다. 포인트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또 저들끼리의 제휴 관계는 얼마나 복잡한지… 포인트별 사용처를 헷갈리는 바람에 엉뚱한 카드를 내밀었다가 직원을 당황하게 하는 일도 간간이 있습니다.
앱 찾고 실행하는 것도 은근 성가신 일이라, 갈길이 바쁘거나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때는 “아뇨, 포인트 없어요”라고 하고 서둘러 나오기도 하지만… 소심하게도 나중에 찾아가 영수증을 내밀며 적립해달라고 하기도 하죠. 알뜰살뜰 챙겨쓰지 못하면 어쩐지 손해보는 기분이 들어서랄까요. 포인트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아마 이런 심리를 노린 게 아닐까 합니다. 물론 안다고 해서 안 당하는 건 아닙니다만…
▲ 인생이 다 그런 거죠 뭐…
포인트 지갑 속 주루룩 늘어서 있는 포인트 카드를 보고 있자니, 문득 범람하는 블록체인 토큰들이 오버랩 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공통점이 좀 있네요. 우선, ‘지갑이라 불리는 공간에 저장되는 실물이 아닌 재화’라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토큰의 경우 ‘재화’로 인정할 만한 사례가 드물긴 하지만요.
또한, 성격도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포인트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해당 브랜드나 서비스 등을 꾸준히 이용한 것에 대한 일종의 인센티브라고 봐야 할 겁니다. 기여도에 비례한 혜택을 주고, (사실 기여한 만큼 주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도 브랜드나 서비스를 쭈욱- 이용해달라는 암묵적 요청인 셈이죠.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수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앞으로 만들어 나아갈 서비스, 혹은 생태계에 꾸준히 기여해줄 사용자를 ‘모시기’ 위한 수단으로 토큰을 발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죠. 사용자는 곧 잠재적 소비자이기도 하니까요.
▲ 사람 많은 플랫폼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더 잘나가게 마련입니다.
빈익빈 부익부… 쳇…
반대로, 현행 포인트 제도와 블록체인 토큰을 확연히 구분지어주는 특성도 있습니다. 소유자 본인과 시스템(가맹점) 사이에서만 오갈 수 있는 포인트와 달리, 토큰은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거죠. ‘유동성이 있다’ 정도로 표현하면 될 듯합니다.
솔직히, 현재 상황만을 기준으로 보자면 포인트가 토큰보다 더 유용해보일 수 있습니다. 에어드랍이나 플랫폼 활동 보상으로 주어지는 대다수 블록체인 토큰들은 아직 실질적인 활용처가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거래소 상장이라도 되면 모를까…
하지만 ‘거래가 가능하다’라는 속성이 달려있기 때문에, 미래에 더 큰 가치를 갖게 될 거라는 기대치가 일종의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토큰이 갖는 점수는 포인트에 비해 확 높아지겠죠.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프로젝트가 잘 돼야 하겠지만요.
▲ 보통 사람들 시각에서 암호화폐와 토큰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출처: 아하(AHA)
현재 토큰들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몇 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특정 업종 안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만들려는 움직임입니다. 그 다음으로, 다양한 토큰과 토큰을 연결하는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노리는 토큰도 보이고요. 이밖에 두 가지와 무관하게 제 3의 길을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죠. 이 과정에서 비슷한 목표를 추구하는 프로젝트가 둘 이상 겹치는 일이 꽤 있습니다. 지금처럼 복잡한 판이 만들어진 이유죠.
그렇기 때문에, 이 그림이 정리되는 건 시간 문제일 거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지만… 앞일은 모르는 거니 속단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때까지 개발자 분들은 힘내서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어주시면 될 테고… 홍보나 마케팅을 맡은 분들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포인트’라는 개념을 활용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렇다면 ‘디지털 자산’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해지는 데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