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코치's Book]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스미노 요루)",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

in #kr7 years ago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읽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처음 이 소설의 제목을 들었을때, 또 다른 일본 괴기소설인 줄 알았습니다. 주로 엽기적인 소설을 많이 쓰는 온다 리쿠 등의 이름을 생각했으나 처음 듣는 신인인 "스미노 요루"라는 여성소설가네요.

사람들 사이에 인기 짱인 그녀, 야마우치 사쿠라,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공기같은 존재인 "나".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첫 문장부터 이어집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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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나"가 사쿠라의 공병(共病)문고를 우연히 읽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공병문고, 말 그대로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사쿠라는 췌장암 환자로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을 합니다.

소설은 그녀가 자신의 비밀을 "나"와 나누면서,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함께 해 나가면서 전개됩니다. 전체 관점은 "나"라는 1인칭으로 되어 있어서 사쿠라의 내면까지는 알 수 없고 그냥 짐작만 할 수 있네요.

함께 여학생만 가는 케이크전문점에 간다던지, 함께 1박 여행(고등학생이니 이상한 상상은 금물..^^)을 간다던지 하는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져 있어 간질간질 재미있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언제 사쿠라가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깔려 있어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네요.

중간중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쿠라를 통해 삶에 대해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애처로울 정도로 아까운 사쿠라의 말이라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화장(火葬)은 싫어."
나름대로 즐겁게 숯불구이를 먹고 있는데 그녀가 명백히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화제를 꺼냈다.
"뭐라고?"
잘못 들었을 가능성도 있아서 일단 확인했더니 그녀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되풀이했다.
"화장은 싫다니까. 죽은 뒤에 불에 구워지는 건 좀 그렇잖아?"
"그게 고기 구우면서 할 얘기야?"
"이 세상에서 진짜로 없어져버리는 것 같아. 다들 먹어준다거나 하는 건 좀 어렵겠지?"
"고기 먹으면서 사체 처리 얘기는 하지 말자."
"췌장은 네가 먹어도 좋아."
"내 얘기 듣고 있어?"
"누군가 나를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산다는 신앙도 외국에는 있다던데."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사쿠라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책의 제목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사람에게서 잊혀지고 싶지 않다는 작은 소망이라고 할까..

그리고 사쿠라가 자신과는 정반대인 "나"를 선택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 너 말고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너는 분명 나한테 진실과 일상을 부여해줄 단 한 사람일 거야. 의사선생님은 내게 진실밖에는 주지 않아. 가족은 내 말 한 마디에 과잉반응하면서 일상을 보상해주는 데 필사적이지. 아마 친구들도 사실을 알고 나면 그렇게 될 거야. 너만은 진실을 알면서도 나와 일상을 함께해주니까 나는 너하고 지내는 게 재미있어."

시한부 삶인 사람을 그대로 봐줄 사람은 없을겁니다. 나만해도 뭔가 더 해주고 싶어서 전전긍긍할테니까요. 그런데, 현명한 사쿠라는 자신의 비밀을 알면서도 평소와 똑같이 대해 줄 수 있다는 이유로"나"를 선택했어요. 아마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상황이든 나 자신을 그대로 봐줄 사람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런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를 찾아낸 사쿠라의 능력도 탁월하다 싶습니다.

사쿠라를 만나면서 "나"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깨달았다.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을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나도, 범인에게 살해된 피해자도, 그녀도, 어제는 살아 있었다. 죽을 것같은 모습 따위, 내보이지 않은 채 살아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게 바로 어떤 사람이든 오늘 하루의 가치는 모두 다 똑같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유쾌한 소설은 한가지 의문을 던진다. 과연 산다는 게 뭔가...

그 답을 사쿠라의 입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산다는 것은..."
"..."
"아마도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 그걸 가리켜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 거야."
아, 그런가,
나는 그걸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존재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시선이며 목소리, 그녀의 의지의 열기, 생명의 진동이 되어 내 영혼을 뒤흔드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인정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 누군가를 싫어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짜증난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 누군가를 껴안는다, 누군가와 스쳐 지나간다... 그게 산다는 거야. 나 혼자서는 내가 존재한다는것을 알 수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누군가는 싫어하는 나, 누군가와 함께 하면 즐거운데 누군가와 함께하면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나, 그런 사람들과 나의 관계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산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있기 때문이고, 내 몸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잡아주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는 지금 살아있어. 아직 이곳에 살아있어. 그래서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어. 나 스스로 선택해서 나도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것처럼."

사쿠라는 벚꽃이 사라지듯 어느날 갑자기 어처구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공병문고는 "나"의 손으로 들어오고, "나"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이 세상에 남겨진 "나"는 나의 삶을 그렇게 다시 이어갑니다.

죽음을 가장 밑바탕에 깔고 이런 유쾌한 소설이 나올 수 있는가 싶지만 그렇게 써나갈 힘이 있는 것이 소설가인가봅니다. 눈물 철철 흐르게 슬프게도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지만 이렇게 즐겹고 밝게도 말입니다.

정말, 삶이라는 것, 잘 살아간다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나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무엇으로 이 시간들을 채우고 싶을까..

쉽지 않은 이야기이긴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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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으려고 이북 받아놓고 아직 못읽었는데 빨이 읽어보고 싶네요~^^ 잘 읽었어요~

네. 상큼하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그저 제일 좋은건 살고싶은대로의 삶이건만...그게 제일 어렵다죠?...ㅎㅎ

원하는 대로 사는 것, 그게 가장 어렵죠.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은게 사람의 마음인지라.. 늘 갈등을 하죠. 이걸 하고 싶은데, 저걸 해야하고..^^

영화도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