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자들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지역 화폐를 발행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서울 코인, 부산 코인, 관악 코인 등등 지역 화폐를 발행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2030잡아라…지역 화폐 발행으로 표심 얻는 후보들
대표 사례로 꼽히는 지역화폐 노원(NW)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공약들은 그저 '표심 자극'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지역화폐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단지 지역 화폐가 가지는 문제점과 블록체인 해결하려는 문제점이 완전히 다른 것일 뿐이다.
지역 화폐가 가진 문제
지역 화폐의 목표는 기사에 나온 것처럼 “소비가 지역 내에서 돌도록 유인”하려는 것이다. 새로운 화폐라는 경제 장벽을 둘러쳐서 생산과 소비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아이디어다.
지역 화폐 아이디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예전부터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전까지의 지역 화폐들이 크게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불편함을 감수해가면서 지역 화폐를 굳이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수요를 모두 지역 경제 내에서 해결할 수 없다. 즉, 지역 화폐를 쓰더라도 지역 화폐가 안 쓰이는 곳을 대비해 범용화폐 (원화 같은 것)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화폐를 2개 쓰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지역 화폐의 정의상으로 봤을 때 지역 화폐는 항상 법정화폐보다 사용처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원화처럼 법적 강제력이 있거나, 지역 화폐만 써야 하는 상품/서비스가 매우 많지 않은 이상 사람들은 불편하게 지역 화폐를 쓸 이유가 없다. 원화가 훨씬 더 범용적으로 쓰이고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역화폐는 쓰던 은행이나 카드에서 결제/송금도 안 된다. 얻는 건 적고, 잃는 건 크다.
그래서 그나마 지역 화폐가 성공하는 곳은 굉장히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이거나, 구성원들이 철학이나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 곳이다. 지역화폐가 사회적 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거나, 비경제적 동기로 지역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이나 부산은 이런 케이스가 되기 어렵다.
이런 문제 때문에 지역 화폐는 의미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서울에서는 S 코인만으로 결제해야 돼!'라는 법을 만든다면 모르겠지만, 하지만 지방정부가 지역 화폐를 법적 강제력이 있는 독점 결제수단으로 만들 리는 만무해 보인다.
지역 화폐는 아주 일부분에서만 쓰이는 복지 포인트나, 상품권과 같은 위치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경우 후보자들이 야심 차게 얘기하는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미미하다.
블록체인이 해결하려는 문제
그런데 안타깝게도 블록체인이 해결하는 문제는 이 문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암호화폐는 중앙 권력이 통제할 수 없고,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화폐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려면 중앙 권력이 없이도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거래 기록이 필요했다. 그게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특정 주체가 관리하지 않아도 모두가 신뢰하는 하나의 장부를 만드는 기술이다. 그 대신 블록체인은 '비효율'을 대가로 지불한다.
(블록체인의 원리는 이전 글 '외계어 없이 이해하는 블록체인의 원리'을 참고)
그런데 여전히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도 지역화폐가 가진 문제는 아직 똑같이 가지고 있다.
암호화폐로 뭘 살 수 있냐는 거다. 암호화폐가 법적 강제력이 있을리 없고, 법정화폐가 훨씬 더 널리 쓰이는 상황에서 굳이 암호화폐로 커피 사고 장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전혀 실생활에서 쓰이지 않고 있는 이유다.
그나마 암호화폐는 검열저항성과 개방성등 탈중앙화가 가져오는 독특한 장점들이 있다. 때문에 아직은 화폐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는 대중화된 화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블록체인을 써야 하나요?
어차피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화폐라면 당연히 탈중앙화 방식의 블록체인을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의미는 더욱 더 사라진다.
블록체인을 사용했을 때 장점도 없는데 왜 굳이 일반적인 중앙 서버 방식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인 블록체인을 도입해야한단 말인가?
기사에 어떤 분은 “기존 상품권보다 추적이 쉬워진다”라고 하는 데, 그건 블록체인의 장점이 아니라 ‘디지털의 장점’이다. 그냥 디지털 화폐로 만들어서 본인들 DB에 기록하시면 수천 배는 더 효율적으로 추적이 가능하다.
물론 탈중앙화 방식이 아닌 블록체인(프라이빗 블록체인)도 유용할 때가 있다. 그건 기관 간 신뢰가 중요한 분야에서 그렇다.
예를 들면 수많은 업체들이 참여하는 물류 관리(SCM)이나 국제 은행간 거래 등등이다. 서로 간에 신뢰가 없는 기관들이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아야할 때,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구축하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역화폐는 이런 케이스도 아니다. 무언가 더 발전된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써 기사에 나온 내용만 보면 블록체인을 도입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암호화폐 열풍을 보고
'어 우리도 저거 비슷하게 만들어서 봉사 활동하면 코인 주고 그러면 사람들이 봉사활동 많이 하고 그걸로 지역에서 밥도 사 먹겠네'
이런 발상으로 시작된 아이디어라면, 죄송하지만 블록체인이 뭔지 전혀 모르는 거다.
결론적으로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공약은 암호화폐 키워드 끌어다가 사람들의 표심을 자극하려는 목표 외에는 별로 달성할 게 없어보인다. 물론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그게 제일 중요하겠지만.
저도 지역화폐에 왜 굳이.. 이 생각을 하다가 공무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지역화폐 발행 할 때 가장 취약점은 바로 "깡"이라고 생각이 되더군요. 블록체인으로 하면 "깡"은 막을 수 있으니까.. 여기까지 생각만 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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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정말 좋은 글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고 리스팀해갑니다. :)
저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정말 블럭체인이 필요한가?? 실상 블럭체인 기술에 합승하려는 불필요한 코인이 너무 많아요. 지역 화폐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왜 블럭체인을....? 어르신들 불편하게... 단순 표심을 위한 액션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이 블럭 체인을 이해하는지 모르겠네요.
우연히 들려서 팔로우 하고갑니다. ^^
아 진짜 이건 저도 극공감이에요
굳이 지역화폐를 왜 만드는건지 ㅋㅋㅋㅋㅋ
농산물상품권같은 컨텐츠는 특정 상권의 활성화 목적이라도 있지만 저건 진짜 ㅋㅋㅋ교회 달란트 느낌이라는 생각밖에...
표심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만 제2 화폐로 청년 수당이라든지 하는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쓸 수 있는 복지 분야쪽에서 활용된다면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극 공감 이네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비슷한 접근으로 서울시에서 청년수당을 블록체인으로 하려는 사업을 기획하였다가 노동부의 시범사업으로 바뀌어 전국적으로 하려는 것으로 압니다. 정부에도 나름 블록체인의 속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요^^
도대체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키워드만 갖다쓰는 사람들하고... 또 거기에 속아넘어가서 표 주는 사람들도.....공부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