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8월 20일에 썼던 글입니다. 이 글을 쓴 전후로 한달간 가히 광풍이 불어쳤죠.
조국 논란을 이 공간에 올리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많이들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는 사안이라.. 저는 교수로서 조국 장관을 눈여겨 봤고, 일하면서 일정 부분 협력하기도 했고, 또 그를 신뢰하면서도 이번 논란에 여러 복합적인 생각이 드는 사람이지만,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그의 장관직 임명과 수행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저에겐 검찰개혁보다 다른 사회적 사안들이 더 중요하게 보이고, 또 개인적으로도 검찰개혁이 제가 잘 아는 사안도 아닙니다.
사실 검찰개혁에 대해 짧게 제 사견을 펼치면, 수사기관의 권력남용을 막으려면 통제와 견제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집권자의 '절제'가 핵심입니다. 절제할 마음이 없는 사람을 국민들이 지도자로 선출하면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들어도 사정 권력의 남용을 막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만일 지도자를 잘못 뽑는다면 결국 수사기관이 부당한 지시에 항명하고 비판하는 건강한 조직문화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요. 과거 검찰은 그런 조직문화를 갖추지도 못했고, 그런 문화를 위한 자산과 역사를 축적해오지도 못했죠. 여튼 검찰개혁에 대한 얘긴 여기까지.
오히려 조국 논란에서 저는 계급의 문제를 주목했습니다.
<조국 후보자의 인지부조화와 한국 사회의 계층인식>
조국 법무부 장관후보자 논란을 지켜보니 참 씁쓸하다..무척 복잡하게 얽힌 어려운 문제가 특정한 감정선을 건드리며 심플해져서다.
여기서 건드린 감정선은 '자녀 특혜'이고, 심플해진 문제는 '내로남불'이다. 반면 복잡하게 얽힌 문제는 설명하기가 간단치 않다. 그래도 한번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한국에선 진보나 보수나 누가 권력을 갖든, 변하지 않고 점점 강해지는 흐름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계층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자포자기 상태인가. 그렇진 않다. 누군가는 이 '고착사회'에서 이미 기득권을 점유하며 우아하게 산다. 반면 많은 이들은 미친듯이 경쟁하고 죽도록 달리지 않으면 아예 살아남기가 어려운, 불안하디 불안한 사회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누가?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느 세대나 이런 인식을 갖는 사람들이 많지만, 부동산으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얻지 못했던 20,30대들의 인식은 거의 균질적이다. 지금의 20,30대가 억대의 순자산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부모 잘 만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이렇듯 계층간, 세대간에도 계층인식이 다른데다, 진영 간 이해가 겹쳐지면 이 '고착사회'에 대한 담론은 엉뚱한 데서 터지거나, 복잡한 감정이 특정인을 향한 분노로 단순하게 표현된다.
한국 사회의 정치권력을 돌아가며 점유한 보수와 진보 진영 간에도 이 격차를 보는 시각이 상이했다. 한국 사회의 보수는 그동안 '격차를 인정하는 성장담론'을 주장해왔다. 사회의 제도를 대기업, 자산가,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짜야, 이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 국가 전체를 부강하게 만들 것이란 주장이다. 맞는 측면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식의 특혜를 줘야 대기업이 성장한다는 인과관계의 고리가 약해지고 있다.(인과관계 자체가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수학적으로 변수의 결과 기여율이 낮아진다는 의미로 결과값을 특정 변수로 미분하면 기여율 값을 얻을 수 있다) 일례로 오늘날의 삼성전자라는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2010년 적시에 갤럭시S가 출시됐고, 한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빠르게 개화했던 요인이 결정적이었다. 삼성의 반도체, 디스플레이도 스마트폰과 수직계열화를 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다른 예로 K뷰티로 불리는 화장품 산업은 한류라는 콘텐츠 산업과 함께 성장했다. 이 결정적인 요인들이 고환율, 세제 혜택 등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정책과 관련성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이젠 어려운 이론을 들지 않아도 체감할 수 있다. 기득권 특혜주기는 애초에 부작용도 많은 성장전략인데다, 이젠 '성장'전략조차 아닌 자해적 전략이 되었다. 한국의 보수는 이 자해적 전략을 여전히 '성장전략'이라고 우기고 있다. 지금 시대는 오히려 탄탄한 중산층이 만들어 내는 소비시장, 수준 높은 인재 등이 성장과의 인과관계가 크다.
진보는 겉으론 '격차를 줄이자', '계층이동이 용이한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했다.(물론 주장에 뒤따른 제도변경, 예산의 배분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언행일치가 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본인들이 한국이 어떤 사회인지 너무나 잘 알았고, 자식들이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은 부모라면 인지상정이었다. 확률적으로도 대개 부모라는 정체성은 개인의 다른 정체성을 압도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자녀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녀에게 권력과 자원을 물려주는 자신들의 사적인 행위와 '계층이동을 용이하게 하자'는 공적인 발화 사이의 심각한 인지부조화가 생겼다. 사람은 인지부조화를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해소하려 한다. 어떻게 인지부조화를 해소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계층이동이 가능한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인지를 바꾸거나, 아니면 자녀에게 권력과 자원을 물려주는 행동을 바꾸면 된다. 이 두 가지를 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로 하여금 누가 봐도 기이하고 무리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분명 똑똑하고, 멀쩡하고, 상식적인 사람인데, 어떤 국면에서 황당한 발언을 한다면 인지부조화를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해소하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조국 후보자가 오늘 고등학생 자녀의 의학논문 제1저자에 오른 과정을 설명하며 "자녀가 멀리까지 매일 오가며 프로젝트의 실험에 적극 참여하여 경험한 실험과정 등을 영어로 완성하는데 기여하는 등 노력했다”는 기이한 발표를 보며 저 사람도 참 무리한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이 자녀 논문 논란을 해소하려 했다면 ‘출산 전후 허혈성 저산소뇌병증(HIE)에서 혈관내피 산화질소 합성효소 유전자의 다형성’이 주제라는 그 논문의 핵심 내용을 자녀가 어떤 견해와 근거를 가지고 논문으로 썼는지를 얘기하면 된다. 그랬다면 '실험과정 등을 영어로 완성하는데 기여'했다는 말이 아닌 말을 입장이라고 내놓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복잡하게 얽힌 진짜 사회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가. 다시 말해 '계층이동이 용이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과정도 결과도 모두 공정하지 않았던 '가짜보수'가 과정의 공정성만큼은 담보하는 '진짜보수'로 대체되면 되는 일인가. 아니면 자녀에게도 권력과 자원을 물려주지 않으면서 격차 해소를 주장하는 '언행일치 진보'가 사회를 주도해야 하는걸까. 문제는 한국 사회엔 '진짜보수'도 '언행일치 진보'도 없다는 것이다. 정말 희망은 없는 것일까. 참 어려운 문제다.
자신있게 이게 해법이라고 말하긴 어렵고, 요즘 내 주장이 대부분 기승전 '세대균형'으로 가곤 있지만, 내가 제안하는 하나의 방안은 아직 자녀에게 권력과 자원을 줄 필요가 없는 새로운 세대가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자녀도 나만큼 살았으면 하는 기득권자라도 나이대가 30,40대라면 아직 자녀 문제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그들에게 내 자녀만 잘 사는 '불공정 격차사회'가 아닌, 다음 세대가 모두 잘사는 '공정 균형사회'를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게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