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은 없다.

in #kr7 years ago (edited)

요즘 워킹맘에 대한 글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대부분이 워킹맘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으며, 그들을 존경한다는 내용의 글들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태도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워킹맘이 대단하다, 워킹맘을 존경한다는 식의 발언의 밑바닥에는 한 가지 사실이 담겨있다. 워킹맘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고생하고, 더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워킹맘의 자기희생적 행위에 존경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체로 워킹맘에 대한 발언은 이런 식으로 끝나고 말지만, 워킹맘이 남들보다 더 고생하고 더 자신을 지운채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았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짐을 덜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다.

워킹맘의 고생, 희생이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한 개인의 문제라면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이를 도와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도 문제가 해결 가능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시스템 자체를 살펴보고, 돌아보고 고칠 점을 고쳐서 워킹맘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 그 것의 실현가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워킹맘들이 남들보다 더 고생하고 더 희생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여기서 발언이 끝난다면 결국 워킹맘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고생하시고 희생해 주십사' 하는 정도 수준의 발언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처지를 개선해 주는 데에 있는 것이지 그들을 칭찬하는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워킹맘 찬양 현상은 내게 두 가지를 떠오르게 한다. 하나는 서구 사회에서 귀족들이 말한 '노동의 신성함' 개념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버트런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책에서 본 것임을 밝힌다. 현대에도 노동의 신성함이나 근면함에 대한 찬양 개념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바이다. 러셀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이런 개념들이 실제로 노동하지 않는 귀족 계층이 노예들을 잘 부리기 위해 만들고 퍼트린 개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너희들은 정말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현자들은 힘든 노동이 한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지치고 낡게 하고, 파괴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비슷한 경우가 한국사회에도 있다. 대한민국은 외국에서 '노동자'라는 개념을 수입해오면서 이를 '근로자'로 바꾸어 버렸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의 날'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이 있음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근로자라는 것은 '근면한 노동자'라는 의미이다. 근면한 노동자? 얼핏 보기엔 좋은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정직한 고용주라던가 능력있는 CEO라던가 노동의 댓가를 정당히 지급하는 사장이라는 개념과 그런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단어가 우리사회에 있는가?

최근 나온 조사에서 전세계 노동자권리 지수를 5등급으로 나누었을 시 우리나라는 마지막 5등급에 속하고 있다. (관련기사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4/05/22/0601200100AKR20140522001000098.HTML)
이 조사의 공정성이라든가 조사기관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본 바로는, 국제기구에서 발표한 대부분의 연구결과에서 우리나라의 노동자권리 지수는 우리나라의 경제적발전지표보다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잘 지켜주지 않고, 노동의 댓가를 잘 치르지도 않으면서 근면한 노동자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어불성설이다. 애초에 근면한 노동자나 게으른 노동자 개념을 가져올 것도 없이 노동자는 노동을 하고 그에 맞는 적당한 대가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이런 왜곡된 단어 사용은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전에 한 기사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그들은 노동자라는 것을 지저분하게 차려입은 육체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즉 노동이라는 것은 어딘지 더럽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들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삼성 사무직은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노동자간의 연대를 더 어렵게 할 수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이제 워킹맘에 대한 찬양 현상이 가진 두번째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우선 나는 '워킹맘'이라는 단어부터가 잘못된 사고를 바탕으로 지어진 것이라 본다. 우리가 워킹맘을 지칭할 때, 이는 가사노동, 육아노동을 하는 것 이외에도 추가적으로 직장에 나가서 임금노동을 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워킹'에 대해서 말하자면 어떤 여성이 집안에서 주부로서, 엄마로서 가사노동, 육아노동을 하는 것 만으로도 이미 '워킹맘'인 것이다. 다만 그들은 비임금노동을 할 뿐이다.
전업주부도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노동을 추가적으로 하는 여성만을 '워킹맘'이라고 부르는 현상에는 전업주부를 '논-워킹맘'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고 본다. 이런 태도는 곧 전업주부를 집에서 놀고먹는 자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쉽게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전업주부를 생각하는 발언들을 인터넷 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김수행 교수의 한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남성이 직장에서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을 시 이 임금에는 가사노동, 육아노동의 대가가 포함되어 있다. 한 남성이 직장에서 임금을 대가로 파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이다. 그런데 이 노동력은 계속되는 재생산이 필요하다. 만약 어떤 이가 잠시도 쉬지 않고 무엇을 먹지도 않고( 즉 노동력 재상산을 하지 않고) 노동을 한다면 이 노동력은 금새 고갈될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력 재생산은 필수적이며 가정주부가 이 노동력 재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위생적이고 편안한 환경에서 쉴 수 있도록 해주는 청소,식사 준비, 가족의 건강을 돌봄 등이 있겠다.) 그리고 노동력이란 상품은 대를 이어 재생산되어야 한다. 자녀들이 부모를 이어 노동을 담당할 주체이므로 미래의 노동력을 담당할 자녀들을 키우는 것도 노동력 재생산의 범주에 들어간다.

우선적으로 전업주부의 일, 즉 육아노동, 가사노동 등의 비임금노동을 정당한 하나의 노동으로 생각하는 인식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현대 사회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나머지 현물로서의 돈을 직접적으로 가져다 주지 않는 것들은 평가절하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당장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행위나 노동도 실질적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나 고래 등 고등생물 사회를 관찰하면 할머니가 있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부나 장수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할머니고래가 직접 먹이를 잡아오지 못하고, 할머니가 직접 돈을 벌어오지 못하지만, 오랜기간 집단 내에 속해서 맡고 있는 실질적 역할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이야기하며 글을 마치겠다. 언제부턴가 한국사회에서는 가사노동,육아노동을 잘 해나가면서 직장생활도 함께 잘 해가는 여성들을 슈퍼우먼이라 부르고 있다. 한 개인의 온전한 희생을 바탕으로 완성되는 슈퍼우먼이라는 존재는 사라져야할 존재지 칭송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해가 있을 수 있어 덧붙히자면, 스스로의 의지로 슈퍼우먼적인 일을 즐겁게 해 나가고 계신 분들은 위의 주장에서 제외임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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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우먼... 저희 어머니~ ^^ 좋은글 잘 보고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 현상의 뒷면까지 생각해보게 만드시는 좋은 글입니다.

따듯한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