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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헤르메스의 작은생각] be동사로 데카르트를 디스하다

in #kr7 years ago

의견 고맙습니다. sintai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오히려 데카르트를 비판하는 툴로 영어를 사용한 겁니다. 예컨대 '수영하니?'라는 말은 정황적으로 여러가지 의미일 수 있습니다. 가장 쉽게는 부사를 넣어보면 되죠. '(지금) 수영하니?'는 '(지금) 수영하고 있니?', '(혹시) 수영하니?'는 '(혹시) 수영할 줄 아니?'일 수 있습니다. '(아직) 수영하니?'는 '(아직) 수영하러 다니니?'일 수 있구요.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자아'의 확실성을 '생각'에서 찾는데, 그 이유가 '생각할' 때 생각하는 주체인 나 자신은 의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때 '생각할' 때란 정확히 '생각하고 있을' 때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를 나중에는 교묘히 비틀어 생각하는 능력 혹은 의식이 있기에 자아가 확실하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시키는 거죠. 라틴어와 프랑스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는 저 역시 갖추고 있으나, 현재시제가 갖고 있는 정황적 다의성을 데카르트가 이용했거나 정황적 다의성 때문에 혼동을 일으켰다는 걸(저는 전자라고 봅니다. <성찰>은 신의 존재를 증명해달라는 교회의 주문에 따른 저작이었으니까...^^) 투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영어를 활용했다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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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설명을 듣고 나서 다시 읽으니 의도하신 바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언어는 의식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0% 동의하지는 못합니다만 탁월한 시각에 감탄하고 갑니다.

말씀하신 '탁월한 시각'은 대부분 스피노자에게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따라서 감탄의 정당한 대상은 스피노자여야 할 거 같습니다. 사려깊은 댓글,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스피노자를 제대로 안배웠더니 이런 참사가 일어나는군요 ㅎㅎ 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