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게 동네를 좋아했다.
내가 사는 곳이 동네이고 어느 곳에나 지역을 나누는 작은 단위로 동네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런 동네가 아니라 '동네스러움'이었다. 골목 안에는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있고, 영감을 주는 창의성이 발견되기도 하며, 그 지역만의 색이 담겨있는 모습들. 나는 동네스러움이란 것을 그렇게 정의했다. 어딘가 모르게 편안하고 설레는 감정을 주는 것.
화려한 건물이 늘어선 대로변에서는 그런 편안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크고 반듯할수록 어딘가 움츠러들고 멀어지고 싶은 심리가 언젠가부터 자리 잡았을까. 그 모든 것들이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더 비싼 것들이 더 이상 매력적이고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강남보단 차분한 연희동을, 어두운 을지로를, 좁은 문래동을, 오래된 군산을 더 좋아했나 보다.
낡은 주택가를 떠나 모두가 편의시설 완벽하게 갖추고 교통이 편리한 잘 닦인 아파트에 살고 있고 살고 싶어 하지만, 한껏 꾸미고 좁디좁은 골목길을 찾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궁금해서 그리고 무엇을 찾으려고 골목에 발을 들이는 걸까.
골목 탐험가
오래된 건물의 캄캄한 계단과 허물어진 벽 사이를 비집고 숨어있는 그 어딘가를 탐험하듯 찾아다닌다. 아무도 모를수록 나의 경험이 먼저일수록 기대감을 충족시켜줄수록 그 탐험은 더 짜릿해진다. 탐험에서 발견하게 되는 건 그 시간을 향유하는 나의 만족감과 여러 장의 인증들이다. 이쯤 되면 동네는 더 이상 일상이 아닌 여행지가 된 것 같지만, 이제는 여행이 일상이 되었다.
유행하는 골목은 매번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창작자들이 새로이 만든 길이 북적이게 되면,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게 되고 그렇게 땅값이 오르면 창작자들은 떠난다. 골목은 허물어지고 그렇게 골목 탐험가들도 다음 골목을 찾아 떠난다. 오래도록 오가며 머물 수 있는 동네나 골목이 존재하기 어려운 이유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탐험가들의 탓인 것만은 아니다. 좋아하던 동네도 그 특유의 동네스러움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발길을 덜하게 된다.
신기루
동네의 길은 불규칙적이라서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생산자들의 오래된 일터가 창작자들의 창의적인 공간과 공존하고, 그 독특한 협업이 동네의 풍경에 묻어난다. 그리고 시장과 책방은 동네스러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점이다. 어떤 시선에서 보면 그 동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되고, 그곳에 새롭게 피어나는 모습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걷다가 우연히 그런 동네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다. 어느 순간 이것이 다 곧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시장은 애써 찾아가야 하는 곳이 되었고, 오래된 주택은 매일 사라질 순서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매일 다니던 길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 옆 주택가는 그저 남겨진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처럼. 어린아이들이 나중에 기억하는 동네는 내가 아는 그 동네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필름 카메라에 오래된 골목의 벽이나 간판, 우편함, 쓰레기통 같은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을 담아내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없어질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언젠가 사라질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교토의 거리에는 화분이 있었다.
나는 그곳을 왜 좋아했을까. 유난히 정갈한 길과 오래된 가옥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독특한 카페와 샵들을 찾아다니는 재미 때문이었을까. 전부 다 맞지만, 교토의 거리에는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고 화분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 화분들은 수더분하면서도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은 듯했다.
할머니들에게 화분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수단이자 선물이 된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거리의 화분은 동네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일등공신이자,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
집에서 15분 떨어진 스타벅스를 가는 길에 마주치는 화분을 세어본 적이 있다. 건너편 아파트엔 화분이 전무했고, 내가 걸어가는 편 상점들 중 오래된 약국에서 나무 벤치와 화분들을 내어놓은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는 지저분하다고 느낄지도 모르는 그 화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같이 골목 탐험 해요 ㅋㅋ 탐험가님
ㅋㅋ좋습니닷 :)
어릴적 그 넓고 길었던 골목길이 참 좋았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진 것 같아요. 커서 가보니 상전벽해이기도 하거니와, 남아있는 길은 참 좁고 짧았더라고요.
갈수록 찾아갈 골목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더 아쉽고요.ㅎㅎ
골목길~ 🎵골목길~ 🎶
(진지한 글에 죄송합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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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노래군요. ㅎ
동네를 찬찬히 둘러보면 발 닿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재미나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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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좋아해요. ㅎㅎ
저도 골목이 좋아요. 특히 옛 주택들이 있는 구석 구석의 동네요^^
날씨가 풀리면서 더 골목을 걸어다니게 되네요.ㅎㅎ
젠트리피케이션. 항상 안타까웠어요. 정작 문화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 창작자나 원주민이 밀려나야하는지 부당하기도 하고 결국엔 골목의 특색을 모두 없애 흔한 자본주의 상권으로 귀결되고야 피할 수 없는 흐름이 야속하기도 하고
그냥 그대로 놔둘 수 없을까.
동네도 생명을 가진 존재라 변화하지 않고는 도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전 아직 프랜차이즈와 자본으로 채워지는 그 이상한 성장말고 어떤 더 좋은 선택지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딘가에서 새로운 동네를 고민하고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그보다 더 이익을 우선하는 건물주들과 기관이 있기에 쉽지 않죠. 뜨는 골목이 프랜차이즈로 가득찬 후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다는 걸 조금만 길게 내다봐도 다 보이는 건데,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사람들은 모르겠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