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양 아래> (2015) - 극장 뒤편을 향하여

in #kr7 years ago

영화 태양아래 (2015) - 극장 뒷편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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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양 아래>의 내용은 간단하다. 북한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갔던 러시아 감독은 북한이 일상을 연출하려는 것에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몰래 촬영해 북한의 진실을 공개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북한이 일상을 어떻게 연출하는지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의 그런 속성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런 장면을 보게 되면 더 기가 찰 뿐이다. 또한, 주인공으로 나오는 진미에 대한 연민도 커져만 간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북한에 대해 국가 단위로 트루먼 쇼를 하는 나라라고 주저하지 않고 호명하게 된다. 마구 비웃고, 북한을 비판한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런 사회에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이 우리가 북한을 보고 비웃는 지점은 무엇인가? 당연히 ‘자유가 없는’ 지점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비웃음에는 단순히 그것을 넘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조악함이다. 사실 어떤 국가든 자국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서, 북한처럼 연출하는데 마다하지 않는다. (만일 순수하게 진실만 담은 홍보물이 있다면, 그 국가는 진심으로 축복받은 것이다) 우리도 어느 정도 연출이 있다고 정부의 선전물을 불신하는 때도 있지 않은가? 북한도 그런 일을 한 것일 뿐이다. 다만 현실을 심하게 왜곡하고, 조작의 수준이 너무 조악했기 때문에 비웃을 뿐이다. 즉,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보내는 냉소에는 미숙함에 대한 조롱도 포함된 것이다.

이런 점은 이 영화의 비극성을 부각한다. 자신의 단점을 가리기 위해 위장하는 국가와 그곳에서 자유를 상실한 구성원들 그리고 그걸 보고 웃고 있는 관객들. 극장 국가의 실체라고 이 영화를 소개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오는 극장 국가 북한을 완성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관객들이다. 관객 없는 극장은 의미가 없다. 누군가 보아야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언가를 상연시킬 수 있다. 관객들의 비웃음과 연민이 북한이라는 사회에 죽은 감정들을 불어 넣는다.

북한은 이 영화를 통해 완성된 하나의 연극이 된다. 그러나 결국은 북한도 하나의 사회고, 자신들만의 시스템과 문화가 있다. 감독이 보여주는 면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완전히 그걸로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연극을 한 편 보았을 뿐이다. 그 뒤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봤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사회의 전부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연극도 전부 봤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려면 좌석에 뛰쳐나와 극장 뒤를 봐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좀 더 제대로 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들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그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고쳐질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적나라하고, 솔직하다. 다만 우리가 그 문제를 진정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극장 일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폭넓게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다. 이런 방법론은 극장 뒤편이 열릴 때까지는 매우 힘든 일이다. 요즘의 남북관계를 보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지지만, 꼭 확신은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영화를 보면서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찾아야 할 것은 찾아 나서자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주인공인 진미의 행복을 바라며 후기를 간단히 줄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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