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의미에서 식물과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식물에게 투영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다. 그렇게 해야 마침내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눈 앞의 대상을 자기 인생의 경험치에 비춰 판단하곤 한다. 그게 상대를 이해하기에도, 다른 이에게 이해한 바를 설명하기에도 쉬울 테니까. 반면 미국의 식물학자 호프 자런은 자신의 책 ‘랩걸'에서 “사람이 식물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20년 넘게 식물을 연구하면서 얻은 결론이 ‘알 수 없음'이라니. 식물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은 자런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고생 끝에 얻은 지식이라면 특히 과신하기 마련이다. 자런의 연구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수많은 연구 업적에도 여성으로서 과학계에서 당하는 불평등, 일과 개인생활을 위기에 빠뜨린 우울증, 끊어질 듯 위태로운 연구 지원기금 조달 등 여러 어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식물이 빛을 향해 가지를 뻣어나가듯, 자런은 눈앞의 식물들을 겸허하게 대하는 과학자로 성장해나갔다.
어쩌면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식물을 관찰하면서, 대상에 대한 수많은 ‘부분’은 알 수 있어도 그게 곧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익혀온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랜 관찰의 과정은 눈앞의 대상을 대하는 어떤 시선을 길러낸다.
"나는 빌의 바로 앞에 앉아서 고개를 쳐들고 그를 바라봤다. 빌이 지금 하고 있는 일, 빌이라는 인간, 그리고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똑바로 목격하는 증인으로서 그를 바라봤다. (중략) 나는 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 지금의 그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를 받아들이며 느껴진 그 힘은 나로 하여금 잠시나마, 그 힘을 내 안으로 돌려 나 자신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도록 했다."
자기 생각을 덧대어 상대를 과대 해석하지 않기. 그저 상대가 어떤 모습인지, 상대를 보는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조용히 바라보기. 실제로 자런의 이런 시선은 연구 여정을 함께한 소중한 동료 ‘빌'을 보는 데서 드러난다. 사물과 사람에 대하는 한계를 인정하고 눈 앞의 대상을 직시하는 자런의 태도에서 세계는 물론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힘이 느껴진다.
“우리 모두 일하며 평생을 보내지만 끝까지 하는 일에 정말로 통달하지도, 끝내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좀 비극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대신 우리의 목표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로 그가 던진 돌을 내가 딛고 서서 몸을 굽혀 바닥에서 또 하나의 돌을 집어서 좀더 멀리 던지고, 그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가 내딛을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런이 성취한 이 시선에 기반한 결과들이 세상에 대한 더 큰 지혜로 연결되는 게 아닐까. 있는 그대로 대상을 볼 줄 아는 연구자들의 눈을 통해 인류는 한걸음씩 나아가는 걸테다. 사람이 과학에서 배워야 할 부분은 이런 게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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