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는 ‘튤립’이 아니라 ‘동인도회사’다

in #kr7 years ago

유시민 작가를 비롯한 수많은 비판론자들이나 규제 당국은 암호화폐 등장과 거래 열기를 17세기 ‘튤립투기’에 비교하곤 했습니다.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튤립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되고 한 근의 가치가 집 한채에 이를 정도로 올라가면서 사회문제가 됐던 현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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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같은 시기 네덜란드에서는 또 다른 열풍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역사상 처음으로 주식을 공개적으로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한 ‘동인도회사’가 설립되면서 시민들이 주식 거래에 뛰어들기 시작했거든요.
당시의 분위기를 묘사한 책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The World's First Stock Exchange)>를 보면 동인도회사 주식 거래 열기는 ‘국민스포츠’라고 할 만큼 뜨거웠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1633년부터 1641년까지 동인도회사 주가는 250%나 상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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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를 휩쓴 두 개의 열풍은 당연히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튤립투기는 이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1637년 어느 날 갑자기 열기가 식어버렸어요. 당시 네덜란드를 덮친 흑사병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고 지방에서부터 꺼지기 시작한 열기가 수도인 암스테르담으로 빠르게 전이됐다는 설도 있다고 하네요.
이유야 어쨌든 네덜란드는 가격 상승 기대를 품고 턱없이 높은 가격에 튤립을 샀던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다행히 정부가 개입해 수수료를 내면 거래를 포기할지 말지 선택하는 인정하는 현대의 옵션과 유사한 형태로 계약을 강제 청산 시키면서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사라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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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회사 주식거래 열기는 이보다는 이어졌어요. 처음에는 제대로 배당을 해주지 못했지만 최초 공모 후 수십년이 지난 뒤부터 비교적 성공적으로 인도네시아, 일본 등지를 오가며 무역을 하고 이익을 남기고 배당을 했거든요. (하멜 표류기를 쓴 하멜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이었어요.) 동인도회사 주식을 사고팔면서 차익을 남길 수 있는 이른바 ‘소스’가 계속 제공된 거예요. 그래도 어쨌든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이 결과적으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것만은 분명합니다. 1799년 동인도회사는 공식적으로 해산했고 현대에는 더 이상 동인도회사가 남아있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두 개의 투기(혹은 투자) 열풍이 남긴 결과물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튤립이 ‘대박’을 바라는 인간의 헛된 욕망과 광기의 상징이 됐다면 동인도회사에 뿌리를 둔 주식은 예금, 채권과 같이 어엿한 금융상품 대접을 받으며 현대에서도 꿋꿋이 살아남고 있어요. 주식이 ‘대항해시대’를 맞이한 회사들이 거대한 자본을 모아 큰 배를 만들고 오랜 항해를 버틸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는 건 분명하거든요. 주식이 경제의 발달단계에 맞춰 자본을 모을 수 있는 효용성을 인정받은 거예요.

지난 26일 한국블록체인협회 초대 회장을 맡은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이 “암호화폐는 주식에 가깝지 않나 한다”고 한 건, 저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중앙화된 권력과 시스템에 의존하던 경제가 블록체인에 힘입어 탈중앙화 모델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암호화폐는 이에 맞는 새로운 금융수단이 될 거라고 봅니다. 최초로 공개거래된 동인도회사의 주식이 투기의 대상이 되다 휴지조각이 됐다고 해서 주식 발행을 금지하고 거래를 막아섰다면 지금의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암호화폐를 ‘바다이야기’와 '튤립'으로 규정했던 한국이 규제 당국이 한번 반문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덧. 다음 포스팅에서는 지금과 조금 다른 초창기 주식과 암호화폐 간의 유사성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