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에 관하여 (3)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JOHN입니다.
오늘은 현금 없는 사회 시리즈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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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블록체인과 디지털 통화의 출현

  • 현금 없는 사회에 관하여(2)에서 실물화폐의 폐지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편익과 비용을 논의한 결과, 실물화폐를 없앰으로써 생겨나는 직간접적 비용보다는 잠재적인 편익이 더 클 수 있음을 논증했다. 그렇다면 어떠한 기술적 환경 하에서 실물화폐를 폐지할 수 있을 것인지, 또 실물화폐가 폐지된 사회에서는 어떤 화폐시스템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을 것인지에 관한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물론 향후 화폐시스템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것이라 예상되는 기술은 분산원장 기술 또는 블록체인 기술이다. 먼저 블록체인의 개념과 기술 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후, 디지털 통화의 발행 체계는 어떻게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언급하고서, 마지막으로 디지털 통화의 발행이 사회경제에 미칠 수 있는 일련의 영향들에 대해 논의하도록 한다.

(1) 블록체인 기술의 개념과 의의

  • 암호화폐의 내재가치를 생각하다에서 언급했듯이 인터넷은 이중지불(Double Spending) 문제로 인해 가치정보의 공유가 원천적으로 어렵고, 이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제 3자기관(TTP)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 전통적인 금융 및 결제시스템은 먼저 원장(Ledger)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제 3의 신뢰 가능한 기관을 설립한 후, 해당 기관의 신뢰를 바탕으로 금융거래를 촉진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한 중앙 집중적인 체계였다. 이 전통적인 금융시스템 하에서 발전한 대표적인 기관이 바로 은행이었고, 대출/송금/환전/결제 등 다양한 금융거래들이 주로 은행의 매개로 이뤄졌다. 정부와 은행 등이 공인된 거래장부(원장)를 보증했고, 그 원장에 대한 신뢰가 금융거래를 활발하게 만든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을 세우고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높은 비용은 금융 산업이 발전하는 데는 큰 제약으로 작용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기관들이 신뢰비용을 이용자들에게 전가함으로써 지대추구를 꾀하는 구조로 변색될 위험성도 있었다.
  • 그런데 이러한 중앙 집중식 원장체계에서 이탈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비트코인 등에 적용된 블록체인, 즉 분산원장 체계다. 분산원장은 사전에 알지 못하는 개인들이 서로 거래(peer-to-peer transaction)를 할 때 은행 등의 중개기관의 매개가 없더라도 그 상호 신뢰를 보증할 수 있게 하는 정보공유 저장기술이다. 잠시간 생각을 해보자. 은행 없이 두 개인이 직접 거래를 하려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효율적이고도 안정적으로 달성될 수 있을까? 안정된 사적거래가 성사되려면 당사자들이 서로를 신뢰해야만 하며, 그에 앞서 쌍방이 보유한 정보에 있어 비대칭성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조건들은 제 3의 공인기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모든 참가자가 동일한 수준의 정보에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달성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어떤 순간에서든 동일한 장부를 갖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정보의 가치가 동일하기 때문에 사실상 장부를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상호 간의 거래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분산원장 체계는 이러한 무결성을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단위시간(비트코인의 경우 10분)마다 ‘블록’이라는 거래기록 장부를 모든 구성원들에게 발송한다. 이때 구성원 다수가 전송된 블록의 유효성을 승인하면 모든 구성원의 분산원장인 기존 블록더미에 그 신규 블록이 연결된다. 블록들이 체인형태로 연결된다고 하여 블록체인이라고 하며,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구성원들은 동일한 분산원장을 소유하게 되고 똑같은 거래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 이처럼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시스템은 특유의 초연결성 및 분산성으로 인해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이 시스템 상에서 조작이 성공하려면 시스템에 연결된 모든 관계자의 컴퓨터 및 단말기를 동시에 해킹해야 하는데, 이는 사용자가 증가함에 따라서 조작행위를 시도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므로 불가능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통화는 2009년에 출현한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활발히 발명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원장 체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비트코인의 예를 갖고 접근해보자. 비트코인의 작동방식을 단계별로 간략히 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1) 전자서명을 사용하여 비트코인을 보낸다(개인 A가 개인 B에 비트코인을 송금한다).
2) 거래 내역을 Peer-To-Peer 네트워크로 유지하는 블록체인에 기록한다.
3) 블록체인의 내역 조작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작업증명 계산을 수행한다.
  • 이러한 비트코인 운영원리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식은 사실상 기존의 기술을 응용한 것에 불과하며, 핵심적인 혁신성은 세 번째인 작업증명(PoW)을 통해 블록체인 조작을 방지하는 기술이다. 사실 작업증명 방식의 원리는 비록 높은 수준은 아니나, 그 본질은 암호이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보자. 작업증명 방식을 고안한 것을 두고 흔히 분산 컴퓨팅에 있어 ‘비잔틴 장군의 딜레마’를 풀었다고도 말한다.

100명의 병력을 가진 비잔틴 장군 5명이 하나의 성을 정복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성을 공격해야 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으며, 각자의 진영은 서로 떨어져 있어 전령을 보내 통신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격시간을 정해야 하는데 문제는 적의 성에 300명의 병사가 있다는 점. 결국 최소 300명이상의 아군이 동시에 움직여야 승리할 수 있다. 비잔틴 장군들은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모든 장군은 10분의 시간을 들여 문제 하나를 풀고, 문제를 풀면 공격시간을 알 수 있다. 다음 공격시간을 공지한 후 다른 장군에게 넘긴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문제를 푼 흔적’은 반드시 다른 장군에게 전해져야 한다. 즉 1번 장군이 오후 11시라는 공격시간과 함께 10분간 문제를 풀어 두 정보를 2번 장군에게 보낸다. 그러면 2번 장군도 문제를 풀고 1번 장군으로부터 받은 공격시간과 함께 자신이 푼 문제 내역과 1번 장군의 문제 내역을 3번 장군에게 보낸다.

그런데 3번 장군이 배신자라면 어떻게 할까? 3번 장군은 오후 9시라는 공격시간을 적고 1, 2번 장군의 문제 내역과 자신의 문제 내역을 4번 장군에게 보내야 한다. 체인이 갈라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되면 4번과 5번 장군은 오후 11시라는 1, 2번 장군의 시간과 오후 9시라는 장군의 3번 장군 중 누가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비트코인으로 보면 블록에 담긴 거래 내용을 암호화한 상태에서 그 해시 값을 다음 블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계속 반복(Proof-of-Work, PoW)하는 식이다. 이렇게 특정 가지를 도태시켜 거래를 파괴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진화론을 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 최홍준, 비트코인에서 튄 의외의 불꽃, Economic Review, 2017

  • 위 ‘비잔틴 장군 문제’의 예는 작업증명 방식을 사용하는 한 사실상 블록체인 체계를 조작할 수 없음을 묘사하고 있다. 현실에서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이용자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위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블록체인은 모두가 정직한 협력자가 되는 것이 더 이익이 큰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 한편 위의 예에서 비잔틴 장군이 ‘시간 및 10분 동안 푼 문제’를 전송한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블록체인에 ‘블록’을 기록하는 것을 뜻한다. 만약 올바르게 문제를 풀고 증명(work and prove)함으로써, 거래의 기록인 블록을 생성시키면 그 작업 보상으로 비트코인이 지급된다. 이 원리를 달리 표현하면 화폐(비트코인)의 발행이 화폐 시스템(블록체인)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행위에 대한 급부로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트코인이 중앙 시스템 없이도 유지될 수 있었고, 또 혁신적이라 평가받는 이유일 것이다.
  • 블록체인 시스템을 살펴보면 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과 ‘사회계약론’과의 유사성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Adam Smith는 개인들이 도덕의 기초인 동감(同感)에 기초를 두고서 자신의 사적 욕망인 이기심을 온전히 발휘한다면 그 누구의 의도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공동선이 조화롭게 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독과점의 폐단, 정보의 비대칭성 등 여러 제약이 있었기에 Adam Smith의 손은 자주 마비된 채 조화로운 결과를 만들지 못하곤 했다. 다른 한편 자유의지를 가진 시민들은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를 구성했고, 그 국가는 주권자인 시민을 대리해서 행동해야만 했다. 또 그 과정에서 생겨난 각 사회제도들은 개인들의 자유를 지키고, 공동선을 이루려는 일반의지를 투영해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잦은 부패와 협잡이 실재했고, 국가는 특정 경제계급에 포획되어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한편 국민의 신임에 반하는 행위도 보였다. Jean Jacques Rousseau는 공동선을 달성하고자 하는 보편의지를 온전히 실현하려면 궁극적으로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회경제 기반에 관한 두 근원적인 문제는 블록체인 시스템이 발달함에 따라 획기적으로 변하거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의 영역에서는 각 산업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어 거래의 투명성이 극적으로 향상되고, 효율성이 증진되어 경제 활력이 제고될 수 있다. 정치사회의 영역에서는 중앙 집중화된 제도와 선거로 위임된 권력 중 상당한 부분을 다시 시민들에게 돌려줌으로써, 민주주의의 정신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리고 각 산업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예를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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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앙은행의 디지털 통화 발행체계

  • 지금까지 화폐를 폐지할 기술적/경제적 필요성을 이해했고, 현행 화폐 시스템을 대체할 기술인 블록체인의 개념도 논의했다. 그렇다면 현금이 소멸되고, 블록체인 기반으로 화폐 시스템이 변화한다고 하는 예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재 퍼블릭 블록체인 상에서 발행되는 암호화폐, 대표적으로 비트코인이 현행의 법정불환화폐(Fiat Money)를 대체한다는 것일까?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본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화폐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와 대등하고, 권력자 또는 국가가 화폐를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는 한 순간도 포기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역사는 미래에도 타당할 명제라 생각한다. 다만 현재의 화폐시스템이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될 것이고, 중앙은행은 실물의 형태가 없는 디지털 화폐를 발권하게 되지 않을까. 여전히 독점적으로.
  • 현재 비트코인을 비롯한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긴 하나, 설계상 근본적인 맹점이 있어 기존 통화를 대체할 정도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설계상 근본적인 맹점'은 철저하게 국가와 중앙은행의 관점에서다. 암호화폐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무엇인지 보면, 첫째 화폐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 암호화폐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못함에 따라 유동성이 충분히 생겨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가치변동이 매우 심해 거래목적보다는 재산증식을 위한 투기적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둘째, 현재의 암호화폐는 총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중앙은행이 재량적으로 해당 통화의 공급을 조절할 수 없게 되며 이로 인해 유사시에 물가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경기변동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 한 통화정책을 비롯한 거시경제정책은 상시적으로 그 필요성이 요구되지만, 암호화폐는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경기대응 능력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암호화폐들이 미래의 보편적인 통화로 굳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암호화폐가 보편적인 통화가 되는 것을 막을 소지가 크다. 따라서 기술의 근간인 분산원장 체계를 중앙은행이 차용함으로써, 현금 대신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는 방식이 자리 잡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앞서 언급한 블록체인 시스템의 이점을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중앙은행의 정책적 재량을 유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는 체계는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논의해보자. 현재의 화폐발행 방식은 중앙은행과 예금은행 간 네트워크에 의해 결정되는 일명 내부통화(inside money) 방식이다.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발행하면 동시에 예금은행의 지급준비금으로 계상되고, 증가한 예금은행의 지급준비금은 부분지급준비제도 하에서 대출-예금의 과정을 거치면서 확대 재생산된다. 물론 궁극적인 화폐발행량은 민간의 화폐수요 등의 내생적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화폐가 발행되는 체계에서 중핵은 중앙은행과 예금은행 간 네트워크다. 이러한 현행 시스템에서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는 체계로 변화하자면 발행방식에는 본질적인 형태상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는 현재와 유사한 대(對)은행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최초 발행된 화폐에의 접근권이 은행뿐 아니라 개인, 기업 등에게까지 확대되는 대(對)일반 방식이다. 두 경우 모두 현재의 금융시스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지만,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근본적인 변혁에 가까울 것이다.
  • 대(對)은행 발행방식에서는 현행 체계와 유사하다. 예금은행은 중앙은행 예금계좌를 보유하고 있고, 중앙은행이 최초에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면 이것이 은행 네트워크를 통해 예금은행에 전해진다. 그 이후 화폐유통은 예금과 대출의 과정을 통해 예금은행과 민간 사이에서 이뤄지게 된다. 이러한 체계는 외관상 현재의 화폐유통 체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디지털 통화가 도입되면 효율성 측면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일어난다. 우선 통화가 실물이 아닌 전자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모든 화폐의 정보가 민간과 예금은행의 네트워크를 통해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이런 바탕 위에서는 화폐가 시스템 바깥으로 구축되는 일이 일어날 수 없고, 모든 자금은 개인의 계좌에 머물거나 혹은 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결과적으로 화폐 시스템이 이전보다 더 투명해짐에 따라 은행의 신용공급 효율성이 한층 더 개선될 수 있다.
  • 이와 달리 대(對)일반 발행방식은 중앙은행이 모든 기관과 기업, 개인에게 디지털 통화를 직접적으로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중앙은행이 일반에 직접적으로 화폐를 전송한다는 생소한 개념은 분산원장 기술 덕분에 저렴하고도 안정성이 높게 실현될 수 있다. 더불어 이런 환경 하에서는 예금은행의 중요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은행을 포함한 민간이 중앙은행 예금계좌를 개설하면, 분산원장 상에 민간의 거래정보가 모두 기록된다. 이 거래 데이터를 빅 데이터 기술을 통해 분석하면, 담보물이 없어도 중앙은행으로부터 적절한 대출금액을 직접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이에 따라 유동성을 창출하는 예금은행의 만기전환 기능은 이전에 비해 그 중요성이 위축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상업은행은 거액송금 서비스와 환전/결제 서비스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데, 블록체인 시스템 하에서는 이러한 시스템들을 은행이 전문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없어질 만큼 저렴해지고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다. 더 나아가 대(對)일반 방식을 실현할 수 있다면, 현재의 민간 신용 시스템이 없더라도 최종 수요자에게 신용을 직접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헬리콥터 머니’를 구현할 수 있다. 이 경우 경제가 심각한 불황상황에 봉착하더라도 양적완화(QE)처럼 과도한 부작용을 수반하는 미봉책을 쓰지 않고도, 화폐의 실수요자에게 직접 화폐를 송금함으로써 생산과 실현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해진다. 경제의 효율성이 제고되며, 경제가 체계적으로 균형에 이르도록 만드는 수단이 생기는 것이다.
  • 아래 그림은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제시하는 대(對)일반 방식의 디지털 통화발행을 도식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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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on and Hodgson(2016), “Digital Cash : Why Central Banks Should Start Issuing Electronic Money”, Positive Money

  • 대(對)은행 발행방식이든 대(對)일반 발행방식이든 디지털 통화는 실체가 없고,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거래로 이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바일 기기는 일상에서 요긴한 지급결제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는 국가에서는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로부터의 위협을 막고, 각 국가의 고유한 통화가치를 보존하려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이 최종적인 보증을 함으로써 완전한 신뢰를 보장할 수 있다.
  • 한편 대(對)일반 발행방식에서는 중앙은행이 민간의 디지털 예금계좌를 보유해야 하고, 직접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기 위해 이 계좌들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 계좌관리는 중앙은행이 직접 할 수도 있고, 중개기관을 선정해 관련 서비스를 위탁할 수도 있다. 서비스 제공자가 계좌관리 및 지급결제 서비스를 위탁받는다면, 디지털통화 계좌를 보유한 고객과 중앙은행을 직접 연결한다. 그리고 지급결제에 관련된 일련의 서비스를 제공할 책무를 위임받게 된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사실상 현재 은행이 제공하는 것들과 거의 유사하지만, 금융시스템의 제도적 기반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은행은 고객들로부터 예치 받은 예금을 다른 고객에게 대출해주는, 이른바 만기전환 기능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그런데 예금은 주로 단기의 고유동적 부채인 반면 대출은 주로 장기의 비유동적 자산이다. 은행의 대차대조표상 자산-부채의 만기가 불일치한 상황에서, 모종의 내외부적 신용충격이 발생하면 은행 건전성이 언제든 약화될 수 있으며 일부 고객들의 자산가치가 손상될 위험이 있다. 이에 반해 디지털 통화체계에서 서비스 공급자는 이용자 계좌와 중앙은행 계좌를 연결하는 기능(지급결제 기능)만을 담당하고, 신용공급 서비스는 원천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혹여나 서비스 제공자에게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자금은 중앙은행 계좌에서 부동인 상태이므로 고객이 손해를 보지 않는다. 전술한 디지털 통화계좌의 발행 및 관리체계와 현재 은행계좌 관리방식을 비교, 정리하여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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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디지털 통화 발행이 사회경제에 미칠 영향

  • 중앙은행이 블록체인 기반에서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는 경우, 현금이 사회 전반에서 퇴장하고 지급결제수단이 완전히 전자적인 형태로 일원화될 때 사회경제에 미칠 제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자.
1) 긍정적 영향
  • 첫째, 분산원장 기반의 디지털 통화발행은 실물경제의 효율성을 개선하고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Barrdear and Kumhof(2016)에 따르면, 분산원장 기술에 기반을 두고 GDP의 30% 수준을 국채 대신 디지털 통화로 발행하는 경우 GDP의 3% 가량을 항구적으로 제고시킬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 연구에서 디지털 통화 발행액을 GDP의 30%로 가정한 것은, 이 수치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 정책을 사용해 공급한 화폐발행액에 가깝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는 명목금리 0의 하한(Nominal Zero Bound)의 문제를 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커야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는 경우 실질이자율이 영구적으로 하락하고, 왜곡적 세금운용의 필요성이 줄어들며 현재의 큰 화폐거래 비용이 감소함에 따라 경제의 효율성이 향상될 수 있다. 또 분산원장 기반의 금융시스템 확립은 현행의 고비용 금융시스템에서 저비용 시스템으로 이행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 전환은 직접적으로는 송금 및 결제비용을 크게 하락시켜 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편익을 창출하지만, 동시에 기존 은행 및 증권회사의 중개업무의 필요성을 대폭 위축시켜 실업을 유발하는 비용도 있을 것이다. 기술적 변화가 가져다주는 효용과 비효용을 비교하려면 직간접적인 것을 모두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간접적인 편익을 말해보자면 분산원장의 보편화로 신규 창업이 활발해지고, 소규모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은행 시스템 하에서는 자본의 규모가 큰 은행이나 증권사일수록 서비스의 비용이 평균적으로 더 저렴해지는 규모의 경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소수의 대형금융기관이 시장에서 독점력을 발휘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규모의 금융기관은 대기업이나 어느 정도 업력이 있는 기업들의 신용정보를 파악하기가 쉬워 신용공급이 효율적으로 이뤄졌지만, 상대적으로 신용정보를 파악하기 곤란한 개인과 소규모 기업에게는 불리한 신용환경이 되었다. 이러한 신용환경에서는 혁신적인 사업 서비스가 창출되는 것이 어려웠다. 분산원장이 보편화되는 경우 금융비용이 획기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혁신기업 및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안할 기회가 더 많이 생기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 둘째, 분산원장 기반의 금융시스템이 안착되는 경우 거시경제 전반의 안정성을 크게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분산원장 상에서는 거래기록 전반이 즉시적으로 블록체인 상에 기록되기 때문에 정책변화에 대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측정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책의 시차문제가 크게 감소하게 되고, 경기변동에 대응해 안정성을 제고하려는 정책의 유효성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디지털 통화의 발행방식이 대(對)일반 발행방식으로 이뤄질 때, 중앙은행은 화폐수요자인 민간에 직접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헬리콥터 머니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민간의 소비를 증가시키고, 불황의 장기화를 신속히 진화함으로써 경제 안정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 셋째, 실물화폐가 폐지되고 디지털 통화가 법적 통화로 구축되면 모든 거래기록이 전자장부에 기록되고 모든 사용자가 이를 공유하게 되므로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 있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사회경제의 투명성 및 반부패 경향은 경제성장과 정의 상관이 있다. 투명한 사회에서는 비생산적 활동에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여지가 적으므로 지대추구 노력이 근절되고, 자연스럽게 생산적 활동에 대한 유인이 커지게 마련이다. 사회 근간에 이러한 투명성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면, 생산적 활동에 대한 노력의 결과로 합당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길 것이고, 그에 따라 탈법과 탈세가 만연하기보다는 활발한 창업과 근면한 노동이 꽃필 수 있게 될 것이다.
  • 넷째, 디지털 통화의 발행으로 가장 큰 변화에 직면할 대상은 중앙은행과 통화정책이다. 실물화폐가 보편적이었던 기존 경제구조에서는 명목금리의 실효하한이 존재하여 통화정책이 무력해질 위험이 있었고, 그에 따라 불황기의 경제가 쉽게 불안정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실물화폐를 폐지하고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는 경우, 통화정책상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현행 신용 시스템은 상업은행의 관여에 상당히 의존적이어서 상업은행의 행태에 따라 화폐발행액이 크게 변동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여기서 발행방식을 대(對)일반 방식으로 취하는 경우 헬리콥터 머니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상업은행의 중개를 거치지 않더라도 화폐발행이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통화가 발행되는 사회에서는 실물화폐가 지배적인 사회에 비해 직접적이고 유효성이 큰 통화정책 수단을 새로이 확보할 수 있게 되지만, 민간과의 소통이 훨씬 더 중요하게 요구될 것이다.
  • 다섯째, 디지털 통화의 발행은 금융소외를 줄이는 동시에 금융포용(Financial Inclusion)을 제고하며, 금융안정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기존의 금융시스템에서는 고객들이 예금은행 계좌를 갖고 있어야만 지급결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고, 필요에 의해 은행대출을 받고자 할 때에도 담보물을 제공해야만 우량의 대출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또 기존의 은행들은 고객들로부터 단기의 예금을 예치 받고 장기의 대출을 제공하는 전환 업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였는데, 대출한 자금을 상환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 예금고객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는 등 신용위험이 상존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러한 위험을 인지하고서 예금보험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은행의 신용위험을 경감시켜주었는데, 사실 이러한 제도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제 위험과 부작용들은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는 경우 경감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분산원장에 기초한 디지털 예금제도 하에서는 민간은 상업은행 없이도 직접 지급결제를 할 수 있고, 본인의 거래기록에 기초해 중앙은행으로부터 직접 담보 없는 적정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분산원장의 특성상 정보비대칭성이 상당히 완화되므로, 디지털 통화에 대한 신용위험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그 결과 담보의 필요성이 현저히 감소하거나, 설령 요구되더라도 실시간 금융기록의 모니터링이 용이해 신용위험이 위기로 비화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에 더해 분산원장 체계에서는 중앙은행이 실시간으로 지급결제 시스템을 관리 감독할 수 있어, 각 거래의 규모와 연계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 복원력을 키울 수 있다.
2) 부정적 영향
  • 우선 기존의 통화체계에서 디지털 통화로 이행할 때 생길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비용은 전환비용이다. 디지털 통화가 광범위하게 수용되려면 개인 간 거래나 소액거래마저도 전자결제로써 쉽게 통용될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대대적인 제도적 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크게는 기관 간 지급결제 네트워크를 대대적으로 교체하는 것부터 작게는 소상공인에게 결제단말기를 설치하게 하는 데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적으로는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또한 실물화폐가 존재할 때는 지폐위조를 방지하거나, 부분적으로 금융 시스템을 해킹을 방지하는 데 비용이 들긴 했어도 그 규모가 아주 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디지털 통화의 도입으로 모든 결제가 전자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해킹 피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게 커지고 사이버 보안에 대한 요구는 필수 불가결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상시적인 네트워크 점검과 강화가 요구되고, 이용자들의 사이버 보안의식을 개선하는 것도 정책당국에 의해 활발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오랫동안 결제수단으로 통용되던 통화가 새로운 형태와 방식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기존 거래체계에서 관습이자 신념으로 굳어진 사회문화의 틀 자체를 바꾼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사용자들의 심리적 저항을 덜고, 적응력을 제고하기 위해 적절한 교육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 둘째, 모든 변화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게 마련이고 그에 따라 저항하는 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설령 사회 및 제도 변화가 만들어 낼 사회적인 효용이 비용을 능가한다고 할지라도, 기존의 제도에서 이익을 누리고 있는 세력이 있다면 그 변화에 맞서 저항하려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디지털 통화의 도입에 있어 저항의 세력이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집단은 단연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 종사자들과 기존 금융시스템 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기업 집단일 것이다. 이 외에도 전자거래에 적응하기 힘든 고령층은 잠재적 금융소외 계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금융 산업에서 발생할 대량실업이나 일부 계층의 배제 등 시스템 전환으로부터 생기는 비용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가급적 변화의 속도는 더딘 것이 충격을 완화하기에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 변화를 위한 체계적인 로드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액권 지폐를 먼저 폐지하고서, 이후 제도의 정비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단계적으로 현금과 디지털 통화를 겸용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통화를 겸용하는 일정기간 동안 사회 전반에 마땅한 기술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며, 그 후에야 현금을 완전히 구축시키는 일이 적절할 것이다. 또한 체제 전환으로부터 얻는 사회적 이익은 잠재적인 피해계층에게 나눠주는 보상의 원리가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 셋째, 디지털 통화가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상업은행의 불안정성이 커질 위험이 있다. 현금이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화폐가 될 디지털 통화는 전자적으로 사용되고 또 결제된다는 특성에 비춰볼 때 현행 은행예금과 상당한 대체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의 예금규모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고, 이런 환경에서는 은행의 대출재원이 부족해지고 건전성이 취약해지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가능성들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예금보험제도의 존재로 인해 실현될 가능성은 적음에도 불구하고)과도기 과정에서 대출의 안정성이 약화되어 bank-run 우려가 사회적 혼란을 만들 수 있다. 둘째, 자금조달 능력이 약화된 은행들이 대출공급을 줄임으로써 전반적인 신용창출의 규모가 감소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사전대응이 중앙은행과 같은 정책당국에 의해 적절하게 시행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가 소비자에게까지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상업은행은 자금조달 능력을 보전하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시장성 수신을 확대하거나 전문적인 투자은행으로 업종을 전환할 수 있다. 이 경우 산업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나타나는 몇 가지 부작용도 있겠지만, 대규모 자본이 시장을 지배하며 횡행하던 금융 산업에서 경쟁을 촉진하는 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전문성과 수익성을 갖춘 새로운 기업들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 이것으로 '현금 없는 사회' 시리즈의 포스팅을 종결지으려 합니다. 마지막에 제 생각을 추가하고 싶었지만, 추후 '화폐'를 주제로 한 몇 가지 글들을 쓸 생각도 있어서 생략했습니다. 물론, 아직은 태동기인 기술이라 지나치게 확신에 찬 글을 쓰는 것이 독이라는 신념도 있구요. 부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합니다.
  • 글이 너무 길어지다보니 삭제한 논거들이 많고, 그렇게 부족한 글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 긴 포스팅은 시리즈로 올려서 가독성을 제고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에서 부족한 부분은 언제든지 질책해주세요,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더 많이 아시는 분이라면 제게도 지식을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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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보고 들어왔는데 좋은 글들이 많네요! 팔로우 박아두고 찬찬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연재 부탁드려요 :)

감사합니다 저도 팔로우했습니다 :->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