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라오지'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대만 여행책이었다. '대만에 가면 반드시 사 볼 상품'으로 뽑혀 있던 것. 수정과와 설탕물의 중간쯤 되는 맛은 개인적으로 기호에 딱 맞는다.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맛이 건강에 좋을리가 없다. 한 중국어 선생님은 '천연 재료만 들어 있고 설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다가 성분표를 다시 보고는 '아, 감미료 들어 있구나.'라고 탄식했다.
그런데 정작 북경에 와서는 '왕라오지(왕로길 王老吉)'보다 거의 똑같은 포장의 '지아두어바오(가다보 加多宝)'가 더 자주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떤 가게는 한 쪽만, 어떤 가게는 둘 다 진열하고 있다. (정확한 점유율 차이는 미확인) 처음에는 '아, 또 짝퉁이 브랜드 하나를 죽이고 있구나. 기왕이면 '진품'인 왕라오지를 마셔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두 브랜드 사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지금은 '지아두어바오'의 손을 더 들어주고 싶다.
왕라오지 브랜드의 공식 제조사는 광동성 소재의 광약집단(广药集团/'집단'은 우리로 치면 OO그룹), 최근에 산 왕라오지 캔을 보면 광약집단이라는 이름과 함께 '광동왕로길대건강산업유한공사'도 적혀 있는데 이것은 '대건강'이라는 단어가 뜨면서 붙인 자회사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지아두어바오'를 제조하는 곳은 홍콩계 자본의 '가다보집단(加多宝集团)'
두 기업의 인연/악연은 광약집단이 재정적으로 위기를 겪으면서 상표의 장기 '사용권'을 가다보집단에 팔면서 시작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사업 못하는 국유기업과 장사 잘 하는 홍콩 자본기업의 만남. 결국 가다보의 힘에 의해 왕라오지는 대성공을 거둔다. 2010년 이전까지의 '왕라오지'를 이끈 것은 사실 가다보집단이었던 것. 그러나 계약 기간의 끝이 다가오면서 두 회사는 긴 법정 싸움의 길로 들어선다. 만약 광약이 스스로 혁신을 해서 변화했다면 판권을 하나하나 되사고 있는 '마블' 마냥 놀라운 기업이겠지만, 이들의 법정 싸움 내용과 결과는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다.
광약과 가다보는 2010년에 만료되는 15년 간의 '왕라오지' 상표 사용권 계약을 체결한다. 여기서 가다보는 두 가지 면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하는데, 1. 상표 사용권치고는 짧은 기간 (15년이 광약의 제시안인지, 가다보가 적극적으로 수용한 안인지는 불명) 2. 상표의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이라면, 상표의 선전에 대한 주된 책임은 광약이 져야 되나, 사실상 가다보가 주된 선전비용을 부담한 것이다. (상표의 가치가 크다고 느꼈으면 완전 소유권을 얻거나, 기간을 길게 잡았어야 했고, 가치가 크지 않다면 선전 책임까지 자신이 지지는 않았어야 했겠지만, 이것이 전략 상의 판단 착오인지,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음)
단순히 15년 뒤에 계약을 연장하면 되니 당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양사는 '왕라오지 상표허가보충협의', '왕라오지상표사용허가계약에 관한 보충협의'에 서명하면서 2020년까지 연장에 합의한다. 그러나, 계약에 앞서 광약집단의 대표가 가다보집단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점, 그리고 중국 특유의 '계약법(合同法)'이 발목을 잡는다. "恶意串通,顺海国家、集体......合同是无效的. (악의적인 의도로 국가나 단체에 해를 끼치는 계약은 무효다.) 광약은 국유기업이다.
브랜드 잘 키워놨더니 손을 떼야 하는 가다보의 상황은 어쩌면 가게 잘 키워 놓으니 나가라는 통보를 들은 임대 세입자같기도 하고, 외국인의 입장에서 '국가(중국)'에 손해주면 서명된 계약도 무효라는 규정이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하지만 역으로 국가재산을 팔아먹어도, 기밀을 팔아먹어도 살기 좋은 나라는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인가.
왕라오지 상표권 다툼은 2012년 7월 북경시 중등법원에서 광약이 승리, 가다보는 상표 사용을 금지당하고, 결국 '가다보 량차'라는 유사제품을 생산하여 반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 상표의 표절을 둘러싼 추가적인 법정싸움으로 이어진다.
*최근 가다보가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있다.
*원문: https://www.facebook.com/isu.park.9
*왕라오지의 역사와 브랜드 가치 관련 기사
https://blog.naver.com/china_lab/220822765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