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이사올 때 우리는 "도시에 가서 살자?"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경상도 상주에 귀농해서 살때 우리는 거의 산꼴짜기에 살고 있었다.
슈퍼에 갈려고 해도 차를 타고 나와야 하는 아주 외진 곳이었다.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짜장면이 먹고 싶으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고, 혹시 꼭 집에서 배달시켜 먹고 싶으면 아무리 둘이 먹더라도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까지 시켜야 배달이 가능한데, 그것도 식사시간을 피해서 시켜야 겨우 배달을 해주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제주도로 이사올 때는 집에서 짜장면과 치킨을 배달 주문할 수 있어야 하고, 영화관이나 시장, 서점 혹은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고,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도시(?)로 이사를 하자고 했었다.
워낙 외진 시골에 살던 우리에겐 이게 도시의 조건이었다.ㅋ
지난 포스팅에도 이야기했지만 그래서 우리집은 구제주 중심가에 있는 살림집으로 얻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다.
사실 제주도는 차를 타고 십분 정도만 나가도 어촌이나 농촌이 나오는 작은 섬(이렇게 얘기하면 제주도 사람들한테 혼나지만ㅋ)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생활권은 도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보니 전에 시골에 지천으로 깔려 있던 채소들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아쉽다.
겨우 시장에서 모종 몇개씩 사서 화단에 심어 놓는 것이 내가 직접 길러 얻을 수 있는 채소의 전부이다.
동문 시장에서 산 상추 모종 10개.ㅋ 소박하다.
제주 시청 앞에서 토종 고추를 보존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며 나눠주었던 토종고추 모종 10개.
시골 살때 상추 50포기, 고추 400개, 배추 200개, 무 50개, 콩이나 깨 등은 한되씩 심던 걸 생각하면 완전 소꼽 장난이 아닐 수 없다.
시골에 살 때만 해도 요리에 관심이 별로 없던 나는 그닥 채소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었다.
몸에 좋다는 민들레가 지천으로 있어도 그걸 해먹을 줄 몰랐고, 언땅을 뚫고 나오는 봄의 인삼이라는 냉이를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밭에 와서 매일 캐가도 난 냉이와 돌냉이를 구분 못해서 맨날 못 먹는 냉이만 캐오곤 했었다.
이번에 제주음식스토리텔링에서 배운 제주도 채소 요리는 그런 의미에서 옥돔미역국이나 고등어죽, 메밀조베기 보다 더 신기하고 맛있게 만들기 더 어려운 반찬이었다.
다행히 뭐든 잘하시는 우리 강사님은 '모든 재료를 넣고 섞어준다.'를 시연하시면서 쉽게쉽게 채소 반찬을 만들어 내셨다.
우선 각 채소에 들어갈 양념장을 나란히 만들어 놓으셨다.
일번 양념장 : 된장 1큰술, 다진마늘 1큰술, 채썬 파 2큰술, 참기름 1/2큰술, 깨소금 1/2큰술
위의 재료들이 들어간 일번 양념장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제주도 된장은 그냥 시원한 물에 타서 음료수처럼도 마신다고 알려 주셨다.
된장의 양은 얼마나 넣고 마시냐는 내 질문에
그냥 취향껏.ㅋ
이라신다.
제주도 사람들이 한여름 밭에서 일할 때 이렇게들 먹는다고 하는데, 뭐 그닥 친숙한 맛은 아니었다.
이번 양념장 : 청장 1큰술, 다진마늘 1작은술, 다진파 1큰술, 참기름 1/2큰술, 소금 약간, 깨소금 약간
위의 재료들을 넣고 수저로 휘휘저으면서 됐고!라고 하셨다.
삼번 양념장 : 청장 1큰술, 다진마늘 1작은술, 참기름 약간, 깨소금 약간
이번 양념장과 별반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 다르다고 하신다.
비교해 보려고 비교샷을 찍었지만, 뭐 그닥 차이가 나지 않는다.ㅜㅜ
정확히 말하자면 마늘의 유무가 이 두 양념장의 차이이고, 그게 중요하다고 한다.
일번과 이, 삼번 양념장의 차이는 된장 베이스냐 청장 베이스냐의 차이이다.
이렇게 나란히 양념장을 만들어 놓으시고
나물 반찬의 모든 노하우는 여기에 있다.
라고 말씀하시며 뭔가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비법을 알려주시는 얼굴을 하셨다.
내가 보기에는 래서피대로 재료를 섞어놓은 것에 불과해 보였는데, 이렇게 세가지 양념장의 쓸모가 다름을 아는 것이 요리의 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했다.
보통 엄마들이 시크하게 알고 있는 요리팁 같은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미역국에는 파를 넣지 않는 것이라든지, 된장찌개에는 마늘을 조금 넣어야 맛이 꽉 찬다든지, 묵은 나물은 들기름에 볶아야 한다든지 하는 그런 팁들이 엄마들의 시크한 요리팁일 것이다.
이렇게 양념장이 만들어지면 다음부터는 아주 쉬운 요리 과정만 남게 된다.
깻잎순나물
재료 : 깻잎순 200g, 양파 1/4개, 홍고추 1/2개, 풋고추 1개, 들기름 1큰술, 일번 양념장
일. 깻잎순은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준다.
잘 씻은 깻잎순은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친 다음 냉수에 헹구어 물기를 제거한다.
이. 양파, 홍고추, 풋고추는 채 썰기해 준다.
삼. 데친 깻잎에 양념을 넣어 무쳐준다.
사.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양파채를 볶다가 홍고추, 풋고추를 넣어 볶은 다음 양념에 무쳐놓은 깻잎순을 넣어 충분히 볶아준다.
깻잎순은 깻잎 한장한장 있는 것과 달리 다발로 뭉쳐 있는 것이라 의외로 식감이 좀 질기다.
그러므로 질긴 식감이 어느 정도 없어질 때까지 좀 오래도록 볶아준다.
가지무침
가지는 칼로리가 낮으면서도 몸에 열을 내리게 하고 혈액 순환을 좋게 한다고 한다.
보통 보라색이 나는 채소는 여러 가지로 몸에 좋다고 하는데, 가지가 보라색의 대표적인 채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가지로 나물 무침 외에는 다른 조리법으로 해먹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은 가지로 다양한 조리를 해먹는 거와 사뭇 다른 음식문화이다.
가지무침을 해본 사람은 안다.
이 가지무침이 얼마나 맛을 내기 어려운 것인지를...
나도 아무리 해도 엄마가 어릴 때 해주시던 가지무침의 맛을 아직도 못낸다.ㅜㅜ
일. 가지는 꼭지를 따고 2등분해서 살짝 찐다.
옛날에 우리 엄마는 밥할 때 거기에 가지를 넣고 쪘었는데, 아무튼 물에 삶듯이 찌면 된다.
꼭지 따고 2등분하기.
물을 바닥에 자박하게만 넣고 찐다.
가지는 요 상태까지만 쪄야 한다.
만약에 반찬으로 먹었던 가지무침을 생각하고 그때까지 찌면 완전히 흩어져서 난감해진다.
요 만큼만 쪄도 잔열로 더 쪄지는 것이 가지이다.
이 찌는 기술이 제일 중요한데, 이건 언제 해도 잘 모르겠다.
요즘 신세대 주부들은 가지를 검지손가락 크기로 잘라서 비닐 팩에 넣고 물을 서너 수저 넣어준 후, 전자렌지에 10분간 쪄준다고도 하는데, 내가 해봤는데 그것도 그닥 마음에 들게 쪄지질 않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뜨겁게 쪄진 가지를 찢지 않아도 되어서 간편하고 좋긴 하다.
이. 찐 가지는 적당히 식힌 후 길죽길죽하게 찢어 놓는다.
난 요때 가지 속과 껍질이 분리되어 영 비주얼을 예쁘게 살리지 못하지만, 개의치 말로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두면 된다.
삼. 이번 양념장을 넣고 무쳐준다.
딱 어릴 때 엄마가 해주시던 가지무침의 식감과 비주얼 그리고 맛이 나왔다.
이 선생님 뭐지???
미내기무침
'미내기'는 '미나리'의 제주 방언이다.
보통 육지에서는 논에 미나리가 많이 난다.
이런 미나리를 논미나리라고 하는데, 논미나리는 줄기가 길고 두껍지만 부드러운 편이라서 전골이나 찌개에 사용한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논이 거의 없으므로 밭에 미나리를 심는다.
이런 밭미나리를 돌미나리라고도 부른다.
돌미나리는 길이가 짧고, 조금 질기고 억세지만, 향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돌미나리로는 생채나 샐러드 또는 녹즙으로 짜서 먹는다고 한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을 찍어서 먹는 미나리 강회로도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재료 : 미나리 300g, 삼번 양념장
미나리를 다듬다가 강사님에게 육지껏들이 조금 혼났다.ㅋ
이유는 육지에서는 미나리를 손질할 때 이파리를 모두 떼어내고 줄기만 먹기 때문에 '육지껏'들이 전부 미나리를 헐벗게 다듬어버렸다.
제주도 사람들은 절대로 채소를 그렇게 먹지 않는다고 한다.
시든 이파리만 떼고 모든 이파리도 줄기와 함께 조리해 먹어야 한다고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정말로 절약정신(조냥정신)이 몸에 베어있다.
일. 미나리를 깨끗이 씨어 손질한 뒤,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물론 푸른 잎 채소를 데칠 때는 소금을 조금 넣어 녹색이 더 선명해지도록 하는 것은 상식이다.
물도 많이 할 필요 없다.
미나리를 살짝살짝 뒤집어주면서 데치면 된다.
이. 데친 미나리를 냉수에 헹구고 물기를 뺀 후 5cm 길이로 잘라준다.
삼. 삼번 양념장을 넣고 무쳐준다.
이렇게 해서 제주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채소 반찬을 만들어 보았다.
시작하면서 농담처럼 양념장 세가지를 만들어 놓으시고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어요. 오늘 수업시간 뭘로 떼우지??
하고 말씀하시더니, 정말로 양념장 만들어 놓고 재료 손질해서 한꺼번에 무치면 모든 반찬이 끝이다.
그리고 이렇게 양념장 넣고, 무쳐 먹는 것은 좋은 반찬이고 보통은 그냥 소쿠리 하나에 각종 쌈채소를 담아 된장이나 젓갈 찍어먹는 게 제주식인데, 그건 강의할 내용이 없다고 하셨다.
사실 이렇게만 차려야 진짜 제주 채소 밥상인데..ㅋㅋ
강의 시간 떼우시겠다고 이렇게 고급스런 제주 채소 밥상을 차려버리고 말았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채소를 이용해 잔치나 제삿상에 올라가는 반찬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아직 입맛이 초딩입맛이라 그런지 ...채소 밥상은 잘 보지도 않는데 왜이리 맛있어 보이는 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나물 반찬의 맛을 알게 되면 거의 어른 입맛이 된 거죠.^^
상주에도 계섰었군요. 제주 생활이 좋아보이세요.
네, 상주에서도 좋은 추억이 너무 많았어서 언제 스팀잇에 정리를 해야하는데, 제주 생활이 아직은 바쁘네요.^^
기대하겠습니다.^^
셋 다 제가 좋아하는 반찬들 이네요! ㅎㅎ 해봐야지~~
요즘 케이티님 텃밭은 어떤가요?
호박이 무척 잘 자라더니 지금은 뭘 드시고 계실지 궁금해요.
저도 하우스에 가지를 심어 놨는데 다음주엔 가지무침을 좀 해먹어야 겠군요^^
그러게요
@sonki999님의 하우스에 있는 작물들의 상태가 저도 궁금합니다.^^
오늘도 역시 어떤 맛일까 상상하게 되네요~~ ^^
언제 로사리아님도 나물 반찬 포스팅 한번 하셔야죠.ㅋㅋ
나물 잘 못하는 저에게 오늘 포스팅 너무 유익하네요.
감사합니다~~
나물은 정말 어려워요.
제일 간단한 반찬인데도 그 포인트 맛을 잘 못내겠더라구요.ㅋ
저도 냉이 캐오라고 하면 돌냉이 캐 올 것 같네요. ㅎㅎㅎ
냉이는 뿌리에서 향이 짙게 나고 뿌리색이 하얘야 진짜 냉이라고 하더라구요.ㅋ
돌냉이는 냉이 향은 나는데, 뿌리가 붉은 빛이 돌아요.
와우!!!!
제주도 사신다고 해서 궁금해서 들어왔는데...
이건뭐 장금이 따로없으시네요..
저두 42살 주부입니다.. TT
창 챙피하네요...
전 요리를 별로 즐기지 않거든요
왜
gghite님 스팀잇보고 우리가족이 불쌍해지는걸까요... 흐흐흐
앞으로 쭉
gghite님 삶을 지켜보고 싶어요...
스팀잇을 떠나 팔로우하고 갑니다... ^^
반갑습니다.
다음엔 프로필 사진도 넣고 오세요.^^
저도 맞팔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나물요리 좋아하는데 다 맛있을거 같아요^^
제주도에 사신다니 부러워요~ 제가 하고 싶은거 중에 하나가
제주도에 작업실 차려서 바다보면서 작업하는 것인데 어서
돈 벌어서 제주도 가고 싶네요~
반갑습니다.
세라믹으로 뭔가 작업을 하시는 분인가봐요?
기대됩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어제 마트에 갔는데.. 채소가 많이 올랐더군요..
고기보다 더 비싸진거 같아요 ㅜ
눈으로 맛깔난 채소를 보았습니다. 군침도네요 ㅎㅎㅎ
자그마치 양배추가 만원이랍니다.ㅜㅜ
저도 요즘 야채값 너무 올랐다는 얘기듣고 시장을 안가고 있답니다.ㅜㅜ
다음포스팅도기대되요
다음 나물반찬은 좀더 맛있을 거에요.^^
또 오세요^^
요즘 텃밭에 가지 덕분에 매일 가지반찬이랍니다^^
깻잎나물 너무 좋아하는데 잘 볶아야 하는군요~
나물은 은근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만들 때마다 다른 맛을 내는 것 같아요^^;;
저도 만들 때마다 다른 맛을 내는 실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특히 가지반찬이 제일 어려워요.ㅜㅜ
방가방가반가워요
또놀러올께요
네, 매일 제 포스팅에 오시는 거 알고 있어요.
자주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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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 나물 너무 좋아해서 하나하나씩 도전해보고있는데
쉬운듯 정말 어렵더라고요 ㅎㅎ
제주도 집밥 반찬이네요 ㅠㅠ 군침돕니다!
더위가 가고있어요!!! 선선한게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